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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나이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반타 펴냄

총 104권의 저서. 그야말로 다작하는 작가다. 쓰는데 두려움이 없고 아무리 그 '히가시노 게이고'라도 모든 작품이 걸작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처음 접한 그의 작품은 <명탐정의 규칙>이었는데, 그때 느낀 감상은 클리셰를 정확히 파악하다 못해 농담거리로 삼을 정도로 추리를 잘 아는 작가라는 인상이었다. 이제 와서 평가받을 위치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이후로 그의 책을 몇 권 더 읽었고 크게 다가온 건 없었다.

그 다음에 읽은 것이 <장미와 나이프>다. 단편 추리물 모음이고, 역자 후기에 나와있듯이 레트로 풍이다. 사건현장. 탐정. 추리. 반전의 각 잡힌 구성을 갖는다. 다만 여기에 등장하는 탐정은 홈즈나 푸아로 혹은 미스 마플같은 '얼굴'을 갖지 않는다. 탐정 클럽에서 나왔다는 2인조의 간략한 인상은(심지어 탐정+조수의 전형적인 콤비)묘사되나 그들은 캐릭터보다는 유령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차갑고 일처리 정확한-엔딩에 이르면 스르르 모습을 감추고 없는 기묘한 존재들이다. 이 콤비가 언젠가 '얼굴'을 갖게 될지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장미와 나이프>는 탐정물이 아니다. 사건 그 자체가 주인공이다. 더 자세히는 반전을 위해 쓰여진 글이다. 탐정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현장에는 누구도 예상 못한 결말만이 남는다. 무언가를 예상했다고 생각한 순간 전혀 다른 곳에서 뒤통수를 맞는다. 속되게 말하면 막장드라마에 가까운 스토리인데, 애초에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회원제 탐정 클럽이니 막장이 나오지 않는게 더 이상하다. '이 막장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가 롤러코스터의 상승 파트가 되어준다. 막장에 반전, 신기에 가까운 탐정의 추리력이 더해지면서 롤러코스터는 빠르게 질주한다. 순식간에 도착 지점에 다다른 우리는 멍한 얼굴로 책을 덮는다. 추리가 이렇게 과속해도 되는 건가? 근데 재밌었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야. 라는 말을 하고 만다.

그래.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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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호러 감성과 한국 호러는 결이 다르다.일본은 신이 굉장히 많고,그만큼 잡신(귀신)도 많다.그러니 신사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그 ‘신‘에게서 비롯하는 저주,부적,인형이 추가적으로 따라오기도 한다. 반면 한국 호러는 한 맺힌 ‘사람‘과 인과응보를 기본으로 한다.공포를 느끼는 지점이 다르면 몰입하기도 어렵다.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도리이(신사 입구의 기둥문)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 호러에 섞여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들만 노리는 귀신은 그냥 변태녀석같고. 어디가 무서운지 잘 모르겠고. 모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게 최대의 매력이라는데 도무지 몰입이 안 됐다. 이런 걸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단 말이지. 일단 빌렸으니까 끝까지 읽자 싶어서 절반을 읽었다.

그런데 어느 지점부터일까.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변방 오컬트 잡지 기자를 컨셉으로 하고 있다지만 너무 깊이가 없잖아-싶던 것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화자에게 손목을 붙잡혀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밖‘에서 보고 있던 독자를 순식간에 ‘안쪽‘으로 잡아끈다. 세계와 화자의 경계선이 지워지고 만다. 잡지와 인터뷰,SNS에서 오려낸 이야기의 조각들이 모여 전혀 다른 그림을 만들어낸다.

역시 한국말도 끝까지 들어봐야 하고 소설은 끝까지 읽어봐야 안다. 하지만 그게 엄청난 재미나 공포를 느낄 만한 이야기라는 뜻은 아니다. 이 소설의 진가는 소재 자체가 아니라 빌드업에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 책 한 권 자체가 잘 구축된 작품이다. 끈질기게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를 함께 추적해 나간 독자만이 완성된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반타 펴냄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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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리얼리티를 찾아내어 수집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했다. 세상에 완전한 허구 소설은 존재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으며, 그 땅 위에는 갖가지 인간 군상이 있다. 작가 자신, 작가가 보는 사람, 작가가 볼 수 없는 사람과 그들의 생활 양식까지. 어쩌면 작가의 의무는 그 '리얼리티'들을 빠짐없이 포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보영 작가는 김초엽의 글이 '모든 것을 감싸안는다'고 했다. 작가 자신, 다수의 사람, 소수의 사람 모두를 감싸안는다. 딱 한 사람이어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이 땅에 '리얼리티'로 존재하기에 김초엽은 그 모두를 쓴다. 대신에 타자의 눈으로 그들을 평가하거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그들의 입으로 말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에, 이야기는 한없이 따뜻한 것이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주인공이 누구든지간에 완벽하게 그가 된다는 것-처음부터 그들이었던 사람처럼 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래서 나는 김초엽 작가가 좋다.

표제작 <양면의 조개껍데기>에는 두 개의 자아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는 한 사람만의 특징이 아니라 어느 종족이 가진 특징이다. 이들은 자신의 여러 자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거나, 의학의 도움을 받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택하기도 한다. 주인공 샐리는 샐리라는 그릇 안에 '라임'과 '레몬'이라는 자아를 갖고 있다. 두 자아는 툭하면 충돌하지만, 어떤 일에 있어서는 각자의 장점을 발휘하기도 한다. 라임과 레몬은 처음에 헤어질 결심을 하지만, 점차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네가 저 깊은 바다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라는 자문에 샐리는 '아무도 나에게 너는 왜 그런 존재냐고 묻지 않는 곳'이라는 답을 얻는다. 자아가 두 개인 우리.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너. 다소 까칠한 너. 나와는 반대되는 너. 너와 나를 감싸안는 과정은 '외계에서 온 존재'로 비유되는 '소수의 존재'가 세계에 포용되는 과정과도 같다.

<소금물 주파수>는 어린 고래의 입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고래는 때로 천진난만하고 끝없는 자기 탐색의 길을 걷는다.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한 아웃사이더 고래는 자신과 비슷한 존재를 찾아 떠난다. 왜 나는 이런 것들을 알고 있을까? 나는 어떤 이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그런 한편 더 먼 세상을 알고 싶어한다. 안쪽(자아)의 심연과 바깥쪽(세상)의 대양을 동시에 탐험한다. 그 끝에서 도달한 존재의 의미가 사랑이어서, 이 단편은 내가 가장 좋아한 이야기가 되었다. 작가의 고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데면데면한 동시에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애정이 느껴진다. 꼭 작가의 말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끊임없이 공상에 빠지는 이, 자신이 동물이거나 기계라고 믿는 이, 결함이 있는 로봇,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진 이, 외계에서 온 이.....김초엽의 세계는 그들을 주인공으로 호출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땅에도 존재하는 이들의 비유임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활짝 열린 해피엔딩으로 나아간다.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준 이에게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향하는 초대장을 남기면서. 앞으로의 지구는 그 초대장을 받은 이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대 문학을 말할 때 김초엽이 항상 불려나오는 것은, 이미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나는 김초엽이 계속해서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넘치는' 이야기를 써 주면 좋겠다.

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래빗홀 펴냄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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