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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작별

최진영 외 5명 지음
책깃 펴냄

색다른 작별들. 익숙하고도 낯선 작별의 순간들을 엮은 책이다. 여러 소재를 통해 제각각의 작별을 섬세히 그려냈는데, 작가님들의 특색이 잘 드러나서 더 좋았다. 특히 기억남았던 작들에 대해서 읊어보자면 표제작인 <우연한 작별>(김화진)은 쌉싸름한 성장통의 끝에게 작별을 고했고. <에버 어게인>(조우리)은 고인이 된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폭로를 통한 작별을 그려냈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휴일>(최진영)은 사회적 약자가 약자를 벗어난 삶을 다짐하게 되는 시작이 과거에 대한 작별이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작별은 단지 헤어짐이 아니다. 삶에 대한 애정과 사람 간의 온기가 기반인, 새 삶의 시작과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작별을 두려워 말자. 시작하는 마음으로 산뜻하게 작별을 고할 수 있도록. <우연한 작별>을 읽으며 차근히 준비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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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구획화. 식물들에게서 자신의 슬픔을 비추어 보는 사람. 슬픔을 반추함으로써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함께 슬픔 속을 거니는 상태가 동적 평형을 이루는 시상. 슬픔의 원인을 모르겠어서, 그래서 화자의 진솔한 슬픔이 더 애틋하고.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이승희 지음
문학동네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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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타인의 삶 속 한 인물의 이야기를 엮으면 서사가 된다. 그 인물의 인생이 탄생한다. 어쩌면 편협한 사고의 결과물로서 못난 성품의 사람일 수도 있겠고. 매력적인 사람일 수도 있겠고. 특별하거나 지난할 정도로 무색무취의 인간일 수도 있겠다. 윤해서의 그는 적당한 인간이다. 오히려 적당해서 평범하지 않은. 그냥 그런. 그러나 그냥으로 설명하기엔 약간은 어려운 사람. 뭐 그럴 수도. 우연과 필연을 제멋대로 넘나들고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혹은 그러한 인상을 주는—사람. 우리는 서로의 삶의 대변자이다. 서술자이다. 나는 너가 없으면 완전하지 못하다. 상호 보완의 관계.

“네가 욕망하는 걸 내가 욕망하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분노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물론 너는 나를 알 필요도 없고. 지치면 눈을 감아. 악을 쓰고, 울지 말고. 혼자 잠들 줄 몰라서 우는 애처럼 굴지 말라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문장. 나는 ‘그’를 간직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며 내가 마치 이방인이 아닌 책 속 등장인물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나와 실제로 관계를 맺은 사람도 아닌데 어째서 이토록 수치심이 드는지.

“신이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부재의 방식으로 편재하는. 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인간은 꼭 신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구나. 문득 혼잣말을 하다가. 나도 엄마처럼 혼잣말을 하는구나. 혼잣말도 혼자 못하게. 엄마가 또. 서봄은 당구대를 가만히 내려보다 혼잣말을 했다. 각자 살자며. 길이 보이지 않았다. 살자며. 당구대에 눈물이 떨어졌다.”
이 문장이 적힌 페이지를 읽을 때—1부에서와 2부에서 같은 문장을 보고 같은 충격을 받았다, 동일한 크기로—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신과 같은 방식으로, 내 곁에 실재하지 않으나 항상 깃들어 있는. 눈물이 났다. 어디에나 있어서. 있어줘서. 각자 살지 않아서. 우리가 우리를 읽어내고, 적어내리고, 기대어서.

책을 목차부터 보는 습관이 있다. 열 중 여덟은 가지고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습관이다. 아무튼 오늘도 책을 펼쳐 목차를 보았고, 이 중편 소설은 2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1부 그, 2부 그. 그와 그. 독특한 이름 구성이다. 읽어보니 더 독특했다. 1부와 2부는 평행 세계처럼 인물들의 성별 반전, 그러나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찌 보면 2부는 1부의 인물만 전환해서 나타낸 것 같다가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고. 왠지 모르게 부럽기도 하고. 당신은 수많은 이들에게 읽혔고, 읽힌다. “그는 켜졌다, 꺼졌다.”

윤해서 지음
문학실험실 펴냄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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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부조리나 상황, 감정 등을 개인적 경험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다정한 방식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직시하게 도와주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인종 차별에 대한 것, 현대 사회의 만성적인 외로움, 재정난과 여유의 상실을 조화롭게 풀어낸 이야기. 단편인 게 아쉬웠다. 남은 페이지 수가 줄어들수록 이 이야기의 끝이 나지 않길 바랐다. 라비우와 링과. 입술과 혀, 혹은 입술과 단어. 혀 끝까지는 미끄러지듯 단어가 풍만하게도 넘실대는데. 왜 입술 밖으로 발화되는 순간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사랑이 싹트기도 하는 것인지. 왜 생각과 (발화 시점, 변질되는 뜻) 같지 않은지. 고질적으로 앓아온 외로움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김서해만이 도출해낼 수 있는 답을 읽었다.

“나는 가끔 내가 실망으로만 이루어진 사람 같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15p)” 화자가 나와 참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는 그와 같이 궁핍하지 않으나. 내 수많은 후회와 고민, 인연의 누락, 관계로부터의 상처들만이 나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 같으므로. 약간은 무례할 수 있는 동질감. 그리고 (기간제였던) 브라질 친구 이네스. 이들이 일구어내는 관계가 내겐 너무 소중해보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내게 소중한 관계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던 날들이 생각났고—물론 현재진행형이다—그와 더불어 문제의 해결에 필요할 약간의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나는 관계에 의존하는 법을 버릴지도 모른다. 그 관계에서 얻어낸 것들은, 관계의 끈이 내게서 떨어져버리더라도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에. 내 불안과 함께 내 몸을 이룰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내게 남겨질 부속물이므로.

라비우와 링과

김서해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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