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말했습니다.
거래는 일종의 예술이다.
저번 주 화요일에 자정을 넘기는 교섭 랠리에서 반쯤은 포기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내일이면 공장의 불이 완전히 꺼지겠구나. 그런데 공장장님의 한 마디가 밤 12시 40분에 파업을 철회하고 현장에 복귀하기로 결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저를 포함한 실무자들이 랠리 과정에서 조금씩 빌드업을 한 공도 있겠지만 그 한 마디가 정말 예술이었던 것입니다.
이 경험이 저에게 트럼프의 말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 줬습니다.
그래서 오늘 가져올 책은 예술서적 중 하나입니다^^
+++
책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는가'는 'FBI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FBI 협상전문가인 크리스 보스가 쓴 책입니다. 크리스의 주전공은 인질협상이었습니다. 그에게 최악의 협상은 인질과 돈 모두를 잃는 거였습니다. 그는 이론보다는 그의 경험을 기반으로 그 나름의 독자적인 협상이론을 제시합니다.
책은 그가 하버드 협상 스쿨에 참여하여 협상이론에 통달한 하버드생들을 상대로 완벽하게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자신도 의아하게 여깁니다. 이는 단순히 경험이 부족한 게 아니라 기존의 협상이론의 결점 때문입니다. 당시, 그러니까 1980년도 초반에는 'Yes를 이끌어내는 협상법'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FBI 협상팀들은 그 책을 기반으로 한 협상법으로 사건에 접근합니다. 그 책에서 저자인 피셔와 유리는 인간의 감정적인 측면은 동물적이라서 신뢰할 수 없으면 그러한 비이성적인 면은 이성적인 문제해결 사고방식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4가지 기본 법칙을 강조합니다. 첫째, 사람 즉 감정과 문제를 분리한다. 둘째, 상대의 입장(요구)이 아니라 이해관계(요구를 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상대가 정말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는다. 셋째, 상호 이익이 되는 옵션을 창출하기 위해 협력한다. 넷째, 실행 가능한 해결책을 평가하기 위해 합의 기준을 확립한다.
그렇지만 1980년대 수많은 인질들을 잃으면서 FBI는 협상법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마침 그 즈음에 대니얼 카너먼(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은 인간은 매우 비이성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며 행동 경제학 분야를 창설하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완전히 합리적이지도 전적으로 이기적이지도 않으며 인간의 기호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으니, 합리적 행위자라는 전제로 협상에 접근하게 되면 실패할 확률에 높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감정적으로 격앙이 되어 있는 인질범을 상대로 한 협상에서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이를테면 막상 인질극을 벌었는데 실제로는 인질범의 숨은 욕구는 막대한 돈이 아니라, 단순히 그날 하루 질펀하게 놀 유흥비인 경우도 있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어려운 터라 경찰들이 자신의 목숨을 끊어주기를 바란 경우가 있었으며, 감옥에 가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설득과정에서는 흥분한 상대를 감정적으로 안정시키고 그들의 숨은 내면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저자는 수많은 기업 컨설팅을 통해 일반 협상에서도 효과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래도 인질 협상에서 터득한 협상법이라 실제 일상에 얼마나 적용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시사점이 충분할 것 같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심야 라디오 DJ 목소리로 말하라.
말 자체 뿐 아니라, 목소리톤, 어조, 표정, 제스처 등 비언어적 신호들이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협상 과정에서는 느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서 상대도 이에 동조하여 차분하게 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2. 미러링을 하라.
실제 레스토랑 서빙 직원을 둘로 나눠 테스트를 해 봤다고 합니다. 한 그룹은 훌륭해요, 문제 없어요, 물론이죠, 와 같은 말로 고객들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격려했고, 한 그룹은 단순히 고객의 주문을 되풀이해서 말했다(미러링)고 합니다. 실험결과는 둘째 그룹이 첫번째 그룹보다 평균 70% 높게 팁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러링 이후에는 반드시 4초 이상 침묵해야 한다고 합니다. 잠깐의 침묵이지만 미러링이 상대에게 마법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시간이라고 하네요.
3. 명명(Labeling)하라.
저자는 인질범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나오기 싫은 모양이네. 문을 열면 우리가 요란하게 총을 쏘며 들어갈까 봐 걱정인가 바. 교도소로 돌아가기 싫은가 보네." 인질범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감정을 발견하고 이를 언어로 표현한 다음 그 감정을 아주 차분하고 정중하게 그들에게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 이를 명명(Labeling)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바로 앞에서 탑승 수속 담당자가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본 라이언이 어떻게 격렬한 언쟁을 유리하게 이용하는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웬디. 저는 라이언입니다. 방금 저부들 무척 화난 모양이네요."
이 문장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명명하고 공감에 근거한 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웬디가 자기 상황을 부연 설명하도록 유도해 라이언이 미러링할 만한 말을 하도록 이끈다.
"네. 경유지 항공편을 놓쳤거든요. 날씨 때문에 항공편이 많이 지체됐어요."
"날씨 때문에요?"
동북부 지역 기상 악화가 전체 비행 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웬디가 설명한 후 라이언은 다시 부정적인 감정을 명명하고 웬디가 더 깊이 파고들도록 유도하기 위해 웬디의 답변을 따라했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겠네요."
"화를 참지 못하는 고객들이 많았어요. 이해는 하지만 소리 지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중요한 시합이 있어서 오스틴으로 가려는 승객들이 많아요."
"중요한 시합이요?"
"텍사스 대학교 대 미시시피 대학교 미식축구 경기가 열려서 오스틴으로 가는 모든 항공편이 만석이에요."
"만석이요?"
이제 말을 멈추자. 이 시점까지 라이언은 명명과 미러링을 활용해 웬디와 관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라이언이 아무런 요청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웬디는 그냥 잠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격분한 커플과 달리 라이언은 자기가 처한 상황을 인정했다. 라이언은 "그게 무슨 말이에요?"와 "잘 듣고 있어요." 사이를 오가는 말로 웬디가 자세한 설명을 하도록 이끌었다. 이제 공감대가 형성됐으므로 웬디는 라이언에게 유용한 정보를 흘렀다.
"네, 이번 주말 내내 경기가 있어요. 하지만 몇 명이나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날씨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일정을 변경해야 할 거에요."
마침내 라이언이 불쑥 요청을 한다. 여기에서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주목하라. 독단적이거나 냉정하게 논리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웬디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공감을 표현함으로써 조용히 두 사람을 같은 처지에 놓는다. 라이언은 "힘든 하루였지만 잘 견디신 것 같네요. 사실 저도 기상악화로 지연돼서 경유지 항공편을 놓쳤습니다. 이 비행기는 만석인 것 같지만 방금 하신 말씀을 들으니 어쩌면 날씨 때문에 이 항공편을 놓친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표를 구한 가능성이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이 반복 기법에 주목하라. 명명하고 전술적으로 공감한 뒤 다시 명명한다. 그 다음에 비로소 요청한다. 이 시점에서 웬디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30초 뒤 웬디는 탑승권을 라이언에게 건넸다. 게다가 웬디가 이코노미플러스 좌석을 준비해줌으로써 라이언의 성공 사례는 더욱 빛났다. 이 모든 일이 2분 안에 일어났다!
4. 예, 대신 아니오를 끄집어내라.
정수기 판매를 위한 텔레 마케터는 최종의 예를 끄집어 내기 위해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스미스 씨, 물 자주 드시죠?와 같은 질문을 할 경우 "예"라고 빠르게 답변하겠지만, 실은 뭔가 말리는 기분이 들면서 되레 방어벽을 세우고 당신을 신뢰할 수 없는 인간으로 치부한다고 합니다. 상식과는 달리 "아니오"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안도감, 안심, 통제감을 느끼므로 이를 유도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잠시 시간 내 주실 수 있나요?"라는 질문보다 "지금 얘기하기 곤란하신가요?"라는 질문이 더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그래, 맞아, 를 이끌어내는 법, 문제해결을 위한 교정질문의 요령(왜, 라고 묻지 말고, 무엇을, 어떻게, 라고 물어라) 등등 실전 협상에 유용한 팁들이 가뜩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가르친 사람들이 본인의 협상기술로 인생을 바꾸는 결과를 얻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인생역전을 원하신다면 강력추천드립니다^^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는가
탈 라즈 지음
프롬북스 펴냄
읽고있어요
0

교토대 법학부 재학시절 "일식"이라는 데뷔소설로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세간의 집중을 받게 됩니다. 데뷔작으로 워낙 유명해져서 바로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이 꽤 높았을 것 같은데요. 연이어 발표한 "달"이라는 작품은 일부에서는 "일식"보다 더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 받기도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달"이라는 작품에 "일식"보다 훨씬 더 매료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어쩌면 나의 오리진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리진이라니, 무슨 황당한 말이냐구요?
그러게요. 주말에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뜬 유튜브 영상을 클릭했는데, 자신의 롤모델을 찾으려면 어릴 적의 오리진을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어릴 적에 아주 매혹적으로 빠졌던 이야기라든지, 주인공이라든지요. 그건 굳이 책일 필요는 없구요. 영화나 드라마, 애니일 수도 있고, 주변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나는 어떤 이야기나 인물을 좋아했을까?
만화 중에는 비범한 천재의 이야기도 좋아했지만 - 정확히는 제가 가지지 못했으니 동경한 것 같습니다만 - 그것보다는 천재는 아니지만 미친 듯이 노력하여 정상에 오르는 주인공들을 무척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제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줬구요. 그래, 내가 지금은 잘 하는 게 없지만, 가진 것이 없지만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거야, 같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 책을 만난 거죠. 노력형 둔재의 이야기냐구요? 아닙니다. 판타지 멜로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부터 음울의 기운을 타고난 마사키라는 스물다섯의 젊은 청년은 시인입니다. 그렇지만 타고난 우울을 억제하지 못해 열 살 남짓부터 신경쇠약에 시달립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 발길 닿는 대로 떠도는 - 여행이 자신의 어두운 성질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소설 또한 여행 도중 왕선악이라는 산 속에서 길을 잃으면서 시작됩니다. 아름다운 나비를 좇다 번뜩 정신을 차려보니 깊은 산속이었습니다. 거기서 뱀에서 다리를 물려 정신을 잃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스님의 눈에 띄어 목숨을 잃기 전에 치료를 받게 되지만, 산 속 절간에서 독이 몸 속에 많이 퍼져 약 한 달 간의 요양이 필요하게 됩니다. 정신을 차린 그날부터 마사키는 매일 밤 같은 꿈을 꾸게 됩니다. 꿈 속에서는 절세의 미인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고혹적인 뒷모습이 매일 꿈에 나타나지만 언제가 나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마사키는 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병세가 호전되게 됩니다. 스님은 이제 치료가 다 되었으니 그만 절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마사키는 어쩐지 이 절과 그 꿈이 연관이 있다는 것 같다는 직감이 듭니다. 그러니까 절을 떠나게 되면 더 이상 그녀를 만날 수 없는 거죠. 마사키는 그때 깨닫습니다. 어느새 자신이 꿈 속의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요. 그렇지만 스님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몇 일을 더 미루게 됩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어릴 적에 흠모했던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제 또래라면 왕조현을 사랑하지 않는 사내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서 이걸 나의 오리진이라고 정의해도 될지 일순 망설였지만, 소설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해서 굉장히 오랜만에 푹 빠져서 읽은 책입니다.
저와 비슷한 오리진을 가지신 분들에게는 특별히 강추합니다😏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