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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오상현 지음
스타북스 펴냄

목적은 <21세기 자본>을 독자에게 요약해 이해시키는 것에 있다. 자본이 성장하는 속도가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것이 역사적 법칙에 가깝다는 점을 실증하고, 이로부터 양극화며 계층 간 분화가 심화되며, 세제개혁 등 특단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인플레이션 등 양극화를 완화하는 큰 충격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 등이 <21세기 자본>이 다루는 바라 하겠다.

방대한 분량답게 이밖에도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책이지만,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철저히 원저를 홀로 읽을 역량이 되지 않는 독자에게 요점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즉, 자본성장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개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히카리의 삶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다.

부의 대물림과 부유한 집단의 공공연한 정책적 로비, 불로소득자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심지어는 그를 추종하기까지 하는 사회풍조, 50억 클럽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상류층의 부도덕한 부의 획득 등의 문제는 이 책의 경고가 이미 현실화됐음을 보인다. 그 와중에 피케티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돈을 이야기하는 역설적 상황은 사회가 어디까지 내몰려 있는지를 알도록 한다. 그렇다면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정말 필요한 곳은 일본이 아닌 한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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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역사를 모르는 이만이 기술발전이 인간과 문명을 진보케 하리라 확신한다. 불행히도 우리가 사는 세상엔 역사를 모르는 이가 훨씬 더 많으니 유발 하라리의 경고를 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AI 기반 알고리즘이 막대한 정보의 유통을 관리하는 새로운 권력으로 등극하리라 전망한다. 작게는 릴스처럼 사용자에게 무엇을 노출할지를 결정하는 주체로, 나아가 정당과 기업, 정부가 대중이며 소비자에게 현상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권력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 경고한다.

이에 대응하여 무대응이 대응이란 듯 자본과 패권의 논리로만 접근하는 우리 문명의 미래를 나는 암담하다 여긴다.

인간은 범용 AI의 알고리즘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각자의 현업에서 그에 의지하길 주저하지 않으니 그것은 한심함인가, 어찌할 수 없음인가. 모자란 대안에도 책을 필독서라 여기는 건 암담한 현실 가운데 이만한 논의나마 나눌 이가 흔치 않은 때문이다.

넥서스

유발 하라리 지음
김영사 펴냄

19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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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발전의 종착은 어디여야 하는가. 천선란의 답은 '인간성'이란 세 글자에 머문다.

소설은 집안 사정도 성격도 다른 두 친구, 언니와 동생, 엄마와 자식들, 사용주와 사용자, 말과 인간, 로봇과 생명 사이를 잇는 데 집중한다. 닿지 않을 것만 같던 다름이 마침내는 닿아 이어지는 순간을 초1 교과서며 애들 보는 동화책스런 당위적이고 감상적 태도로써 그린다.

갈수록 빨리만 달리려는 인간의 독주가 연골이 모조리 닳아버린 경주마처럼 무너짐에 이를 것은 순리처럼 보인다. 그 질주에 대한 경고로써 소외된 것을 돌아보길 청하는 소설이 틀렸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겠다. 너무나 외로워서 외로운 줄도 모르는 인간이 공존을 위하여 연대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란 얼마나 당위적인가.

그러나 난 추구미가 다정한 사람이므로, '착한 책이었고 내게는 맞지 않았음'이라고만 적어두기로 한다. 내게는 감동란보다 퍽퍽한 천선란이지만 영양가는 있겠거니.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지은이) 지음
허블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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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독서는 밤하늘에 별을 쏘아 올리는 일이다. 어느 독서는 북극성이고 남십자성이 되어 삶의 지표이며 길잡이가 된다. 물론 존재하는 모든 건 사멸하게 마련이고, 그 빛조차 마침내는 흐려질 것을 안다. 그렇다 해서 어디 쓸모없는 돌덩이를 내 귀한 별들에 댈 수 있을까.

독서가 필연적으로 비독서로 귀결된다는 주장은 맞는 얘길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모든 것의 귀착은 죽음이니까.

그러나 적어도 빛을 내고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독서는 독서로 남는다. 그 동안엔 좋은 독서와 겉만 핥는 독서, 독서를 참칭하는 이 책 속 무수한 흉내내기가 결코 같을 수 없다.

고의적 어그로든 아니든 간에 궤변으로 가득한 책이다. 읽지 않는 것도, 대충 훑어보거나 다른 이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도 독서와 매 한가지란 주장엔 퉤퉤퉤, 홀리한 아밀라이스를 뿌려줄 일.

되도 않는 일로 통빡 굴리지 말자. 안 읽은 책은 읽지 않았다고 하자.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지은이), 김병욱 (옮긴이) 지음
여름언덕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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