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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1~4권 세트

이영도 지음
황금가지 펴냄

멋있게 글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문장 하나에도 멋드러진 수사와 은유를 즐기는, 글쓰기의 멋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실이 더해지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못하다해도 멋진 형식은 그대로 흥취를 돋우는 법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얼마간 만족스러웠다. 적어도 이영도는 멋드러진 문장을 쓸 줄 아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무심코 펼쳐든 책에는 멋진 제목과 소제목, 문체와 캐릭터가 있었고, 멋있는 이야기와 결말을 기대케 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용은 또 얼마나 새로웠던가. 톨킨이 만들어놓은 세계관에 북유럽 설화와 서구의 여러 전설, 기타 고전의 소스들을 뒤섞은 흔해빠진 판타지와 달리, 이영도는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새로운 자기완결적 세상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여러 신과 선민의 관계는 물론, 신과 신, 선민과 선민의 관계를 묘사함으로써 온전히 새로운 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훌륭하지 아니한가.
2023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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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tarsky

식민지마저도 자유로울 수 없는 지난 체제의 부조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봉건사회의 완성형은, 소수의 사디스트와 다수의 마조히스트로 구성된 것'이라는 통찰은 이를 냉철히 되짚어 반성한 적 없는 모든 사회에서 폭력과 존엄의 훼손이란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를 알도록 한다.

잔혹하고 처절한 묘사로 악명 높은 작품이다. 잔혹을 수단 삼아 인간의 극한에 다가선다. 잔혹함을, 또 폭력을 그대로 그를 비판하기 위한 창작의 장치로 활용하는 선택이 천재적이다. 폭력이 짙어질수록 폭력에 대한 비판 또한 강렬해지는 이 영리한 설정은 그를 부담스럽게 여겨온 이마저 일거에 감탄케 한다.

이로부터 일본에도 제 역사를 처절하게 반성하는 작가가 있었단 걸 알았다. 이로부터 봉건질서를 지나온 우리 또한 자유롭지 못한 잘못이 있다는 걸 깨우쳤다. 봉건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압제는 마땅히 그를 지나온 모두로부터 통렬히 비판되고 반성돼야 하는 것이다.

시구루이 1

야마구치 타카유키 외 1명 지음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펴냄

1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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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영 작가의 데뷔작으로 원나라 침입에 맞선 고려의 무장이 실은 현재로부터의 시간여행을 한 고등학생이라는 상상으로부터 흥미롭게 빚어낸 작품이다. 요즘 또 유행하는 전형적 회귀물이지만 당대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원나라 침입 시기를 다뤄 눈길을 끈다.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을 적극 버무린 픽션의 결합. 그 결과물이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우는 판타지적 사극으로 귀결됐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려의 박서 장군이 살리타가 이끌던 원나라 군대를 귀주에서 격파하고, 재차 처들어온 살리타를 승장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사살한 건 의미 있는 전공임에도 널리 알려지진 못한 사실이었다. 노미영 작가는 역사책 한 귀퉁이에 찌그러져 있던 사건으로부터 매력적인 드라마를 뽑아냈고 이것으로 이 만화가 생명력을 얻었다.

매력적이고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흥미로운 구성, 자기색깔이 분명한 필치까지 압도적이진 않지만 모든 면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좋았다.

살례탑 1

노미영 지음
대원씨아이(만화)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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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삶의 기록이다. 격(格)을 잃었다는 뜻의 실격, 인간의 격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요조는 그를 잃고 실패했을까를 거듭 되짚게 된다. 소설 가운데 인간이 끝끝내 지켜야 할 격이 무엇인지, 작가 다자이 오사무와 주인공 오오바 요조가 생각하는 격이 무언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독자는 저마다의 판단으로 그 격과 인간을 실격하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는다. 이야말로 아마도 <인간 실격>이 가진, '얇다'는 것 외에 몇 안 되는 미덕일 테다.

요조는 주변의 기대를 외면하고 도피한다. 저를 받아주는 사람이 생기면 그 곁에 바짝 붙어있다가도, 그가 제게 어떠한 책임감을 요구하면 여지없이 도망치길 반복한다. 중요한 건 그가 부끄러워한다는 점이 아니라 어떤 책임도 거부한다는 데 있다. 무엇이 요조를 실격하도록 했는가. 그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선택, 고통을 피하기만 하는 삶이 아닌가.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민음사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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