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미야모토 테루(1947~)라는 일본 작가가 쓴 책입니다. 소설이 나온 시점은 작가가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생활을 하다 1977년, 30세의 나이로 데뷔를 하게 되었고, 이 작품을 바탕으로 하는 '환상의 빛'이라는 동명의 영화가 1995년에 나온 것으로 미루어 1980년대 도는 1990년 초반에 쓰여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이 소설을 덥썩 집어든 것은 당시 저는 '소설로의 회귀'가 필요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들어서는 업무상 필요 때문에 심리학, 협상 관련류의 책들만을 탐독을 하다보니 살짝 지겹기도 했지만서도, 인풋 없이는 아웃풋이 안 된다, 는 흔하디 흔한 격언대로 소설류의 글들이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 라고 실감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이성적 필요와는 달리 감정적인 끌림, 그러니까 물론 마크 트웨인의 소설들이 슬쩍 저의 구미를 끌기를 했지만 이렇다하게 정말 이 소설을 읽고 싶다는 책들이 별로 없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이 소설을 만난 것입니다. 물론 **님처럼 소설에 깊이 있게 빠져들어 소설 안의 메타포와 각 문장들의 유기성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그에게 소설책을 빌려들면서도 적잖이 - 스스로가 - 의심스러워 대체로 책을 펼쳐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1980년대 무렵 나온 소설, 더군다나 일본 소설이 과연 2025년 속에 존재하는 제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었구요.
그러다가 가파르게 읽기 시작한 것은 **님이 나눔정모에 참석하신다는 알람을 받은 뒤였습니다. 책을 빌려주신지도 오래되었고, 간만에 참석을 하시니 - 누가 봐도 - 책을 회수하러 오셨구나, 싶었습니다. 연체료를 빚진 감각으로 뒤늦게 펼쳐 든 소설 속에 저는 깊이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이렇게도 소설을 쓸 수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소설은 칠 년 전에 전 남편과 사별하여 재혼한 서른 두 살이 된 한 여인이 전 남편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시작합니다.
# 어제, 저는 서른두 살이 되었습니다. 효고 현 아마가사키에서 이곳 오쿠노토의 소소기라는 해변 마을로 시집 온 지 만 삼 년이 되었으니 당신과 사별한 지도 그러저럭 칠 년이나 되었네요.
어린 아이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쪼들리지도 않았고, 부부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외려 좋은 편에 가까웠던), 전 남편은 어느 날 밤 기차 선로 위에 서서 자살을 합니다.
여인은 오랫동안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유는 정작 본인 말고는 정작 알 수가 없는 것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이유를 찾고 싶어 합니다. 혹시 나에게 문제가 있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자살한 그의 문제 아니면 가장 가까운 관계였던 부인 자신의 문제, 아니면 둘 사이의 문제...
영원히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요?
소설은 - 비록 몇 개 보지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 접했던 - 고요하고 잔잔한 일본 영화를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밋밋하고 사건도 없는 영화를 만들었나, 싶었다가 영화가 끝이 나면 알 수 없는 울림 같은 게 느껴지는 그런 영화 말입니다.
환상의 빛, 이라는 소설을 접고 나면 그와 같은 옅은 슬픔이 느껴집니다.
간만에 달달한 텍스트를 읽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동명의 영화가 있지만, 어쩐지 텍스트의 울림이 깨져 버릴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렇지 않을 거란 결단이 서게 되는 날보다는 고요함이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잔잔한 날을 골라 틀어볼까 합니다.
일본 소설 특유의 맛이 입에 배어, 당분간 일본 소설에 눈을 돌려볼까 하는 마음입니다.
주말이 눈 앞에 왔습니다.
환상의 빛, 이 가득한 하루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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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 법학부 재학시절 "일식"이라는 데뷔소설로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세간의 집중을 받게 됩니다. 데뷔작으로 워낙 유명해져서 바로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이 꽤 높았을 것 같은데요. 연이어 발표한 "달"이라는 작품은 일부에서는 "일식"보다 더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 받기도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달"이라는 작품에 "일식"보다 훨씬 더 매료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어쩌면 나의 오리진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리진이라니, 무슨 황당한 말이냐구요?
그러게요. 주말에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뜬 유튜브 영상을 클릭했는데, 자신의 롤모델을 찾으려면 어릴 적의 오리진을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어릴 적에 아주 매혹적으로 빠졌던 이야기라든지, 주인공이라든지요. 그건 굳이 책일 필요는 없구요. 영화나 드라마, 애니일 수도 있고, 주변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나는 어떤 이야기나 인물을 좋아했을까?
만화 중에는 비범한 천재의 이야기도 좋아했지만 - 정확히는 제가 가지지 못했으니 동경한 것 같습니다만 - 그것보다는 천재는 아니지만 미친 듯이 노력하여 정상에 오르는 주인공들을 무척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제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줬구요. 그래, 내가 지금은 잘 하는 게 없지만, 가진 것이 없지만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거야, 같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 책을 만난 거죠. 노력형 둔재의 이야기냐구요? 아닙니다. 판타지 멜로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부터 음울의 기운을 타고난 마사키라는 스물다섯의 젊은 청년은 시인입니다. 그렇지만 타고난 우울을 억제하지 못해 열 살 남짓부터 신경쇠약에 시달립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 발길 닿는 대로 떠도는 - 여행이 자신의 어두운 성질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소설 또한 여행 도중 왕선악이라는 산 속에서 길을 잃으면서 시작됩니다. 아름다운 나비를 좇다 번뜩 정신을 차려보니 깊은 산속이었습니다. 거기서 뱀에서 다리를 물려 정신을 잃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스님의 눈에 띄어 목숨을 잃기 전에 치료를 받게 되지만, 산 속 절간에서 독이 몸 속에 많이 퍼져 약 한 달 간의 요양이 필요하게 됩니다. 정신을 차린 그날부터 마사키는 매일 밤 같은 꿈을 꾸게 됩니다. 꿈 속에서는 절세의 미인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고혹적인 뒷모습이 매일 꿈에 나타나지만 언제가 나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마사키는 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병세가 호전되게 됩니다. 스님은 이제 치료가 다 되었으니 그만 절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마사키는 어쩐지 이 절과 그 꿈이 연관이 있다는 것 같다는 직감이 듭니다. 그러니까 절을 떠나게 되면 더 이상 그녀를 만날 수 없는 거죠. 마사키는 그때 깨닫습니다. 어느새 자신이 꿈 속의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요. 그렇지만 스님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몇 일을 더 미루게 됩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어릴 적에 흠모했던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제 또래라면 왕조현을 사랑하지 않는 사내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서 이걸 나의 오리진이라고 정의해도 될지 일순 망설였지만, 소설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해서 굉장히 오랜만에 푹 빠져서 읽은 책입니다.
저와 비슷한 오리진을 가지신 분들에게는 특별히 강추합니다😏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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