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손에서 놓은지 3주 만에 생각을 정리해 본다. 다 읽고 나서는 바로 회사 동료들에게 빌려주느라 되짚어 볼 새도 없었다.
책 전반부를 읽으며 뒷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할 지 점점더 알 수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알파고 이후 바둑계가 겪은 패러다임과 헤게모니의 변화는 상상했던 것보다 광범위하고 깊숙했다. 인공지능은 효율과 편리함 너머 무언가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전통과 인간의 직관에 대한 불신, 교육•훈련•평가 방식의 변화, 창의성과 전문성의 의미 변화, 협업 방식과 영역의 변화에 따른 관계와 조직구조의 변화 등. 한국인들이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일상화 하는지 생각해보면, 10년쯤 후의 우리 사회는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로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세대 간의 세계관 격차와 상호 몰이해도 커지겠지. 어디까지 어떻게 변화하고 무엇이 바뀌지 않고 남아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고 어떤 문제가 새롭게 발생할 지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기술은 가파른 속도로 발전하고 일상과 융합되는 중이라서 더 두렵기도 하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인공지능을 ‘도구’로 받아들일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는 것이다. 전기나 무선통신, 자동차, 비행기가 특정 도구가 아닌 사회 전반의 기반이 되고 세상을 흐름과 속도를 바꾸어 놓은 것처럼 인공지능은 모든 산업의 패러다임과 헤게모니를 바꾸어나갈 것이다. 변화 밖에 있기는 거의 불가능하겠지. 모두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지만 각자의 사용 방법이나 용처가 다른 것처럼, 인공지능도 사용자마다 태도와 활용도가 다를 것이고 그에 따라 얻는 것이 다를 것이다. 10년 후의 미래에 나는 인공지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지 더 많이 더 깊이 더 새롭게 고민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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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끝이 아니길 기대했는데 이게 진짜 끝이었네. 파일 복구해서 추가된 부분은 작가의 말 뿐. 그럼 좀 허탈한데?
영화 판권 탐내는 제작사나 감독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 매력적인 이야기인데, 시각화하기 쉽지는 않겠다. 하이퍼리얼리즘이라는 <달까지 가자>도 최근에 드라마화 된 걸 보니 전혀 다른 얘기 같아서 낯설기는 했다만.
확실히 다양성이 화두인 시대는 맞는 것 같다. 정치적으로는 극단주의들이 판을 치는데도 영화나 소설에서는 다양한 배경, 인종, 문화를 넘어 외계인까지 다양성을 얘기하는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다. 결국 다른 게 틀린 건 아니라는 얘기들이다. 다름에 대한 인정과 수용, 나아가 남들 다 가는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도 나갈 수 있는 용기, 또 그에 대한 존중…
머리로도 알고 있고, 마음으로도 이해하고, 일상적인 수준에서는 실천도 할 수 있는데, 사실 어디까지 가능할 지는 나 스스로도 모르겠다. 사디스트-마조히스트 관계는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나, 영화 <그녀>나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관계를 현실에서 만나게 되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교리 자체가 몹시 배타적이고 성불평등적인 종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먹이사슬 최상위에 위치하는 존재로서 지구상 비인간 생명체들의 권리는 어디까지로 보아야 하나,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배려는 진짜 배려일까, 또는 차별일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답도 안 나오는 어려운 문제들이 한가득이다.
과거는 없는 이 소설에서 현재와 미래와 나인은 대화와 믿음으로 각자의 삶을 지켜간다. 이 아이들은 대체 옳다고 믿는 것들을 해내는 용기와 다른 존재들에 대한 포용을 어디에서 배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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