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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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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음식이라는 오묘한 관계를 통해 티타와 페드로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가지의 멕시코 전통 요리와 풍습이 소개되는데 마치 요리책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음식과 관련된 풍속도 낯선 멕시코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티타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감각적으로 묘사되어서 생생하게 바로 앞에서 펼쳐지듯 그려지는데, 그 느낌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지속된다. 티타와 페드로의 관능적인 성적 욕구와 장면까지도 독자가 빠져들게 만들어서 흥미를 잃지 않고 탐독하게 하는 마법이 펼쳐진다.

티타는 집안의 전통과 가부장적인 엄마 때문에 자기가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하며 살아왔는데, 사랑하는 조카의 죽음을 전해들은 후로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 자신마저 죽은 것처럼 지낸다. 그러다가 의사인 닥터 브라운의 집에서 보살핌을 받는다. 이곳에서 브라운 박사의 할머니인 새벽빛과 교감하고 브라운 박사에게서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새벽빛은 키카푸족 인디언으로, 브라운 박사의 할아버지가 납치해서 데려와 결혼했지만 가족에게서 환영받지 못했다. 백인의 가정에서 고립된 새벽빛의 처지는, 전통을 강요하는 분위기의 집안에서 고립된 티타의 처지와 맞닿아 있다.

새벽빛은 조용하지만 인내심이 강하고 심지도 굳은 인물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자기만의 방법으로 문제 상황을 극복했다. 티타도 그럴 수 있을까? 가족의 전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티타는 브라운 박사의 도움으로 가슴에 삶의 원동력을 지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마마 엘레나, 언니 로사우라, 첫사랑 페드로 문제로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끓어오르는 초콜릿 물'이 이 책의 원제다. 내 마음이 이러면 어찌 해야 할까? 조용히 살다가 기회를 본다? 아니면 들이받는다?

티타는 들이받았다. 그것도 엄청나게.

"떠나야 할 사람은 어머니예요. 어머니가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데 지쳤어요. 제발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둬요! 나는 나예요! 원하는 대로 자기 삶을 살 권리를 가진 인간이란 말이에요. 제발 날 좀 내버려 둬요!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거예요! 나는 어머니를 증오해요! 항상 증오해 왔다고요!"(210쪽)

티타의 마지막 장면은 더욱 뜨겁다.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올랐다. 모든 것이 재로 돌아갔다. 작품에서는 열정적으로 묘사되었지만 내심 새벽빛과 다른 방법을 선택해서 요리책 외엔 아무것도 남기지 읺은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이 모습이 가장 티타다운 모습이 아닐까도 싶다.

한평생 부엌에서 불과 함께 살아온 열렬한 사람. 티타. 악습을모두 깨 부순 티타.

이 작품은 어떤 시각으로 읽느냐에 따라 낡은 전통에 저항하는 소설이면서, 여성의 노동이었던 부엌일을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로 끌어올린 소설이기도 하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소설이기도 하고, 아주 흥미로운 연애 소설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상반된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점에서는 양귀자의 『모순』과도 비슷하다. 공교롭게도 『모순』의 주인공인 안진진은 티타와 정반대의 선택을 하지만 말이다.

책장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 가슴 속 성냥을 지피는 일은? 사람은? 장소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는다.
'당신 가슴 속 성냥을 지피는 것들은? 그리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순간은?'

https://m.blog.naver.com/snoopy701/223730063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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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시청에서 일하는 두 공무원이 레즈비언들의 혼인신고서류를 받아 준다. 처음에는 고모의 50년지기 옆사람을 가족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종래에는 101쌍의 동성 혼인 커플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동성 커플의 혼인을 허락하면 정말 혼란이 야기될까?
커플들이 줄이어 낸 혼인신고서들이 통과되고 오류가 잡히기 전까지만 법적으로 유효한 관계이지만 오래된 그들의 꿈이 실현되는 장면들이 무척이나 통쾌하다.

오늘의 세리머니

조우리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읽었어요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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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우아한 거짓말》을 펴낸 김려령 작가의 단편집.
모두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다양한 형태의 '가족' 들이 등장한다.
맨 앞에 실린 <기술자들>은 배관공으로 시작해 실리콘, 타일 줄눈 등의 일을 하는 솜씨 좋고 호흡 잘 맞는 두 기술자들의 이야기이다.
모든 작품에서 요즘 세태를 예리하게 꼬집고 있다.

<상자>와 <뼛조각>, <청소>는 철들지 않은 어린 어른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나오는 소설.
<황금 꽃다발>은 공부 잘한 큰놈보다 옆에서 걱실하게 잡일하는 작은놈을 편애하는 엄마의 마음이 재밌는 혼잣말들로 그려져 있다. <완득이>처럼 키득거리며 읽었다.
<세입자>는 미스터리 형식의 색다른 단편이어서 흥미로웠다면, <오해의 숲>은 여고생들의 관계를 소재로 한다는 면에서 <우아한 거짓말> 느낌이 조금 나긴 하지만 전혀 새로운 이야기다.

📚 자식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랐다. 핑계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이 키운다는 오만을 일찌감치 버렸다. 명상처럼 되뇌고 되뇌었다. 조언이라는 말로 토달지 말고, 예의라는 가르침으로 지적하지 말며, 경청하고 바라만 볼것. 그럼에도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은 기꺼이 짊어질 것. 그것이 그들이 요구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226쪽, <청소> 중에서)

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창비 펴냄

읽었어요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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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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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빛님의 조선으로 온 카스테라 게시물 이미지
부모님의 홍경래의 난에 연루되어 어머니는 사라졌고 아버지는 병상에 누웠다. 살기 위해 이모인 조 상궁의 도움을 받아 궁녀가 되려 했지만 자기 자신을 믿으며 적극적으로 살겠다고 마음먹는다.

📚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안팎의 조건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지요. 그래서 대다수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남들이 갔던 길을 따라갑니다. 지금 시작하는 일이 사소할지라도 먼 미래에 우리는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겁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 인물들이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장면이 특히 좋았다. 다미는 원래 불행한 세상과 부모를 원망해서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그랬던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갖게 되고 후에는 용서하고 포용하는 자세로 삶을 대한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다미는 또 다른 이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생한다.
반면,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인물들은 결국 관계에 해악을 끼치고 사건을 파국에 이르게 한다.

조선으로 온 카스테라

한정영 지음
다른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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