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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인 충만감이랄까. 내 안에 무언가가 쌓이기 시작하니까, 이제는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위축되거나 주눅 드는 일이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이 궁금해지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들어보고 싶어지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저를 보고 그래요. “내가 알던 네가 아닌 것 같다”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내심 기분이 좋죠. 나도 지금의 내가 더 나은 사람 같거든요.
그렇게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도 바뀌었다. 그러니 어쩌면 선생님의 마음속 열두 살 소년이 그리던 “다른 세상은, 결국 “다른 나”로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p.46)
비록 당일치기지만, 오랜만에 아이 없이 나 혼자 나선 여행길에 김달님 작가님의 『뜻밖의 우정』을 들고 나섰다. 책이라는 매개로 인해 우연히 친구가 된 언니를 만나는 데 이보다 적합한 책이 또 있을까 생각했던 것.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으면서도 동생을 만나겠다고 정성 가득한 선물을 바리바리 싸 온 언니의 마음처럼, 『뜻밖의 우정』에는 김달님 작가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친구들의 뜨거운 우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나보다 더 젊은 김달님 작가님에게서 노인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주제일 것이다. 그녀의 성장 과정 때문인지, 특유의 깊은 문장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뜻밖의 우정』에서 느끼는 섬세한 이야기들도 어색함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이 『나의 두 사람』의 연장선처럼 당연하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 역시 그 문장들에 흠뻑 취해있었다. 그녀는 오직 순전한 호기심에서 노인들의 '사는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나의 부모님이 노인이 되어야 겨우 관심을 가지는 중인 나에게 낯선 주제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으나,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나요?”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책은 나의 부모님 이야기가 되었고,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우리는 모두 언젠가 노인이 된다.”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뜻밖의 우정』에서는 꽤 많은 노인을 만날 수 있다. 랩을 하는 노인, 끝없이 학습하는 노인, 글을 쓰는 노인, 뮤지컬 배우가 되신 노인, 선생님'이었던' 노인,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고, 음식을 하고, 자신의 돌보는 노인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나는 그들에게서 “노인”이라는 단어가 아닌 그저 “人”만을 느끼게 되더라. 그렇게 그들의 나이가 아닌,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문득 작가님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지나온 시간”이 아닌, 여전히 부지런히 걷고, 촘촘히 살아내고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들 사이에서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 일이 없었다는 그녀의 말이 쉬이 들리지 않았던 것은, 노인들이 치열한 삶에서 물러나 앉았기 때문이 아니라 한발 뒤에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진 이들이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거의 대다수 타인에게서는 늘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노인이 된 나에게는 어떤 자리가 필요할까. (p.238)”하고. 마흔을 넘어서고도 아직 멀 일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지금쯤 내가 그것을 생각해봄이 당연하단 것을 문득 깨닫는다. 지금 내가 그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가, 앞으로 내가 살아가게 될 세상임을 느낀다. 그래서 『뜻밖의 우정』을 읽는 내내 마음이 뜨거웠고, 깨달았고, 배웠다.
김달님 작가는 자신이 노년의 이야기를 담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으나, 나는 『뜻밖의 우정』을 읽으며 노년을 넘어 사람 자체를 다시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가슴 깊이 노년이 되어갈 나의 여생을 더 제대로, 더 사람답게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촘촘히 기록한 누군가의 삶에서 나를 보며, 나의 오늘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시간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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