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초신성의 역할은 단순히 지구 생명체를 만드는 재료를 남기고 가는 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별 먼지가 모여 만들어진 과거 인류의 조상들은 갑자기 지구 하늘에서 폭발한 초신성 덕분에 허리를 펴고 두 손에 자유를 얻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초신성은 자유로워진 두 손에 도구를 쥐어 준 셈입니다. 그렇게 직립 보행을 시작한 인류는 이후로도 초신성이 남겨 준 철과 같은 금속을 활용해 더욱 더 발전된 기술 문명으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초신성에게 빛을 지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P.186)
과학 유투버로 유명한 우주먼지, 지웅배 작가님의 책,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을 만났다. 사실 나는 뼛속까지 문과인 사람이라 학창시절에 수학과 과학을 싫어했는데, 유일하게 관심을 가졌던 영역이 지구과학과 '별'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역사를 좋아하고 그리스신화를 좋아하다보니 가지게 된 관심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책을 좋아하다보니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과학관련 책을 읽었는데, 시험과 헤어진 덕분인지 점점 더 재밌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을 읽으며, 나는 과학책을 좋아하는 구나! 라고 느끼기까지 했다.
무튼! 그렇게 재미있게 읽은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을 정리해본다.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은 우주에 기본에서부터 별과 행성, 블랙홀과 천체, 우주탐사와 인류의 도전, 외계생명체와 문명 등을 놓고 많은 이들이 궁금증을 가진 주제들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대놓고 말하자면 아이들이 한번쯤 “엄마 이건 왜 이래?”하고 물어보는 이야기중 우주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다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우주는 왜 깜깜한지, 은하는왜 회전하는지, 태양은 영영 죽지 않는지, 토성 고리는 왜 선명한지, 우주에 보낼 수 있는 동물은 무엇인지, 우리가 왜 외계인을 못 만났는지 등등 어른도 아이도 궁금해할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궁금했지만, 질문하면 과학선생님께 한대 맞는 것들을 속시원히 해결했다.
(선생님, 솔직히 말해봐요. 몰라서 진도가 바쁘다고 하신거죠!
솔직히 말하시면 제가 이 책 한 권 선물해드릴게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있었던 페이지는 4장, “우주탐사와 인류의 도전”이었다. 날마다 우주비행사와 쓰레기로 에너지를 만드는 에너지공학자를 두고 장래희망을 고민(가끔은 작가나 시인을 이야기하기도 함) 하는 딸 덕분인지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완보동물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는데,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완보동물이 어느 별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행성에서 새 지구의 삶을 시작하는 상상을 해보며 피식 웃음을 짓기도 했고, 외계인들이 완보동물을 보고 “하이, 지구인!”하고 인사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며 아이와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또 우리가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생명체가 어쩌면 다른 행성에서보낸 완보동물이라고 생각해보니 우리가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먼지인지, 그러면서도 바보같이 얼마나 많은 것을 욕심내고 사는지 생각해보기도 했고.
과학은 어제의 픽션을 오늘의 논픽션으로 옮겨오는 과정이라는 말에 크게 감동과 동감을 하며 이제서야 왜 과학이 재미있는지를 깨달아간다. 거실에 쪼그려앉아 로봇을 조립하고 코딩코드를 입력하는 초등학생 딸의 모습이, 내가 초등학생때는 픽션의 영역이었음을 문득 느끼며, 오늘날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많은 것들이 불과 몇년전까지는 픽션이었음에 감탄한다.
우주먼지 작가님의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은 지금은 이상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후에는 “당연한 상식”들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까지는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는 지식이 될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정말 꼭 한번 만나보시길 추천드린다.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지웅배(우주먼지) 지음
포르체 펴냄
1
어쩌면 이 그림책은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나만의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을 딛고 나가는 과정 모두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안녕 로렌스 안녕 소피아』는 언제나 자신만의 세상에서만 살던 로렌스와 소피아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로렌스는 울타리 밖이 너무 넓고, 소란스러워서 울타리 안에서만 지낸다. 소피아는 나무 사이로만 오간다. 나무 아래는 울퉁불퉁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소피아가 갑작스러운 용기를 내 나뭇가지를 지나게 되었고, 그 나뭇가지의 끝에서 로렌스의 창을 만난다. 로렌스도 무슨 용기인지 인사를 건낸다.
둘은 만났지만, 사실 여전히 둘은 진짜 만난 것이 아니었다. 로렌스와 소피아는 함께 하고 있지만 여전히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영역안에서만 지내기 때문.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무척 큰 의미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맺고 있는 대부분의 인가관계가 이정도의 선이 아닌가 하고. 친구나 동료를 사귀지만, 내가 허용한 만큼의 거리만을 내놓는다. 상대방이 허용한 만큼만 다가간다. 그 거리가 다른 경우는 불편을 느끼고, 다시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그 영역은 오래오래 유지된다.
로렌스와 소피아 역시 그 영역의 거리를 유지한다. 그러다 어느날, 번개가 치자 소피아도 로렌스도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의 영역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서로의 영역을 넘어서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서야 둘은 용기를 내고 더 넒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안녕 로렌스 안녕 소피아』는 스토리나 일러스트가 전반적으로 잔잔하다. 그래서 얼핏 보면 큰 깨달음을 느끼지 못할수도 있겠다. 그래서 미리 읽은 사람으로 당부하자면, 꼭 천천히 느리게 감상하시길. 혹 첫 번째로 느껴지는 것이 없다면 한번 더 읽어주시길 바란다. 그러면 분명 『안녕 로렌스 안녕 소피아』에 숨어있는 깊은 깨달음을 느끼게 될테니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영역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 영역을 허용하는 것도, 방어하는 것도 나의 선택이기도 하고. 울타리 안이 안전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영역이 혹 나를 가두는 장벽이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서로에게 둘러진 울타리가 서로를 향해 쳐진 가시덤불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안녕 로렌스 안녕 소피아』는 그렇게 우리가 치고 살아가는 울타리 혹은 장벽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었다.
안녕, 로렌스! 안녕, 소피아!
도린 크로닌 지음
웅진주니어 펴냄
1
시간이 가만히 서 있는 곳이 있다. 빗방울이 꼼짝도 하지 않고 공중에 멈춰 있다. 시계추는 반쯤 흔들리다 말고 둥둥 떠 있다. 개들은 코를 쳐들고 소리 없이 짖는 자세다. 행인들 은실로 매달려 있기라도 한 듯 다리를 허공에 든 채 먼지 낀 거리에 얼어붙어 있다. 대추야자와 망고, 고수와 커민의 향 이공기 중에 멈춰 있다. 방문객이 바깥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면 어느 쪽에서 다가오든 차차 느리게 움직이게 된다. 맥박이 점점 느려지고, 숨도 느리게 쉬고, 체온이 떨어지며, 생각도 흐릿해지다가, 한 가운데에 다다르면 멈추게 된다. 이곳은 시간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p.72)
시간의 조각을 맞춰보면 서로 거의 들어맞지만 완전하게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 아주 약간씩 자리가 어긋나는 일이 생긴다. (p.130)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시공간. 과연 나라면 이런 소재들로 어떤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분명 나도 언제나 상상력이 좋은 편이었고, 책을 부지런히 본 덕분에 드라마도 대부분 1편에서부터 누가 누구랑 이어지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등의 소위 “떡밥”을 잘 찾는 사람이지만, 이 소재들로 이런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정말 구병모 작가님이 왜 이 책을 그렇게 극찬하였는지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30년이나 꾸준히 읽히고, 전 세계 30개국에서 극찬을 받은 이 책, 『아인슈타인의 꿈』을 나는 왜 이제야 만나본걸까.
『아인슈타인의 꿈』은 서른번의 시공간을 여행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무려 아인슈타인이. 마치 그의 생각이 한계가 없었던 것처럼, 『아인슈타인의 꿈』에서는 시간에도 한계가 없이 여러 시간의 흐름, 역행, 정지, 반복 등을 경험하며 인간의 삶에 대해, 인간의 사유능력에 대해 천천히 풀어낸다. 어떤 면에서는 sf소설같지만, 나는 이 소설이야말로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인간 본연을 잘 다룬 책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쉬이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시간 흐름도 익숙하지 않고, 아인슈타인의 생각들에 대해서도 종종 이해가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부분을 살짝만 가벼이 넘기고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니 무척 남기는 게 많은 책이었다. 나는 『아인슈타인의 꿈』을 읽으며, 우리에게 후회나 반성 등의 감정을 주는 것은 결국 시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의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꿈』에서처럼 반복될 수 없으니까. 어쩌면 작가가 『아인슈타인의 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우리 삶은 이 책에서처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수도 없고, 반복하지 못하니 더 귀하게 살아가라는 것 아니었을까.
사실 시간만큼 모두에게 공평한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나이, 성별, 재산, 학벌 등에 관계없이 똑같이 24시간을 부여받으니까. 그러나 또 어떤 면에서는 시간만큼 공평하지 않은 것도 없다. 어떤 사람은 간절히 원해도 고작 몇년의 생을 받고, 지독히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수십년을 살다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잊지 않고 살아야하는지 내내 생각했다.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을 후회없이 살아가려면- 내가 무엇을 더 집중하고 무엇을 놓아야할지 깊이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먼 지음
다산책방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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