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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아가미

구병모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위저드 베이커리>의 느낌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일까. 첫 작품에 받았던 만큼의 내용과 분위기를 기대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아가미>>는 그 자체로서 존재 의미를 갖기는 하지만 <위저드 베이커리> 만큼의 통통 튀는 발상과 발랄한 전개에는 뛰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어두움이 너무 짙다고나 할까.



그래도 신비스러움이 가득한 작가의 책들은 언제나 흥미를 유발시킨다. 마치 SF소설처럼 이번엔 어떤 신비로운 장치가 작동될까..하고. <<아가미>>의 경우는 물론 아가미를 가진 주인공 소년이 된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사람도, 물고기도 아닌... 그렇다고 인어도 아닌 존재. 단지 어두운 과거와 죽음 앞에서 살아남기위해 저절로 진화된 그 아가미라는 장치가 주는 느낌은 조금 섬칫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소설은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를 가진다. 곤의 아버지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과정, 곤이 어린 시절을 함께 하게 된 강하와 할아버지네의 이야기, 그리고 나중에 강하의 이야기를 전해주러 온 해류의 이야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처절한 삶의 밑바닥을 보여준다.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견디는 것조차 힘든 사람들, 그럼에도 우직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언제나 강하가 자신을 물고기 아닌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의 말은 그것을 넘어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159



곤의 존재와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다. 그리고 이 어둠이 끝내 밝음으로 나가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물론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는 없으나 바로 그런 점을 작가에게 기대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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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kles

좋은 책을 만나면 이 책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하게 되고 그 작가의 책을 계속 따라 읽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지내요>를 읽은 후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작가가 각인되었고 그 이후 <친구>는 그녀의 세 번째 읽는 작품이다. 작가 소개를 보면 시그리드 누네즈가 이름을 알린 첫 작품은 <A Feather on the Breath of God>이라고 하는데 국내 번역 작품으로는 찾아볼 수가 없어 안타깝다. 이후 <친구>로 2018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다고 하고 기 이후의 두 작품을 내가 먼저 읽어본 것 같다.



개인적으론 처음 읽었던 <어떻게 지내요>가 작가의 특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가장 관심있어 하는 주제가 "삶과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어떻게 지내요>가 그 주제를 가장 편안하고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반면 <친구>는 무척이나 실험적인 작품이다.



1인칭 화자가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그 친구에게 보내는 형식인 <친구>는 하지만 그 친구의 의미가 비단 그 한 명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또한 독자는 이 편지를 읽어나가며 화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관계를 맺어가는지 추측해야 한다. 그러니 결코 쉬운 글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하나도 장애가 되지 않을 정도로 책의 내용은 사유가 깊다.



"나"와 죽은 이는 한때 잠깐 연인이기는 했으나 이후 계속해서 친구로 지냈다. 하지만 단순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은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고 그의 부인들에게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이런 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므로. 그런 그가 자살을 했다. <친구>에서 "나"는 자살한 나의 친구에게 그동안 자신과 그가 나눈 이야기들, 주변의 상황, 나의 일상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자신의 쓰는 작품의 이야기와 깊은 고민까지 두서없이 적어나간다. 여기에 하나 더. 그가 죽은 후 세 번째 부인에게서 떠맡게 된 아폴로라는 그의 개와의 일상까지. "나"는 마치 남편을 잃은 듯한 상실감에서 이 아폴로와의 동거를 통해 조금씩 안정되어 가지만 이미 나이가 많은 아폴로와의 이별도 차차 생각해야 한다.



두 친구는 작가이며 교수다. 문학계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서로 나눈 작품들이 시도때도 없이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는 기쁨이 크지만 무엇보다 죽은 사람과 죽음을 곧 맞이해야 하는 상황, 더불어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여러 생각을 함께 하게 된다. 역시 좋은 작가다.

친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지음
열린책들 펴냄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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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네버

@yhkles

이 얇은 책을 읽겠다고 도서관에서 얼마나 연장을 했는지~ 다 읽고 나니 허무함~ 한가득 ㅋ



뭐,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설렘, 기다림, 운명론에 공감하기엔 내가 음~ 늙어버렸다는 거 ㅎㅎ



여주인공 콩스탕스는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를 사랑한다. 그의 모든 책을 구해놓고 아껴 읽는 중. 하지만 작가는 이미 세상에 없으므로 언젠가 그의 책을 더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 후 다른 작가도 찾아보기로 하고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대여한다. 그러다 발견한 밑줄. 콩스탕스는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운명의 그를 찾기로 한다.



나도 한때는 사랑에 대한 이런저런 로망을 가졌더랬다. 중학교 시절 순정 만화를 보며 말이다. 하지만 이미 20대에는 그런 로망을 가졌던 것 같지 않다. 역시 극T는 어쩔 수 없는가~ㅋ



아마도 <밑줄 긋는 남자>는 그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 아닌가 싶다. 책이나 영화, 상상 속의 인물과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허무맹랑한 소설들보다는 좋았다.

밑줄 긋는 남자

카롤린 봉그랑 지음
열린책들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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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네버

@yhkles

봄이 오면 싱숭생숭하다. 길가에 핀 민들레나 애기똥풀을 봐도 강동스럽고 아무것도 없던 가지 끝에 맺힌 새싹이 어느새 푸릇해진 것을 봐도 감격스럽다. 그쯤 되면 매년 화초를, 예쁜 꽃을 한두 개 사야 하나~ 고민한다. 그 고민은 길가에 핀 여러 식물들을 보고 아파트 화단이나 다른 집 화분 속 식물을 보는 것으로 곧 대체된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온 후 제대로 길러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올해는 작년에 이어 수업용이긴 하지만 강낭콩을 키우고 있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정원이 딸린 전원 생활을 하고 싶다는 꿈을 오래 꿔 왔다. 타샤 튜더처럼 몇 만 평까지야 불가능하겠지만 그저 아주 조금이라도 그렇게 흙과 식물과 동물과 함께 살아가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말이다. <커다란 모과나무를 맨 처음 심은 이는 누구였을까>는 그런 나의 꿈을 조금이라도 잠재우는(싫어서가 아니다. 대리 만족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역할을 한 책이 되었다.



속초에서 자리를 잡고 10년 넘게 살아오며 생각한 것, 느낀 것, 정원 생활 속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번 책이 즐거웠던 건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 덕분이다. 다소 거친 듯 하지만 너무나 예쁜 일러스트를 통해 글을 읽고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것을 직접 들여다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계절 속에서 바라본 정원 이야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인위적인 무엇이 아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그런대로, 원래의 생태계가 나아가듯 그렇게 작가의 정원은 흘러간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치열한 잡초와의 전쟁이 있고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로 인한 갑작스런 온도 변화나 폭우, 건조함도 있으니 그런 것 앞에 인간은 초라하다. 그럼에도 자연 속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힐링이 되는지 모른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상하며 읽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커다란 모과나무를 맨 처음 심은 이는 누구였을까

오경아 지음
몽스북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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