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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SEASON 1

지식채널e 제작팀 지음
북하우스 펴냄

언젠가 무심코 TV채널을 돌리다 어느 만화가에 쏟아지는 악플러들의 비난을 찬찬히 반박하던 이 방송을 보았다. 단 5분짜리, 그것도 중간부터 시청한 짤막한 방송이었는데 나는 그 내용과 진실성에 깊이 공감하고 감동하였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나는 그 만화가에게 짤막한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는 이 방송의 열혈 시청자가 되었다.

평소 스스로 감정이, 수용과 표현 양쪽 모두에 있어서, 그닥 섬세하거나 다양한 류의 사람은 못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렇다고 감정표현을 격하게 하는 사람인 것도 아니어서 이제껏 영화나 책, 혹은 다른 방송프로그램을 보면서 울어본 적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흔한 남자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이 방송은 그런 나를 누구보다 많이 울고, 많이 웃고, 많이 감동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물론 내 변화의 이유가 온전히 이 방송에 있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이 프로그램이 긍정적 자극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타이타닉>에서 케이트 윈슬렛에게 주옥같은 명대사를 남기고는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던 디카프리오의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도 지리함에 하품을 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 방송을 보다 솟아오르는 격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만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보고 기꺼이 스스로를 죽여갔던 그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돈'과 '성공'과는 다른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진실로 깊은 감동을 느끼곤 했다.

얼마 전, 엔돌핀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되던 날은, 별로 감동적이거나 슬픈 이야기가 아니었음에도, 왠지 모를 감격에 흘러내린 한 줄기 눈물방울을 누가 볼까 몰래 훔치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재기넘치는 방송을 보고 솓구치는 환희에 박장대소를 날린 적도 있었다. 나는 이 방송을 볼 때면 언제나 나의 가슴을 온전히 풀어놓는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수십차례의 수정을 거듭했을 그런 결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함이다.

내가 느낀 감격과 환희를 타인에게도 조금이나마 전해주고자, 그리고 이토록 멋드러진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지식e의 제작진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미에서 나는 이 책 몇 부를 사게 되었다. 내 주머니 사정에선 제법 부담되는 가격이었지만 그럼에도 조금도 아깝지 않은 것은 이 책이 그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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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감상을 절로 일으키는 그림체 위로 들어찬 글은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세계, 그 순환을 비춘다. 그러나 순환과 재생에서 그치지도 않는다. 생명이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닿음,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지식으로는 닿지 못한 연결성을 내보인다.

이야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세 히데코의 책은 그림책이 그저 십분이면 후딱 넘기게 되는 애들 보는 것이 아님을 알게 만든다. 짧게 보아도 오래도록 생각나는 장면, 그런 순간을 선사한다. 삶에 쉼표를 찍고 물음표를 남긴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와 물음표, 그것이 그림책의 역할이 아닐까. 사색이 귀해진 시대, 여백을 채우는 온갖 콘텐츠들 사이로 그림책을 찾는 이들이 어떠한 마음인지를 알겠다. 이따금 그림책을 펼칠 기회를 가져봐도 좋겠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김소연 지음
천개의바람 펴냄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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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버린 희우와 이유를 모른 채 남겨졌던 주인공의 멈춰진 삶이 수십 년 만에 만나 움직이게 되는 이야기다. 다가선 죽음 앞에서 용기를 낸 그들이 제게 주어진 얼마 안 되는 시간을 힘껏 껴안고 나아간다. 길, 이편에서 저편으로 나아가는 좁은 문이 그들 사이에서 명멸한다.

<길, 저쪽>은 예술로써 전해지는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사진으로, 희우는 글로써, 또 희우의 뒤에 만난 건축가는 건축으로써 이야기한다. 각자의 작품이 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작품으로써 저의 고난과 그에 대응하는 자세를 전한다. 예술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넘어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게 한다. 마침내 그로써 각자의 예술 또한 이편에서 저편으로 넘어서는 순간을 맞이한다.

1986년 태어난 나의 평안한 삶 가운데, 1986년 수레바퀴 아래 깔려 부러지고 이지러진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음을 실감한다. 역사의 발전과 희생의 가치를 믿는 이들의 수고로움을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모두가 정찬의 소설 <길, 저쪽>이 이뤄낸 아름다움이다.

길, 저쪽

정찬 지음
창비 펴냄

2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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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 땅의 여성들에겐 이름이 없었다. 대갓집 마나님은 누구누구 부인이라고, 여염집 아낙은 어디어디 댁이라고들 불렸다. 죽어서도 마찬가지. 비석이며 기록에도 오로지 성씨만이 남기 일쑤였다. 5만 원 권 속 신사임당조차 사임당이란 호가 문집에 남아 알려진 것일 뿐. 이름은 완전히 소실돼 찾아볼 길 없다.

황정은의 소설은 가족의 연대기를, 특히 보이지 않는 짐을 잔뜩 업고 사는 옛 여성의 이야기를 개별적으로 짚어낸다. 당연하지 않은 짐을 당연하게 져왔던 그네들의 사정이 삶 가운데 비슷한 감정을 겪었을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 자극이 위로며 응원을 의도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못된 남성과 피해자 여성의 구도가 지겨운 건 사실이다. 올해만도 다섯편,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반복이 아닌가. 그럼에도 누구에겐 의미가 있겠거니. 입을 다물고서 의미나 더듬는다.

연년세세

황정은 (지은이) 지음
창비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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