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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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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지음
문학동네 펴냄

황석영이다. 그가 집단과 조직의 시대에 치여 개인을 돌아보지 못했던 우리 문학의 궁핍한 현실을 깨닫고서 써내려갔다는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유준이라는 자전적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그의 주변인물들로 화자를 바꾸어가며 시종 일인칭으로 쓰여졌는데, 모든 인물이 자기만의 문제를 안고 그 문제에 온몸으로 부닥쳐나가는 매력적인 젊음을 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소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게 마련인 제 나름의 상처와 방황의 이야기를 이렇게 멋드러지게 풀어나간 작품이 우리 문학에 또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시대 최고의 작가 중 한명인 황석영이 자전적 경험과 문학적 재능을 살려 내놓은 이 작품이 있기에 후배들의 성장통이 조금쯤은 견딜만 해지리라 생각해 본다.

유준이와 그의 친구들의 고민, 그리고 그네들의 삶에 얼마간의 공감과 얼마간의 동경을 느끼며 읽어나갔다. 나 뿐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자신의 모습을 이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로서는 이 모습들에 공감할 수 없는 젊음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 씁쓸해진다. 이 소설 속에선 모두가 이토록 빛나는 시절을 살아가는데 나의 시절은 비에 젖은 짐승처럼 처량했었다. 생각도 높고 뜻이 맞는 친구도 있고 사랑에 가까운 무언가도 해보고 무엇보다 도전할 꺼리가 널려있던 그네들의 삶에 비해 나의 시절은 암담했었다.

모든 인물이 모두 저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세상은 항시 맑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사실이고, 혹자는 비겁한 변명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각자의 삶이고 운명인 것이다. 절망스럽게도, 또 희망스럽게도, 그는 황석영이지만 나는 김성호인 것이다. 얼마간의 공감과 얼마간의 동경 너머엔 오직 끝없는 괴리감만이 존재했다.

준과 친구들의 대책없는 모험은 마치 콜필드의 그것과 비슷했지만 그보단 더 미화되었고 흐릿했으며 비현실적이었다. 게다가 준이가 파격적 여정 끝에 깨달았던 것은 너무나도 교훈적이었고 전형적이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우려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황석영의 재주는 대단하다 하겠지만 분명 나는 이런 이야길 읽고 싶은 게 아니었다. 정말이지 나는 진짜를 읽고 싶었던 것이다.

-인상적인 문장

"그러나
감자밭을 적시기엔
아직 적다"

"나 권투 좋아해요. 사각 링에 딱 같히면 각자 무지하게 외로울 거야. 온 세상에 바로 코앞의 적뿐이니까."
2023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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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tarsky

'사람이 온다는 건 /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의 유명한 시구를 나는 특별히 다음과 같은 순간에 떠올린다. 캄보디아에서 온 31살 여성 누온 속행이 비닐하우스에서 얼어죽었을 때, 대구 이슬람사원 건축현장에 돼지머리가 놓였을 때, 고양시 저유소 화재사건 때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 노동자가 긴급체포돼 123회나 “거짓말하지 말라”고 다그침을 당했을 때, 올해 1분기에만 20명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가 숨졌단 통계를 찾아냈을 때. 나는 나와, 내 이웃과, 내 나라가 다른 누구의 일생을 존중하며 맞이하고 있는가를 의심한다.

소설은 반세기 전 독일의 한국 노동자들과 오늘 한국의 이주노동자를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그 시절 한국 노동자에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처럼, 오늘 한국땅의 이주노동자에게도 귀한 마음들이 깃들어 있음을 알도록 한다.

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문학동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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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마저도 자유로울 수 없는 지난 체제의 부조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봉건사회의 완성형은, 소수의 사디스트와 다수의 마조히스트로 구성된 것'이라는 통찰은 이를 냉철히 되짚어 반성한 적 없는 모든 사회에서 폭력과 존엄의 훼손이란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를 알도록 한다.

잔혹하고 처절한 묘사로 악명 높은 작품이다. 잔혹을 수단 삼아 인간의 극한에 다가선다. 잔혹함을, 또 폭력을 그대로 그를 비판하기 위한 창작의 장치로 활용하는 선택이 천재적이다. 폭력이 짙어질수록 폭력에 대한 비판 또한 강렬해지는 이 영리한 설정은 그를 부담스럽게 여겨온 이마저 일거에 감탄케 한다.

이로부터 일본에도 제 역사를 처절하게 반성하는 작가가 있었단 걸 알았다. 이로부터 봉건질서를 지나온 우리 또한 자유롭지 못한 잘못이 있다는 걸 깨우쳤다. 봉건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압제는 마땅히 그를 지나온 모두로부터 통렬히 비판되고 반성돼야 하는 것이다.

시구루이 1

야마구치 타카유키 외 1명 지음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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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영 작가의 데뷔작으로 원나라 침입에 맞선 고려의 무장이 실은 현재로부터의 시간여행을 한 고등학생이라는 상상으로부터 흥미롭게 빚어낸 작품이다. 요즘 또 유행하는 전형적 회귀물이지만 당대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원나라 침입 시기를 다뤄 눈길을 끈다.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을 적극 버무린 픽션의 결합. 그 결과물이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우는 판타지적 사극으로 귀결됐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려의 박서 장군이 살리타가 이끌던 원나라 군대를 귀주에서 격파하고, 재차 처들어온 살리타를 승장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사살한 건 의미 있는 전공임에도 널리 알려지진 못한 사실이었다. 노미영 작가는 역사책 한 귀퉁이에 찌그러져 있던 사건으로부터 매력적인 드라마를 뽑아냈고 이것으로 이 만화가 생명력을 얻었다.

매력적이고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흥미로운 구성, 자기색깔이 분명한 필치까지 압도적이진 않지만 모든 면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좋았다.

살례탑 1

노미영 지음
대원씨아이(만화)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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