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삶을 점으로 이해한다. 나이와 외모, 집안과 직업, 연봉과 그가 현재 있는 상황 따위의 것으로 그를 재단한다. 나이는 대개 어릴수록 좋고, 외모는 남들에게 호감을 살수록 나은 것이라고, 집안은 명망이 있고 화목하며 탄탄한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낫다고 말이다. 직업이나 연봉 또한 마찬가지, 더 많이 벌며 바깥에 내세우기 좋은 직업이 그렇지 않은 직업보다는 훨씬 낫다고들 한다.
때로는 이와 같은 잣대가 내면에 스며들어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누구는 실제보다 뿌듯해하고 또 누구는 참담히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어느 여정에서 갈피없이 표류하는 인간을 나는 허다하게 목격하였다.
그러나 삶이란 상대적이고 때로는 그보다 더 상대적이다. 삶이란 어느 한 점에 가만히 멈춰서 있지 않다. 운명 또한 우리의 기대처럼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제 나쁜 것이 오늘은 좋은 것이 되고, 오늘 나은 일은 내일 못한 일이 되기도 한다. 못한 것이 나은 것의 근거가 되거나 평탄한 삶이 실패의 이유가 되는 일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세상이다.
삶에서 마주하는 어떤 미덕은 오로지 삶에 잡힌 주름으로부터 길어낼 수 있다. 또 그렇게 얻어낸 미덕 없이는 지나칠 수 없는 삶의 관문 또한 있다는 사실을 나는 비싼 값을 치른 뒤에 배웠던 것이다. 이를 아는 이라면 오늘의 성취로부터 교만해지지도, 실패로부터 한없이 무너져 내리지도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生의 이면>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와 같다. 세상에서 더없이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듯 보이는 박부길의 삶은 바로 그 같은 이유로 인하여 드문 성취를 이룩한다. 어제의 실패가 자양분이 되어 오늘의 성공을 이루고, 오늘의 성공이 또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은 겉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 소설이 이야기한다.
그로부터 누군가는 오늘의 절망을 그저 절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시야를 얻을 수 있을 테다. 한 편의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귀한 미덕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무심하고 잔혹한 듯 보이는 삶의 너그러움이 또한 여기에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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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체계의 부정적 측면을 일깨우고, 채식의 필요를 말한다. 한국인, 나아가 세계인들이 공장식 축산이란 폭력적 체계로부터 필요 이상의 육류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있음을 내보이려 한다. 돼지를 사육하는 한국의 농장들을 찾아 그 실태를 살핌으로써 소비자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있음을 일깨우려 든다. 다분히 계몽적인 태도로 제가 본 것과 믿는 것을 써나가는 작가의 심정을 생각한다.
평생을 육식을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 나 역시 상당부분 그의 인식에 동의할 밖에 없다. 그건 한국의 축산체계가 지나칠 만큼 폭력적인 대규모 공장식 축산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며, 이것이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이 같은 체계가 자연의 균형을 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돈과 효율만을 쫓는 산업은 기형적인 양계장과 축사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를 너무 많은 질병이 있었고, 그로부터 역시 폭력적인 너무 많은 살처분이 이뤄졌다.
책은 한 축산업체 공장을 찾은 뒤 그와 같은 현실을 눈앞에서 보여주면 사람들이 육식을 하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가 말한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면 육식을 하지 않기로 하는 이가 꽤 될 것이라고 여긴다. 다름 아닌 살처분이다.
나라를 위해 복무하는 군인과 공무원이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살해하는 일에 내몰리는 현실은 한국사회에 실재하는 비극이자 매트릭스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 같은 진실에 닿지 못한 채 제가 눈감고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채식을 하는 이들과 문제를 알리는 이들을 도리어 조롱하기까지 한다. 스스로 고기를 먹는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나조차도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이와 같은 장면을 나는 몇차례 씩이나 눈앞에서 목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대로 좋은가. 이 모든 죄악을 죄악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 그건 정말이지 틀려먹은 태도가 아닌가. 우리는 선한 인간이거나 적어도 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악당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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