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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숨

김혜나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김혜나 작가의 소설이 대개 그러했듯 <깊은 숨>에 실린 캐릭터들은 대부분 변방의 여성이다. 그녀들은 제 삶 귀퉁이를 떠돌거나 어딘가 중심인지조차 잃어버렸거나 못된 사내와 사회로부터 상처를 입은 채로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간다. 트렌스젠더로 여성성을 얻었거나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주인공들과 어우러져 살아간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들은 여성성을 잃고 잔뜩 지쳐있으며, 아이들은 천방지축으로 날뛰어 좀처럼 정을 붙일 재간이 없다. 그 속에서 남성들은 아진의 친부처럼 책임지지 못할 아이들을 만들고 몸만 탐하며 심지어는 여자를 때리고 괴롭힌다. 그도 아니라면 첫 소설과 다섯, 여섯, 일곱째 소설의 남자들처럼 어떤 용기도 내지 않은 채 비겁하기만 하다.

김혜나의 소설은 숨을 멈추었다 다시 깊은 숨을 내쉬게 한다. 처음엔 어째서 남자들을 이토록 몰지각하고 비겁하게만 그리는가 못마땅하게 되다가도, 읽다보면 마침내 그네들이 우리사회 곳곳에 있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또 한 편으로는 내게도 그와 같은 비겁과 무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더욱 안타까운 건 스스로 아무 말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깊은 숨을 쉬는 여성이며, 마지막 작품에서 일생을 참아왔던 말을 조용히 읊조리는 여인과 같은 삶이다. 나는 김혜나의 소설이 이 세상의 진실 가운데 일부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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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삶을 점으로 이해한다. 나이와 외모, 집안과 직업, 연봉과 그가 현재 있는 상황 따위의 것으로 그를 재단한다. 나이는 대개 어릴수록 좋고, 외모는 남들에게 호감을 살수록 나은 것이라고, 집안은 명망이 있고 화목하며 탄탄한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낫다고 말이다. 직업이나 연봉 또한 마찬가지, 더 많이 벌며 바깥에 내세우기 좋은 직업이 그렇지 않은 직업보다는 훨씬 낫다고들 한다.

때로는 이와 같은 잣대가 내면에 스며들어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누구는 실제보다 뿌듯해하고 또 누구는 참담히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어느 여정에서 갈피없이 표류하는 인간을 나는 허다하게 목격하였다.

그러나 삶이란 상대적이고 때로는 그보다 더 상대적이다. 삶이란 어느 한 점에 가만히 멈춰서 있지 않다. 운명 또한 우리의 기대처럼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제 나쁜 것이 오늘은 좋은 것이 되고, 오늘 나은 일은 내일 못한 일이 되기도 한다. 못한 것이 나은 것의 근거가 되거나 평탄한 삶이 실패의 이유가 되는 일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세상이다.

삶에서 마주하는 어떤 미덕은 오로지 삶에 잡힌 주름으로부터 길어낼 수 있다. 또 그렇게 얻어낸 미덕 없이는 지나칠 수 없는 삶의 관문 또한 있다는 사실을 나는 비싼 값을 치른 뒤에 배웠던 것이다. 이를 아는 이라면 오늘의 성취로부터 교만해지지도, 실패로부터 한없이 무너져 내리지도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生의 이면>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와 같다. 세상에서 더없이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듯 보이는 박부길의 삶은 바로 그 같은 이유로 인하여 드문 성취를 이룩한다. 어제의 실패가 자양분이 되어 오늘의 성공을 이루고, 오늘의 성공이 또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은 겉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 소설이 이야기한다.

그로부터 누군가는 오늘의 절망을 그저 절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시야를 얻을 수 있을 테다. 한 편의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귀한 미덕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무심하고 잔혹한 듯 보이는 삶의 너그러움이 또한 여기에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생의 이면

이승우 지음
문이당 펴냄

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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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하게 느껴지는 오래된 심리학적 상식들로 가득하다. 한때는 제법 시의적절 했던 많은 부분이 이제는 낡아 오래된 교과서를 보는 듯 따분함을 불러일으킨다.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지만, 시간을 넘어 살아남을 고전이라 불리기엔 여러모로 얄팍하고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은 여전한 지혜를 전하고는 있다. 우리 중 많은 이가 편협한 태도를 지니고 세상을 산단 걸 알게 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지금보다 나은 프레임을 변환해 장착하고, 꾸준히 우리가 프레임 안에서 사고하고 있음을 깨우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긴 하다.

프레임

최인철 (지은이)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20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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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체계의 부정적 측면을 일깨우고, 채식의 필요를 말한다. 한국인, 나아가 세계인들이 공장식 축산이란 폭력적 체계로부터 필요 이상의 육류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있음을 내보이려 한다. 돼지를 사육하는 한국의 농장들을 찾아 그 실태를 살핌으로써 소비자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있음을 일깨우려 든다. 다분히 계몽적인 태도로 제가 본 것과 믿는 것을 써나가는 작가의 심정을 생각한다.

평생을 육식을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 나 역시 상당부분 그의 인식에 동의할 밖에 없다. 그건 한국의 축산체계가 지나칠 만큼 폭력적인 대규모 공장식 축산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며, 이것이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이 같은 체계가 자연의 균형을 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돈과 효율만을 쫓는 산업은 기형적인 양계장과 축사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를 너무 많은 질병이 있었고, 그로부터 역시 폭력적인 너무 많은 살처분이 이뤄졌다.

책은 한 축산업체 공장을 찾은 뒤 그와 같은 현실을 눈앞에서 보여주면 사람들이 육식을 하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가 말한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면 육식을 하지 않기로 하는 이가 꽤 될 것이라고 여긴다. 다름 아닌 살처분이다.

나라를 위해 복무하는 군인과 공무원이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살해하는 일에 내몰리는 현실은 한국사회에 실재하는 비극이자 매트릭스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 같은 진실에 닿지 못한 채 제가 눈감고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채식을 하는 이들과 문제를 알리는 이들을 도리어 조롱하기까지 한다. 스스로 고기를 먹는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나조차도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이와 같은 장면을 나는 몇차례 씩이나 눈앞에서 목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대로 좋은가. 이 모든 죄악을 죄악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 그건 정말이지 틀려먹은 태도가 아닌가. 우리는 선한 인간이거나 적어도 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악당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다움이다.

사랑할까, 먹을까

황윤 지음
휴(休)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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