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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무심코 읽었다가 쓸데없이 똑똑해지는 책)의 표지 이미지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오후 지음
웨일북 펴냄

우리나라에서 이과인 문과인를 구분하는 것은 마치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지만, 사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공계인들은 자꾸만 인문학을 흘끗거리며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문과인들 역시 서적들을 뒤적이며 과학 지식을 장착하고 싶어한다. 그런 관점에서 문과생이 쓴 교양과학서적인 이 책은 몹시 이상적이다.

사실 이공계 출신이라고 해도 모르는 과학지식은 많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표준 교과과정 밖에도 과학은 많고 그 모든 것을 깊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흔한 공대생 농담 중에 전공별 자주 받는 부탁이나 심부름에 대한 농담이 있는데, 전기공학과 출신이라고 망가진 가전제품을 고칠 수 있는 게 아니고 컴퓨터공학과 출신이라고 고장난 컴퓨터를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며, 환경공학과 출신이라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5G니 OLED니 드론이니 3D-프린팅이니 블록체인이니 하는 말들을 여기저기서 듣지만 그게 정말 어떤 기술인지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렇게까지 최첨단 기술을 불러 모을 필요도 없다. 거실에 걸려 있는 아날로그 시계의 무브먼트 구조나 방안을 밝히고 있는 형광등에 어떻게 전기가 흘러들어가서 빛을 내는지 잘 설명해 보라고 하면 답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 기술의 원리나 구현방식을 알아야만 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세계를 연결하는 통신/인터넷 케이블이 어떻게 대서양, 태평양 바닥에 설치되었고 누가 관리하는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어쩌면, 기술의 원리나 사용방법에 대한 설명을 전혀 들은 적이 없어도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정말 좋은 기술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과학을 이해하고 기술을 공부해야 할까? 정말 솔직하고 즉각적으로 답하자면 아는 척 하고 싶어서...? 나는 정말 그렇다! 물론 호기심이 발동하고 원리가 궁금해질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얕은 배경지식을 확보해 놓으려는 심산이 언제나 더 크다. 그렇지만 '교양 있는' 이공계인으로서 이런 솔직한 대답은 마음 속에 두고 좀더 멋진 이유를 찾아보자면, 과학기술이 우리를 어떻게 바꾸었고 앞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학을 이해하고 기술을 공부해야 하는 것 같다.

과학이나 기술을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을 많이들 하지만,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은 가치중립적이기 어렵고 사회나 자연환경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류문화와 함께 발달해 온 과학기술은 인간의 생활과 문명, 사고방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어왔다. 기술이 가지는 인간적 가치, 환경적 가치를 돌이켜 보는 것이 이과생에게든 문과생에게든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리고 이 책은 적절한 소재와 친근한 문체, 진지한 철학적 질문들을 버무려 그 일을 잘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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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연관도 없고 알맹이도 없는 자기계발서를 오래도 붙잡고 있었네. 얼른 다음 책으로 넘어가자.

관계의 역설

이성동 외 1명 지음
호이테북스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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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쓰다가 날려 먹고 다시 올리는 거 깜빡했네.

일주일 지났더니 뭐라고 쓰려고 했었는지 가물가물해. 인물의 상태와 마음이 소설 자체의 형식에도 반영되어 처음엔 한없이 갑갑하다가 점차 이해가 된다는 말이었던가,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다른 이에 대해 평가하는지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었던가, 결국엔 고양이라는 말이었던가…

경청

김혜진 지음
민음사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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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변화가 급속도로 몰려올 때 우리는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놓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경계선은 꽤나 폭이 넓고 흐려서 경계의 시간 안에서도 세대가 나뉘어지고 다음 기술에 더 익숙한 세대들은 이미 이전 기술에 익숙한 세대가 잃는 것들만큼이나 새로운 것들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종이책 세대는 이북 앞에서 집중력을 잃고 손글씨 세대는 키보드 앞에서 암기력을 잃지만, 사진보다 영상에 익숙하고 모니터보다 AR, VR에 흥미를 느끼는 새로운 세대는 더 많은 기회와 더 넓은 포용력과 더 빛나는 창의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과 모바일이 인간관계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은 새로운 세대들도 이미 인정하고 있지 않을까. 기술이 발달할수록 감성과 인간성, 독창성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지 않은가? 물론 내가 지금 이 기술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것들이 나에게 보여주고 들려주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끊임없는 비판과 성찰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인류가 함께 살기 더 좋은 방향으로 기술을 활용할 거라고 계속 믿고 싶다.

경험의 멸종

크리스틴 로젠 지음
어크로스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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