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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에세이)의 표지 이미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현대문학 펴냄

청소년기에 희망사항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때로 글쓰는 일은 고역이었고 보다 좋은 글을 쓰는 게 목표인 적이 있었다. 글쓰기가 밥벌이가 안 된다는 말은 너무 들어 귀가 너덜너덜해졌다.

결국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글쓰기는 흥미로웠다. 매일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던 30대 후반쯤 문득 다시 글쓰기가 희망사항이 되었다. 소설? 수필? 시나리오? 시?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하나하나 따져봤다.

소설은 청소년기 때 반짝 읽어댔으나 어느 순간 20대부터는 소설을 더 이상 읽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30대 중반쯤부터 소설을 읽었지만 실상 소설을 쓸 엄두가 쉽사리 나지 않았다. 빈약한 상상력을 가진 내게 소설쓰기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아챘다.

그렇다고 시나리오는 더더욱 아니었다. 캐릭터를 만들고 인물간의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일 또한 내게는 어려운 직업이란 걸 깨달았다.

수필은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다만 수필인지 일기인지 편지인지 모를 글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다만 저명한 글쟁이가 아닌 이상에 수필이 팔리기란 쉽지 않다.

함축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통찰력을 가져야만 쓸 수 있는 글이 시다. 아무나 시인이 될 수 없단 사실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누군가에게 감동이나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짤막한 시를 쓰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글쓰기가 밥벌이가 되지 못할 지언정 아직까지 글쓰기를 놓치못하고 있는 나는 언젠가 어떤 종류의 글을 써내려가게 될까. 희망을 놓지 않는 한 어떤 글이든 쓰고 있을 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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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ulsori

재택근무를 할 때 꽤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화상회의를 해본 적이 있다. 노트북에 달린 카메라로 화면을 송출하고 줄 이어폰을 꽂았는데 아불싸. 화면이 너무 어둡다. 불을 켜도 어둡길래 최대한 창가 가까이 다가갔다.

이번에는 뒷배경이 신경쓰였다. 최대한 밝게 보이고 싶었으나 실패했고, 각도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찍혀 상당히 거만해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속속 등장해서 유심히 들여다보니 빼곡히 책이 꽂힌 서재를 배경으로 앉아있는 이가 눈에 띄었다. 물론 전체적인 화면색도 밝았다. 떠올려보면 부잣집은 밝고 층고가 높으며 탁 트였다.

반대로 가난한 집은 어두침침하고 천장이 낮으며 비좁다. 난 가난한 이가 되었다. 약간 창피했지만 어두워서 잘 안보이니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경 설정 기능이 생겼다. 아마도 나처럼 내 집의 배경이 부끄러운 사람들이 꽤나 있었던 모양이다. 공간은 시각적으로, 실제적으로 쉽게 비교된다. 부의 양극화는 곧 공간의 양극화로 재탄생한다.

공간의 미래

유현준 (지은이)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읽었어요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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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ulsori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무엇을 보는지보다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말들은 비단 사물이나 현상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사람, 즉 나에게도 너에게도.

도쿄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읽게된 책이다. 이미 몇 차례 일본을 가봤는데 어떤 시선으로 그 도시를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 그저 보이는 대로 보았고 느껴지는 대로 느꼈다.

이번에는 일본이 우리나라와 무엇이 다른지를 보는 눈을 조금 틔워서 가보려 한다. 그 늘 사소한 차이라고 일컫는 말들이 정말 얼마나 큰 차이를 불러일으키는지 깨우치고자 한다. “10%의 차이는 키 170과 187의 차이“하는 말처럼 비슷하다고 생각하나 말도 행동양식도 다른 그 나라를 들여다 보고 싶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이동진 지음
더퀘스트 펴냄

읽었어요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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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vs 이과

고등학교 2학년 문이과 중 하나를 선택할 기로에 놓였다- 예체능은 논외로 한다. 그나마 수학시험은 자신 있었다. 방정식을 모조리 외우고(수학조차 암기했다) ”수학의 정석“을 두세번씩 반복해서 풀면 어느 정도 시험은 꽤나 잘 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과학은 아니었다. 생물, 지구과학은 어느 정도 암기로 극복하겠는데 물리는 아니었다. 특히 물리는 들을 땐 이해도 되고 재미나기까지한데 시험만 보면 죽을 쒔다.

심지어 서울 상위권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삼촌에게 질문도 했더랬다. 그 때 삼촌의 뇌구조로는 이해를 못 하겠다는(사실 문제를 못 푼다는 건 온전한 이해라고 하기 어렵다) 나를 이해하지 못 했다.

그 때 알았다. 내 길은 문과라는 것을. 그리고 과학은 영영 내 손에서 “바이바이”였다. 그리고 또 십수 년이 지나 우연히 “코스모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진짜 어쩌다 우연히 그 책의 역자를 만나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서)

그나마 그 책은 문과를 위한 우주 이야기라고 했는데 1장을 읽다 몇 차례 덮었다. 아직도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가다 최근에 다시 침대 옆 협탁으로 나왔지만 표지만 색이 바래고 있다.

과학 “바보”인 문과인에게 지식이란 말이 한 없이 비루해진다. 실상 꽤나 논리적이라고 자평하는데(수학에서도 증명이 제일 재미있었다), 이건 진짜 아쉬운 부분이다.

지금이라도 과학적 사고의 문을 열어젖히고 싶어 나와 유사부류인 문과남자는 어떻게 과학을 공부했는지 궁금했다. 죽기 전에 과학을 깨칠 수 있을까.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지음
돌베개 펴냄

읽었어요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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