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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대기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의 표지 이미지

까대기

이종철 지음
보리 펴냄

<까대기>가 그리는 택배업의 풍경은 그야말로 막막하다. 전 국민이 택배를 쓰는 시대니 업계 또한 호황 중 호황이어야 마땅하건만, 상황은 오늘내일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삭막하기만 하다.

주인공이 처음 속한 업체는 소규모 택배회사의 지역 대리점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내내 주인공이 마주하는 건 열악한 현실이다. 모두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는 사람은 채 200만 원이 되지 않는 월급을 받고 일한다. 택배기사들은 아르바이트가 구해지지 않으면 직접 상하차까지 하고, 매일 할당된 물건을 처리하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한다.

돈을 적게 주고 싶어서가 아니다. 돈이 없어서다. 대기업이 장악한 택배업계에서 작은 업계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틸 뿐이다. 택배 값 3000원 뒤에 숨겨진 현실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중소업체들과 개당 몇 백 원의 물건들을 들고 밤늦게까지 분주히 움직이는 기사들이 있는 것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택배업을 진솔하게 그린 작품이다. 택배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현장을 가까이서 그렸고, 그 안에서 일에 매진하는 이들의 삶도 사람냄새 나게 다뤘다. 그러면서도 제 생각을 강하게 드러내거나 누군가의 사연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 장단이 분명한 이 선택으로, 작품은 선명하진 않지만 모두를 불편하지 않게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뚜렷한 문제의식이나 비판, 해결책이 제시되진 않아도 이 책을 읽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택배를 쓰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 중 택배일을 제대로 아는 이가 없음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들이 놓인 열악한 현실과 그 현실을 만드는 부조리한 구조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를 해결하는 건 문제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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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보통의 사람은 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한 여자와 그 연장선에서 함께 파멸하고 망가져가는 주변인의 연쇄작용을 다룬다. 이 소설을 불편해 하는 이들이 흔히 언급하는 소위 비정상적 성교며 근친상간에 더하여 채식이란 섭생부터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것이 어떤 취급을 받게 하는지를 생생하게 일깨운다.

가만 보면 매일같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꼭 그러하지 않은가. 흔치 않은 일이 뉴스가 되는 이 시대에선 남들과 다른 결혼, 출산, 연애, 삶의 방식까지가 하나하나 비난을 살 일이 되고는 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곱씹어보는 시간이 채 몇 초는 될까. 재판정 판사가 된 듯, 쉽게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는 이들의 모니터 뒤 표정을 떠올려보고 있자면 한강이 다른 이를 불편케 하여 이루려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도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창비 펴냄

20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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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건강을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듯, 장애가 있는 이들 또한 그들의 장애를 그들의 잘못으로 얻지 않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고 산다. 우리 중 누군가가 반드시 맞이할 밖에 없는 장애란 환경을 우리는 그저 개인의 책임으로 밀어두고 외면하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이들이 처한 환경은 나아질 줄 모르고 그에 대한 인식 또한 나아질 줄 모른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워낸 어느 어머니의 솔직한 기록이다.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버틴 끝에 만족할 수 있는 삶에 도달했다. 첫째는 대기업에 입사했고, 이 책이 나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둘째 아들 김형수는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를 설립한 활동가이자 인권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이순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성취다. 그녀가 걸었던 길이 순탄치 않았기에 그 성취가 더욱 빛난다. 그래서 <통곡하고 싶었지만>은 장애아를 키운 어느 어머니가 역경에 굴하지 않고 이겨낸 성취담이 된다.

통곡하고 싶었지만

이순희 지음
빨간소금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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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과 화폐발행, 또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물가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고 선명한 한두 세기 전 경제규모 아래서 내보인다. 영국과 미국 간 경제력이 교차하는 당대상황을 비교분석하여 해외 국가며 그 신용도, 상호 화폐 간 상관관계 역시 설명하고 있다.

그로부터 드러난 것은 가격과 금리, 대출과 예금, 주식과 채권 등 다양한 개념들이 서로 영향을 받는 관계성이다. 그 상관관계를 제대로 이해한 뒤에야 경제를 읽고 바른 선택, 이를테면 투자와 같은 걸 할 조건이 갖춰진다는 인식이 이들에게 엿보인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더 투자에 열을 올리고,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더 위험성 높은 투자에 자산을 내던지는 나라. 그러나 경제와 그를 둘러싼 정책이며 외교, 산업, 심지어 역사에 대해선 깊이 있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오늘 한국의 상황이 이 책이 우려한 모습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음을 알도록 한다.

가격의 세기

시어도어 E. 버튼 외 1명 지음
레디셋고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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