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네버님의 프로필 이미지

에버네버

@yhkles

+ 팔로우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표지 이미지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푸른숲 펴냄

나는 아주 일찍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에 실행에 옮길까... 생각했던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춘기가 막 시작될 때였고 가정 환경이 좀 어지러웠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 같았고 이꼴저꼴 다 안 보려면, 남은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나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아니다. 내 입장에서 보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죽이려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읽으며 든 생각은,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런 사람들을,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도저히 살아가지 못할 만큼 내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면,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이상 나아가서는 안되겠지. 하지만 "릴리"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역시나 이해가 되고 공감도 된다. 왠지 릴리는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으면... 했다.

처음 책의 시작은 그냥 일반적인 추리, 미스테리 소설처럼 시작한다.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와 여자. 우연히 만났지만 술이 함께 했고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부인의 불륜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 어찌 해야할지 모르던 테드는 자신도 모르게 죽여버리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 말에 반응한 릴리는 그럼 함께 죽이자고 한다.

사람들은 "죽겠다. 죽이고 싶다" 등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 말은 정말로 내가 죽겠다거나 남을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힘들다"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릴리는 진지하게, 죽이고 싶으면 죽여야 한다고. 어떤 사람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말한다.

"솔직히 난 살인이 사람들 말처럼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썩은 사과 몇 개를 신의 의도모다 조금 일찍 추려낸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뭔가요? 게다가 예를 들어, 당신 부인은 죽어 마땅한 부류 같은데요."...48p

죽여 마땅한 존재라는 게 있기는 할까? 세상엔 분명 나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성선설을 믿고 있지만 가끔은, 어쩌면 어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악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인하고 남에 대한 배려나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조치를 취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그 사람들이 하루하루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갈 때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테드의 이야기 뒤엔 릴리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릴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똑똑하고 아름다운 여자.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했지만 가족 관계, 주변 상황에 의해 릴리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조용히 살면서 다시는 누구도 내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계속 생존할 것이다. 초원에서의 그날 밤,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간직한 채. 그것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남다른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깨달음이었다."...407p







소설은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몇 개의 얼개와 사건이 꼬이고 섞이면서 독자들은 종종 충격에 빠질 것이다. 읽는 중에 자신의 도덕성에 의심을 가지고 어찌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 어쩌면 죄인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잘 짜여진 소설 덕분이다.
0

에버네버님의 다른 게시물

에버네버님의 프로필 이미지

에버네버

@yhkles

자주 기웃거리는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내 눈에 걸린 책 한 권.

눈에 띈 이유는, 표지 속 그림이 누가 그린 것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애 좀 키워봤다면 누구나 알아봤을 ~ ㅎㅎ

그 "앤서니 브라운" !!! 세상에~ 보통 그림책만 그리지 않나? 언제 이런 동화책을 내셨대? 하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헉헉헉!!!! 작가는 이언 매큐언이다. 네? 뭐라고요? <속죄>의 그 이언 매큐언이요? 어째서? 무섭고 두려워서 아직도 정독하고 있지 못한 그 <속죄>를 쓴 작가가 동화책을 썼다고요?

폭풍 검색에 들어간다. 아~ 그의 동화책은 딱 이 한 권뿐이다. 거기에 앤서니 브라운 그림이라니~! 흥미가 확~! 당긴다.결국 GET!



책을 펼치면 바닷가 앞 파도를 바라보는 한 소년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뭔가 묘하게 쓸쓸해 보이기도, 의지가 엿보이기도 한 이 그림을 넘기면



"나는 다른 형상으로 몸을 바꾼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참이다."...<변신 이야기 1권> 오비디우스 ...7p



아마도 이 첫 인용 문장이 이 책의 소재가 될 것 같다.



피터는 평소 몽상에 자주 빠지는 소년이다. 가족들은 진짜 피터의 모습을 알지만 학교에서나 밖에서 이런 피터의 모습을 보면 느리고, 아둔하고 아무 생각 없는 소년이라 여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피터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책이다. 항상 느리고 멍한 피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실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펼쳐진다.



평소 싫어하는 여동생의 인형과 한판 싸움을 하기도 하고, 가족들이 회사와 학교 갈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언제나 느긋한 고양이나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평화를 뒤흔드는 이모의 아들로 변신하기도 하고, 학교의 주먹대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도, 동네 도둑을 직접 잡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을 피터는 몽상으로 한다. 하지만 이 몽상은 그저 몽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주변 인물들이나 사물을 의인화하여 그 대상과 직접 대화하거나 그 대상이 되어봄으로 인해 "역지사지"를 제대로 깨닫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터는 겉모습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다른 아이들보다 느리고 멍해 보일지라도 자신의 몽상을 거쳐 더 깊고 더 좋은 해결책을 찾아나간다.



초등 고학년 정도의 아이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겠지만 <학교에 간 사자>를 재밌게 읽은 아이들이라면 중학년도 충분히 즐기며 읽을 수 있다. 피터의 몽상 자체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 그 몽상을 통해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까지 읽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

피터의 기묘한 몽상

이언 매큐언 지음
아이세움 펴냄

2일 전
0
에버네버님의 프로필 이미지

에버네버

@yhkles

좋은 책을 만나면 이 책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하게 되고 그 작가의 책을 계속 따라 읽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지내요>를 읽은 후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작가가 각인되었고 그 이후 <친구>는 그녀의 세 번째 읽는 작품이다. 작가 소개를 보면 시그리드 누네즈가 이름을 알린 첫 작품은 <A Feather on the Breath of God>이라고 하는데 국내 번역 작품으로는 찾아볼 수가 없어 안타깝다. 이후 <친구>로 2018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다고 하고 기 이후의 두 작품을 내가 먼저 읽어본 것 같다.



개인적으론 처음 읽었던 <어떻게 지내요>가 작가의 특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가장 관심있어 하는 주제가 "삶과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어떻게 지내요>가 그 주제를 가장 편안하고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반면 <친구>는 무척이나 실험적인 작품이다.



1인칭 화자가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그 친구에게 보내는 형식인 <친구>는 하지만 그 친구의 의미가 비단 그 한 명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또한 독자는 이 편지를 읽어나가며 화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관계를 맺어가는지 추측해야 한다. 그러니 결코 쉬운 글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하나도 장애가 되지 않을 정도로 책의 내용은 사유가 깊다.



"나"와 죽은 이는 한때 잠깐 연인이기는 했으나 이후 계속해서 친구로 지냈다. 하지만 단순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은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고 그의 부인들에게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이런 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므로. 그런 그가 자살을 했다. <친구>에서 "나"는 자살한 나의 친구에게 그동안 자신과 그가 나눈 이야기들, 주변의 상황, 나의 일상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자신의 쓰는 작품의 이야기와 깊은 고민까지 두서없이 적어나간다. 여기에 하나 더. 그가 죽은 후 세 번째 부인에게서 떠맡게 된 아폴로라는 그의 개와의 일상까지. "나"는 마치 남편을 잃은 듯한 상실감에서 이 아폴로와의 동거를 통해 조금씩 안정되어 가지만 이미 나이가 많은 아폴로와의 이별도 차차 생각해야 한다.



두 친구는 작가이며 교수다. 문학계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서로 나눈 작품들이 시도때도 없이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는 기쁨이 크지만 무엇보다 죽은 사람과 죽음을 곧 맞이해야 하는 상황, 더불어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여러 생각을 함께 하게 된다. 역시 좋은 작가다.

친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지음
열린책들 펴냄

1주 전
0
에버네버님의 프로필 이미지

에버네버

@yhkles

이 얇은 책을 읽겠다고 도서관에서 얼마나 연장을 했는지~ 다 읽고 나니 허무함~ 한가득 ㅋ



뭐,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설렘, 기다림, 운명론에 공감하기엔 내가 음~ 늙어버렸다는 거 ㅎㅎ



여주인공 콩스탕스는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를 사랑한다. 그의 모든 책을 구해놓고 아껴 읽는 중. 하지만 작가는 이미 세상에 없으므로 언젠가 그의 책을 더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 후 다른 작가도 찾아보기로 하고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대여한다. 그러다 발견한 밑줄. 콩스탕스는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운명의 그를 찾기로 한다.



나도 한때는 사랑에 대한 이런저런 로망을 가졌더랬다. 중학교 시절 순정 만화를 보며 말이다. 하지만 이미 20대에는 그런 로망을 가졌던 것 같지 않다. 역시 극T는 어쩔 수 없는가~ㅋ



아마도 <밑줄 긋는 남자>는 그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 아닌가 싶다. 책이나 영화, 상상 속의 인물과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허무맹랑한 소설들보다는 좋았다.

밑줄 긋는 남자

카롤린 봉그랑 지음
열린책들 펴냄

1주 전
0

에버네버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