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소설의 장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감각과 그 감각이 불러오는 이미지를 생생히 펼쳐내는 문장이 두드러진다. 소설을 읽고 있자면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풍경이며 떠오르고 가라앉는 여러 순간들, 환상의 도시와 울렁이는 벽과 메마른 개울, 낡은 다리가 눈앞에 선하게 펼쳐진다. 그가 자주 불러와 활용하는 음악과 술과 음식 또한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를 좋아하는 독자를 만족으로 이끈다.
다만 명확하고 뜨거우며 박동하는 무엇을 찾는 독자는 길을 잃기 쉽다. 흩어지고 기능하지 못하는 인물과 사건, 장치들, 분위기를 제하면 좀처럼 멋을 찾기 어려운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말 그대로 취향을 많이 타는 소설로, 삼십대 초반에 쓴 작품이 아주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새로 나온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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