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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를 멈추지 않을 거야 - 고전 속 퀴어 로맨스
숀 휴잇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키스를 멈추지 않을거야
이 책을 선물 받고 한동안 책상 위 한 곳에 오래도록 놓여있었다.
책을 받았을 때 책 페이지에 있는 '고전 속 퀴어 로맨스'란 문구에서 나도 모르게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선입견이란 것은 가끔은 우리가 가 보지 않은 세계에 대해 어떠한 검증도 없이 마음의 문을 닿게 한다.
몇 주 전 대학원 강의 때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논하다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강의 도중 한 학생이 동성애에 대한 부분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는 모두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맞다 안 맞다는 것을 나쁘다는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존중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으로 학생에게 나의 뜻을 전달했는데 좀처럼 본인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나는 수업을 듣는 전체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생각에 강의실의 모든 학생들에게 이 주제에 대해 5분 발언권을 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었다. 특히 현재 주변에 동성애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의 모든 의견을 듣고 조금은 이해가 되었을까? 했던 나의 생각은 완전 오류였다. 처음 이 부분에 대해 질문했던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에 계속해서 논쟁이 이어져 "교수님 그냥 수업 계속해 주세요"라는 의견들이 쏟아지고 나서야 일단락이 지어졌지만, 강의를 마치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본인의 생각으로 수업 분위기를 흐려서 죄송합니다"
학생에게 답장을 했다. 개인의 생각들은 모두 소중하기 때문에 각자 존중 받아야 한다고.......
주말 연휴에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은 이 책을 안 읽었으면 엄청난 후회를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책이 너무나 흥미로워 이틀 만에 완독했다.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의 귀족 계층에서는 남성들 사이의 사랑, 특히 성인 남성(에라스테스)과 미소년(에로메노스) 간의 관계인 파이데라스티아(pederastia)가 일반적인 문화였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 교육적인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많았다. 에라스테스가 에로메노스에게 지성과 덕성을 가르치고 멘토 역할을 하는 식이었다.
플라톤의 '향연'은 이러한 남성들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대화편이며, 다양한 인물들이 사랑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여기서 플라톤은 육체적인 사랑을 넘어선 정신적이고 이상적인 사랑, 즉 우리가 흔히 "플라토닉 러브"라고 부르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육체적인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아름다움 그 자체, 즉 미의 이데아를 추구하는 사랑을 의미한다.
일부 학자들은 플라톤이 "여자와 동침하면 육신을 낳지만 남자와 동침하면 마음의 생명을 낳는다"고 강조한 것을 들어 그가 동성애를 고차원적인 사랑으로 여겼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문헌들을 통해 퀴어 서사를 탐색하고, 현대 독자들에게 퀴어 역사의 뿌리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고대에도 퀴어 사랑이 존재했으며, 그것이 단순히 일탈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향연',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등 고전 문학 속에 숨겨져 있거나 왜곡되었던 퀴어 로맨스들을 끄집어내어 현대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이는 근대 이후 종교적, 사회적 이유로 퀴어 서사가 억압되고 삭제된 역사를 역행하며, 잃어버린 과거를 다시 찾아주는 작업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책의 저자인 숀 휴잇과 그림을 그린 루크 에드워드 홀 모두 퀴어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고전 문헌 속에서 자신들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발견했다고 고백하며,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이 책의 내용에 깊이와 진정성을 더한다. 고대의 퀴어 영웅들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감각적인 삽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부분을 우리는 외면 시 하진 못할 것이다.
책은 사랑이 시대와 환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감정임을 강조한다. 고대인들의 사랑 이야기는 현대의 우리가 겪는 사랑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독자들이 사랑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시각을 갖도록 돕는다. 신화 속 신과 인간의 사랑, 동성애, 양성애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접하며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고전 문헌들을 인용하고 해석하는 숀 휴잇의 글과 루크 에드워드 홀의 모던하고 경쾌한 삽화가 어우러져 책의 매력은 두 배가 된다. 책을 읽으며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의 불편함에서 스스로 해방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고전이 가지고 있는 진중함과 현대 예술의 자유분방함이 만나 퀴어 로맨스에 대한 기존의 무겁거나 어두운 인식을 걷어내고 밝고 신선한 방식으로 접근한 부분을 높이 사고 싶다.
누구에게나 존중받을 권리는 있다. 그리고 모두에게는 가치관이 차이가 있다. 그것은 맞다, 아니다로 정의 내려지지는 못할 것이다. 도덕적, 윤리적 측면의 해석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나의 조심스러운 의견은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키스를 멈추지 않을 거야'는 단순히 고전 속 퀴어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퀴어 역사를 재구성하고, 사랑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긍정하며, 독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특히 고대 서사를 통해 퀴어의 존재가 결코 "새롭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늘 존재해왔음을 증명하며, 퀴어 독자들에게는 소속감을, 비퀴어 독자들에게는 사랑과 인간에 대한 더 넓은 이해를 선사하는 책이다.
많은 신화와 역사 속 이야기, 그리고 저자의 탁월한 해석에 나도 모르게 이 책에 빠져들었다. 모두는 존중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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