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해덕인 엄마덕분에 일찌감치 해리포터에 인문한 아이다. 사실 해리포터도 은근히 글밥이 많은 편이기에 과연 우리 아이가 이걸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너무 재미있는지 꽤 오랜기간을 집중해 전 시리즈를 다 읽어냈다. 그때는 몰랐다.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다른 판타지를 계속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타깝게도 해리포터를 읽어낸 아이에게 대충 시시한 판타지가 재미있게 느껴질 리 없었던 것. 하지만 나 역시 판타지에 풍덩 빠져지낸 시간이 있었기에 재미있는 것은 기가 막히게 선별할 줄 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소개했던 책, 『안개 너머의 신기한 마을』과 『귀명사 골목의 여름』의 가시와바 사치코의 새 책 정도 되면 우리 꼬마의 호기심도 빵빵 채울 수 있겠지?
가시와바 사치코의 신간, 『용이 부른 아이』의 번째 이야기는 '활 마녀의 저주'다. 사실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이건 대형판타지가 되겠구나!'생각했는데, 첫 장에서부터 용이 등장하고, 용이 부르지 않으면 마을에서 나가지도 못한다는 설정이었기 때문! 아니나다를까. 우리의 주인공은 열살이 되자마자 용의 부름을 받은 녀석으로, 초3 우리아이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우리아이처럼 초3정도의 아이에서부터 초등 고학년까지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가시와바 사치코의 신간, 『용이 부른 아이』! (사실은 아이에게 내주기 전에 엄마가 먼저 읽었는데,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다.)
가시와바 사치코의 신간, 『용이 부른 아이』가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은 우리가 흔히 읽어온 판타지의 느낌을 가득 담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느낌의 시각이나 분위기를 잘 다루고 있던 것.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성장이나 심리의 변화, 운명 등에 대해 심취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유머러스한 부분과 슬픔,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 등을 고루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심취하여 읽었던 것 같다.
미아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아이도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랐다. 나에게도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모습 등을 고민해보게 도와준 책, 가시와바 사치코의 신간, 『용이 부른 아이』였다.
용이 부른 아이 1
가시와바 사치코 지음
한빛에듀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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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인 충만감이랄까. 내 안에 무언가가 쌓이기 시작하니까, 이제는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위축되거나 주눅 드는 일이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이 궁금해지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들어보고 싶어지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저를 보고 그래요. “내가 알던 네가 아닌 것 같다”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내심 기분이 좋죠. 나도 지금의 내가 더 나은 사람 같거든요.
그렇게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도 바뀌었다. 그러니 어쩌면 선생님의 마음속 열두 살 소년이 그리던 “다른 세상은, 결국 “다른 나”로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p.46)
비록 당일치기지만, 오랜만에 아이 없이 나 혼자 나선 여행길에 김달님 작가님의 『뜻밖의 우정』을 들고 나섰다. 책이라는 매개로 인해 우연히 친구가 된 언니를 만나는 데 이보다 적합한 책이 또 있을까 생각했던 것.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으면서도 동생을 만나겠다고 정성 가득한 선물을 바리바리 싸 온 언니의 마음처럼, 『뜻밖의 우정』에는 김달님 작가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친구들의 뜨거운 우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나보다 더 젊은 김달님 작가님에게서 노인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주제일 것이다. 그녀의 성장 과정 때문인지, 특유의 깊은 문장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뜻밖의 우정』에서 느끼는 섬세한 이야기들도 어색함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이 『나의 두 사람』의 연장선처럼 당연하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 역시 그 문장들에 흠뻑 취해있었다. 그녀는 오직 순전한 호기심에서 노인들의 '사는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나의 부모님이 노인이 되어야 겨우 관심을 가지는 중인 나에게 낯선 주제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으나,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나요?”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책은 나의 부모님 이야기가 되었고,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우리는 모두 언젠가 노인이 된다.”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뜻밖의 우정』에서는 꽤 많은 노인을 만날 수 있다. 랩을 하는 노인, 끝없이 학습하는 노인, 글을 쓰는 노인, 뮤지컬 배우가 되신 노인, 선생님'이었던' 노인,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고, 음식을 하고, 자신의 돌보는 노인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나는 그들에게서 “노인”이라는 단어가 아닌 그저 “人”만을 느끼게 되더라. 그렇게 그들의 나이가 아닌,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문득 작가님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지나온 시간”이 아닌, 여전히 부지런히 걷고, 촘촘히 살아내고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들 사이에서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 일이 없었다는 그녀의 말이 쉬이 들리지 않았던 것은, 노인들이 치열한 삶에서 물러나 앉았기 때문이 아니라 한발 뒤에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진 이들이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거의 대다수 타인에게서는 늘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노인이 된 나에게는 어떤 자리가 필요할까. (p.238)”하고. 마흔을 넘어서고도 아직 멀 일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지금쯤 내가 그것을 생각해봄이 당연하단 것을 문득 깨닫는다. 지금 내가 그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가, 앞으로 내가 살아가게 될 세상임을 느낀다. 그래서 『뜻밖의 우정』을 읽는 내내 마음이 뜨거웠고, 깨달았고, 배웠다.
김달님 작가는 자신이 노년의 이야기를 담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으나, 나는 『뜻밖의 우정』을 읽으며 노년을 넘어 사람 자체를 다시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가슴 깊이 노년이 되어갈 나의 여생을 더 제대로, 더 사람답게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촘촘히 기록한 누군가의 삶에서 나를 보며, 나의 오늘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시간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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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비밀번호도 잊어버리고, 정말 쓸데 없는 인간이 됐어”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낄 때마다 이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빤느 자신감 넘치는 분이었는데 관공서에서 오는 서류가 있으면 나를 통해서 다시 한번 내용을 확인하셨다. 어딘가 모르게 소극적으로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운전도 점차 기피하셨다. (P.45)
차를 큰 것으로 바꾸었다.원래도 큰 편인 SUV를 타고 다녔지만, 최근에는 자녀가 많은 집 필수라는 차종으로 바꾸었다. 젊은 지인들은 “아이도 하나면서 왠 카**이에요?”라고 물었고, 내 또래 이상들은 한결같이 “그래, 점점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야하지?”하고 묻더라. 맞다. 내 차를 바꾼 것은 100% 부모님때문이다. 엄마도 아빠도 점점 나이를 먹어감을 느꼈고, 최근 몇년간 두분이 번갈아 병치레를 하며 내가 보호자의 위치로 자리를 바꿔가고 있음을 느낀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담다의 도서, 『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를 읽는게 조금 힘들었다.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마구 뒤섞인 탓에.
『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두 아이가 부모님의 마지막 여정을 기록한 것으로,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지막을 기록한 책이자 알츠하이머를 대하는 마음 등을 모두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만약 안타깝지만 작가와 비슷한 입장에 놓여있거나, 나처럼 부모님과의 포지션이 바뀌는 시점에 있는 이들 모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이 책에 기록된 것처럼 세상에는 “혼자할 수 있는 돌봄”이 없기에 모든 이들이 세상의 변화를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또 우리 사회에 다가올 자연스러운 현상들을 보다 현실적으로 제도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를 읽는 내내 짙어지는 병세의 엄마와 아빠를 모시는 것은 어떤 무게일지를 계속 생각해보게 되더라. 작가처럼 나역시 삼남매지만, 엄마아빠 곁에 사는 것이 나이기에 당연히 내가 부모님의 노후를 챙기리라 생각하고 살고 있기에 『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의 문장들이 쉬이 읽히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부모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을 읽을 때에는 좀 많이 울었다. 지금은 아이의 보호를 위해 사용하는 어플을, 언젠가 부모님의 폰에 깔아드려야 할 때, 나는 어떤 마음일까. 나는 어떤 얼굴이 될까. 그래서 이토록 술술 씌여진 책을 나는 오래오래 망설이며 읽었던 것 같다.
그와중에도 작가는,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이 두 분을 보면서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란 걸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p.174)”고 기록한다. 혼자 짊어지기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도 그안에서 성장을, 배움을, 감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것이 참 많았다. 담다의 윤슬님이 기록한 말처럼, “좋아하는 것을 향해 핸들을 쥐는 이야기”임을 여러번 느꼈다.
어느새 나의 삶도 후반전을 막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전반전을 부지런히 뛰며 자라고, 어른이 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는 동안 감독이자 코치로 살아온 나의 부모님. 그 큰 사랑과 감사를 알지만 그럼에도 후반전에도 그렇게 있어주시기를 바라본다. 내가 그들을 엎고 걷는 날이 오더라도, 내 인생 일등석에는 늘 당신들이 앉아계시기를.
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이재아 지음
담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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