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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민음사 펴냄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목적 없이 서성이다 발견했다. 제목이 아주 익숙하고 누군가 읽는 장면을 많이 보았던 책이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빌려 집으로 왔다. 제법 무거운 두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가를 꿈꾸는 ‘나’와 해보지 않은 일이 없는 신밧드 ‘조르바’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나’는 작가일테고, 조르바는 그의 친구-학교-동료 등등 이었을지도.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첫장면에 이별하는 ‘친구’를 사랑했고 그 이후 조르바를 사랑한 것 같다. 우정…으로 사랑을 가리려고 하지 마라 이놈들. 여튼, 둘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 대한 내 감상을 남기려면 일단 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뭐가 문제일까. 작가? 시대 배경? 모조리 다 문제가 많다. 여성을 자기 발가락보다 못하게 여긴다. 책을 한 장만 읽어도 오만가지 단어로 여성을 비하한다. 누구네 딸은 이래서 문제고, 저 과부는 이래서 문제다. 혼자사는 그 여자는 이래서 문제가 많다. 너무 적나라하고 충격적인 말들로 여성을 무시한다. 읽는 내내 조소가 끊이지 않았고 뒷목을 타고 분노가 올라왔다. 잊을 수 없는 빡치는 말도 많이 나오지만 차마 기록으로 남겨 내 기분이 더 나빠지고 싶지는 않다.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냐는 김첨지는 가소로운 수준이다. 이 책이 얼마나 훌륭한 숨은 뜻을 담고 있더라도 이런 책을 계속 읽어’줘’서는 안된다. 그건 그 시대가 그랬으니까, 하고 넘기기엔 도를 넘은 혐오이고 무시이며 죄악이다. 앞으로 나무들에게 싹싹 빌어 사죄해야 하는 책이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실존주의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관심이 있던 주제여서 책을 읽으면서도 어? 이거? 싶었다. 조르바가 가진 여러 생각은 정말 흥미롭기도 하고, 곱씹게 되기도 한다. 필사한 문장도 여럿 있다.
근데 진짜 생각할수록 너무 화가 난다. 6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이 책을 중간에 놓지 않고 끝까지 읽은 건 정말 오기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나’, 혹은 작가가 어디까지 못돼쳐먹은 말만 하는지 보자. 근데 괜히 읽었다. 삼일? 동안 읽은 내 시간이 너무 아깝다. 다른 이들은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p. 107 “아무것도 믿지 않아.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난 아무것도 믿지 않고, 이 조르바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아요. 조르바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아서가 아니오. -결코, 결단코 더 낫지 않소! 조르바란 녀석 또한 같은 야수에 지나지 않으니까. 내가 조르바를 믿는 이유는,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유일하게 내가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오. 그 외의 존재들은 죄다 유령이오. 조르바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소화시키거든.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유령일 뿐이오. 내가 죽으면 모든게 사라지는 거요. 조르바의 세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거란 말이오.”
p. 222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야. 아무런 야망도 없으면서 모든 야망을 품은 듯 끈질기게 일하는 것.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되 그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크리스마스를 맞아 거나하게 먹고 마시는 것. 그러고 난 뒤 모든 유혹에서 벗어나 혼자서 머리 위에는 별들을, 왼쪽에는 육지를, 오른쪽에는 바다를 소유하는 것. 그리고 갑자기 삶이 마음 속에서 기적을 이뤄냈다는 사실, 그래서 삶이 동화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p. 478 나는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필연에 긍정함으로써, 피할 수 없는 것을 자유의지의 행위로 바꾸어 놓는 것이 어쩌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잘 알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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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님의 인생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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