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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봄날의책 펴냄

읽었어요
얼마 전 《나는 동물》 을 읽고 충격을 꽤나 받고 책의 장면들이 잊히지 않아서 같은 작가가 먼저 펴낸 책인 《그냥, 사람》을 읽었다.
2020년에 펴낸 책으로 2015~2019년 사이에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묶었다. 여전히 읽으면서 괴로웠다. 가슴이 아파서 읽다가 책을 여러 번 덮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현재까지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에 그 사이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폐지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해결된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그 중 '장애인시설폐쇄법' 등 일부가 《나는 동물》에 실렸다.

몇 달 전 신월여의지하도로를 운전하며 지나가면서 이 위는 사람들이 산책하기 좋은 기다란 공원이 생겨 살기 좋은 도시가 되어가는구나, 메인 도로들은 지하로 가고 지상은 보행자를 위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하도로에서 발생하는 자동차 매연들은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이 책에 의하면 당시 양평동 주민들은 지하 매연을 내뿜는 굴뚝이 셋이나 동네에 생긴다는 소식에 줄기차게 반대했다. 현재 그 매연은 어디로 가고 있을지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뒤져 보니 공기청정기와 같은 원리를 적용한 바이패스 방식을 도입해 해결되었다는 문서가 있다. 아마 싸우지 않았다면 지하 매연이 그대로 지상으로 뿜어져나왔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많은 시설들이 효율성을 이유로 돈이 적게 드는 방식으로 지어진다. 시설뿐이랴. 정책도 포함이다. 장애인 등급제는 장애인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출을 줄이고자 몸이 덜 불편한 장애인의 돌봄을 개인에게 미루기 위한 제도였다. 약자를 위한다는 기초생활보장법도 그랬다.

"기초생활보장법이 나의 작은 꿈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이 제도가 정말로 나 같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 이미 목숨을 끊은 최옥란 여사의 유언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녀가 받았던 생계비는 고작 26만원. 소득이 33만원을 넘으면 수급이 박탈되었다고 한다.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납작 엎드리는 일뿐. 불타는 분노는 우리를 도우러 온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몫이었다.(123쪽)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꿈도 꾸지 못할 자유를 아무 노력 없이 누리면서도 일상의 작은 불편조차 장애인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그들을 격리하고 가두는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인구의 10퍼센트가 장애인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인식조차 할 수 없다. (124쪽)
202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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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자 선언

최태현 지음
디플롯 펴냄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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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빛님의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 게시물 이미지
📚 책의 본문 주변의 여백을 '마진(margin)'이라고 한다. '여백에 있는 것들'이란 의미에서 파생된 말인 '마지네일리아'는 책의 여백에 남기는 표식, 주석, 메모, 삽화, 분류할 수 없는 반응의 흔적들을 총칭한다.(p.11)

📚 여성이 가장자리 여백에 쓰거나 여백을 읽는 일은 그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 (...) 마지네일리아가 여성의 이중 억압과 관계할 때 그것이 유출하는 의미의 독해는 여성적 읽기로 가능해질 것이다. 엘렌 식수가 여성적 글쓰기와 교차적으로 제안한 여성적 읽기는 사실이나 확실성, 단일함을 감수하기를 거부하고 모호성과 질문은 복수에 연루되는 일이다.

📚 마지네일리아는 여성적 읽기의 공간으로 열려 있다. 읽기가 쓰기로 쓰기가 다시 읽기가 되는 이 순환적 공간에 타자가 기거한다. 여성 작가/독자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서로의 마지네일리아로 존재하는 바로 그 방식으로. 읽기는 타자의 도움으로 나를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실천이다.

☕️ 어려운 말이 많아서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여기 인용된 작가 중 아는 사람은 메리 셸리(프랑켄슈타인)과 버지니아 울프 정도? 나머지는 다 생소하다. (샬럿 퍼킨스 길먼,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다와다 요코, 마르그리트 뒤라스, 클로디 윈징게르, 토니 모리슨, 쓰시마 유코, 찬쉐, 앨리 스미스, 대니얼 콴/대니얼 샤이너트, 캐시 박 홍, 에스더 이, 테레사 학경 차) 그러므로 인용된 작품 또한 모두 낯설었다. 하지만 여성 작가로서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었다. 미처 몰랐는데 '여성의 날' 같은 때면 자주 언급되는 작가들이었다.

앞서 인용한 부분들은 서문이며, 실제 이 책의 정체는 서평집이다. 부제는 '여성적 읽기로 여백을 쓰다'.
'여성적 읽기'란, 쉽게 말하자면 한 텍스트를 사이에 두고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읽으면서 책의 내용을 각자의 삶과 연관지어 새로운 의미를 찾는 일이라 하겠다. 주로 약자인 여성들이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여럿이 모이면 저항할 수 있다는 의미로 '여성적'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들을 모두 포함한다. 이는 독서모임이나 플라이북 같은 독서 플랫폼을 통해 하고 있는 일들이었다. 읽고 함께 이야기하고 쓰는 일.
저자인 김지승은 다정하게도 독자들을 친애하는 친족이라 한다.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다. 당신은 내 말을 듣는다. 책을 통해 옳고 그름이 아닌, 공감대를 형성하고 울림을 만드는 행위. 나는 이 행위를 사랑한다.

📚 "나는 주변부에서 자랐고 그 가치 전부를 물려받았어요. 내가 살아오며 읽은 모든 것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가장자리에서 비범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변화도, 의식도, 마법도(더 나은 단어가 없네요) 전부 가장자리에서 일어나죠. 모든 가능성은 가장자리에 있어요."(p.141) - 앨리 스미스, <여름>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

김지승 지음
마티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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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빛님의 눈물상자 게시물 이미지
한강 작가의 동화책.

평생토록 눈시울이 뜨거워진 적도, 눈앞이 뿌예진 적도 없던 할아버지가 눈물상자에서 꺼낸 눈물들을 모두 삼키자 할아버지는 과거의 슬픔들이 한꺼번에 모두 터져나왔고, 그 다음에는 기뻤던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다 흘리고 나서 영혼을 물로 씻어낸 기분이 들었다며 만족해했다.

아이는 순수한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아이가 흘린 눈물은 투명하고 미묘한 여러 색이 섞인 눈물이었다.

📚 "그럼, 아저씨가 찾고 있던 순수한 눈물은 아니지요?
아이는 조금 실망하고 많이 부끄러워져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다, 순수한 눈물이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물을 말하는 게 아니야. (...) 눈물에 어린 빛깔들이 더욱 복잡해질 때, 네 눈물은 순수한 눈물이 될 거야. 여러 색깔의 물감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지만, 여러 색깔의 빛을 섞으면 투명한 빛이 되는 것처럼."(p.64)

☕️ '순수'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런 때를 타지 않은, 세상의 어떤 험한 일도 겪지 않은 말간 의미일까?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감정을 알아채고 깊이 느끼는 마음을 말하는 것 같다.

큰 힘든 일을 겪은 뒤에 강해지고 싶어서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그 다짐이 부질없었음을.

눈물상자

한강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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