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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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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헤르타 뮐러 지음
문학동네 펴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독일인은 제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숨그네'라는 책을 읽어보면, 독일인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숨그네는 숨과 그네의 합성어로, 삶과 죽음을 왔다 갔다 하는 주인공의 처절한 수용소의 생활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44년 여름, 붉은 군대가 루마니아를 점령하여 파시즘을 신봉하던 독재자 안토네스쿠를 체포해 처형하였다. 소련에 항복한 루마니아는 얼마 전까지 동맹국이었던 나치 독일을 향해 갑자기 전쟁을 선포한다. 1년 후, 소련의 장군 비노그라도프는 스탈린의 이름으로 나치에 의해 파괴된 소련의 재건이란 명목 하에, 루마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독일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한다. 루마니아에 살던 17살에서 45살 사이의 독일계 소수민족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빠짐 없이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이 역사적인 사실을 17살 소년 레오가 우크라이나 수용소에서 지냈던 이야기로 탄생시켰다. 수용소에서는 죽음도, 강제노역도 두렵지 않다. 가장 두려운 것은 '배고픔'이었다. 얼마나 참혹했으면 인생에서 수용소 생활은 고작 5년밖에 안되는데, 평생을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나치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종청소'라는 명목 하에 무분별하게 유대인들을 학살 했다. 소련도 마찬가지로 독일인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책임지라는 명목 하에, '독일계 루마니아인'들을 전쟁이 끝났음에도 강제 노역을 시켰다. 과연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일까? 전쟁은 모두가 피해자다.
👍 고민이 있을 때 추천!
2021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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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이

@jayuyi

걱정이라는 이름의 뒷담화


“이미 돌아가신 분이긴 하지만 그동안 마리아 이모님 사정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을지, 이제라도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야 우리가 함께 기도할 일이 있으면 기도하고 함께 도울 일이 있다면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 《하늘 높이 아름답게》, 107p

죽은 마리아를 애도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기도라는 명분 아래 그녀의 삶을 들춰본다. 진심 어린 위로라기보다는, 삶을 마친 사람을 소재 삼아 이야깃거리로 삼는 분위기.

기도는 거들 뿐, 결국 마리아라는 한 사람의 복잡하고 고단했던 생애는 누군가의 궁금증으로 추락하고 만다.

같은 신자로서 부끄럽다. 하느님의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위선적인 말들이 배려와 사랑이라는 옷을 입고 쏟아졌는지 돌아보게 된다.

대화 주제가 없어 시작된 가십은, 어느새 걱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불쌍하다”는 말로 소비되는 누군가의 불행에는, 사실 우리도 포함되어 있다.

걱정이라는 말 아래 숨어버린 참견과 뒷말. 기도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소비하는 태도. 그 모든 것 앞에서, 과연 누구를 위한 말이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겠다.

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고있어요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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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이

@jayuyi

반희씨와 울엄마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 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 《실버들 천만사》, 75p

반희는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살고 싶었던 인물이다. 더는 자신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 결국 가족을 떠나기로 한다. 그 선택이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안에서 반희의 마지막 자존심과 생존 의지를 본다.

우리 엄마는 반희와는 달랐다. 이기적인 남편으로부터 우리 남매를 지키고자, 엄마는 끝까지 희생하는 쪽을 택했다. 그 모든 결정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음을, 성인이 되고 나서야 머리로는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혼한 이후에도 엄마는 매달 나를 보고 싶어 한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딸과의 데이트를 이제라도 하고 싶으신가 보다. 나는 ‘딸’이라는 이유로 만나러 나가지만, 마음은 따라주지 않는다. 이제 와서 평범한 모녀 역할을 하려는 엄마의 모습이, 솔직히 말해 때때로 역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차라리 엄마가 반희처럼 이기적이었더라면, 그땐 서운했겠지만 지금쯤은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일방적인 희생이 만든 끈은 나를 옭아매고, 되려 내 감정을 눌러왔다.

반희처럼 살았다면, 엄마도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나도 채운이처럼, 지금쯤 엄마에게 더 솔직하게 고백하고, 더 정직하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고있어요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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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이

@jayuyi

  • 자유이님의 명상으로 10대의 뇌를 깨워라 게시물 이미지

명상으로 10대의 뇌를 깨워라

혜거 지음
책으로여는세상 펴냄

읽었어요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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