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도 만들어진 표제작이 탁월하다. 두 시점을 오가는 소설은 하나는 외계인과 조우한 언어학자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앞으로 닥쳐올 인생의 이야기가 된다. 선형적 시간관을 초월한 언어는 그대로 인식과 감각, 사고의 기틀이 된다. 주인공은 외계의 언어로써 오늘을 초월해 세계를 감각한다.
절망적인 오판, 고통스런 기억을 지운다면 오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실패한 업을 성공으로 바꾸고 떠나간 이를 곁에 둘 수 있을까. 그것이 삶을, 나란 인간을 더 낫게 할까.
거리에서 얻어맞던 늙은 말의 목을 붙들고 오열했다는 늙은 철학자는, 그러나 백번이고 천번이고 되풀이되는 가혹한 운명을 기꺼이 맞이하겠다 각오한다. 테드 창의 소설은 니체의 SF적 다시쓰기다. 너는 네 삶이 여전히 절망 가운데 처박혀 있을지라도 긍정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 앞에 쉬이 답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여전히 어리석은 때문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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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발전의 종착은 어디여야 하는가. 천선란의 답은 '인간성'이란 세 글자에 머문다.
소설은 집안 사정도 성격도 다른 두 친구, 언니와 동생, 엄마와 자식들, 사용주와 사용자, 말과 인간, 로봇과 생명 사이를 잇는 데 집중한다. 닿지 않을 것만 같던 다름이 마침내는 닿아 이어지는 순간을 초1 교과서며 애들 보는 동화책스런 당위적이고 감상적 태도로써 그린다.
갈수록 빨리만 달리려는 인간의 독주가 연골이 모조리 닳아버린 경주마처럼 무너짐에 이를 것은 순리처럼 보인다. 그 질주에 대한 경고로써 소외된 것을 돌아보길 청하는 소설이 틀렸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겠다. 너무나 외로워서 외로운 줄도 모르는 인간이 공존을 위하여 연대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란 얼마나 당위적인가.
그러나 난 추구미가 다정한 사람이므로, '착한 책이었고 내게는 맞지 않았음'이라고만 적어두기로 한다. 내게는 감동란보다 퍽퍽한 천선란이지만 영양가는 있겠거니.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지은이) 지음
허블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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