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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소설이 눈에 띄는 사건을 다루어야 한다고 여긴다. 클레어 키건이 이 소설에서 맞서는 게 바로 이와 같은 고정관념이다. 대단한 사건 하나 없는 며칠의 일상이 어쩌면 삶 전체를 바꾸는 소중한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으로 증명한다.
숙고 끝에 눌러쓴 듯한 문장으로 삶 가운데 흔치 않은 순간을 포착해 그려낸다. 눌려 있던 감정이 둑을 넘쳐 흐르고 가물었던 대지가 마땅한 은총을 받는 순간을 어떠한 신성도 없는 기적처럼 묘사한다.
넘지 못할 것처럼 보이던 선이 깨어지고 피어나지 않을 듯 했던 꽃이 피어나는 순간, 그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말하자면 <맡겨진 소녀>는 들꽃 한 송이 안에 깃든 기적을 내보인다. 그로써 들판에 널린 꽃을, 들판을, 온 세상을 다시 보도록 한다. 문학이 이룰 수 있는 아름다움이란 또한 이런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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