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내내 생각했던 점은 다음과 같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작가의 어떠한 메세지를 전달한다기 보다는 상상력에 기반한 망상에 불과한 것인가?'
실제로 책의 구성과 전개가 한 편의 영상을 보는 것 같았기에, 나는 독서중 끊임없이 긴장감과 호기심을 가지며 책의 마지막 장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러나 독서하는 자들이 항상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후반 챕터에서 서서히 느낄 수 있었다.
'아직 해결된 것이 없는데, 왜 벌써 남은 장수가 이것 뿐이지?'
...
결론이 너무나 아쉽다.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열린 결말의 형상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2009 멀티 문학상 심사평에 의하면, 당시 심사위원이 주목한 본 작품의 작가의 작품이 네 편이었다.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 주제의식 등 이런저런 평가를 거쳐 결과적으로 해당 작품 '절망의 구'가 멀티 문학상을 수상받았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서도 계속해서 무언가에게 쫓기는 우리네들의 고민과 불안을 담고 있다고 적혀있다.
이 '절망의 구'로 인한 전지구적인 절망 상황이 은유하고 있는 더 큰 우리 자신만의 고독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바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시사하는 바를 마지막에 몰아서 전하려는 나머지 '절망의 구' 그 자체에 대해 독자가 품을 수 있는 의구심에 대한 실마리는 하나도 풀리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나 아쉽다.
그럼에도 킬링타임용으로 가볍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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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유진이와 사건의 전말은 소설이 전개되면서 점차 예측이 가능했지만-물론 결말은 황당함을 넘어 어떠한 편견이 더욱 굳세게 자리 잡기까지 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책 제목이었다.
왜 종의 기원일까, 읽는 내내 궁금했다. 그러다 작가의 말을 보고 이해했고, 또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어째서인지 이 책의 챕터 1을 읽고 부터는 완독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정확히는, 챕터 1을 읽고, 독서를 이어가기까지의 시간이 몇달이나 걸렸다. 그동안 독서를 이어가고자 하는 책임감과 이유를 할 수 없는 회피감이 공존했다. 그래서 몇번이나 대출했다 손도 대지 않고 다시 반납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오늘이었다. 조금만이라도 독서하겠노라, 앞으로 이어질 내용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겠노라 딱 한 번 마음먹고부터는 순식간이었다. 얼마되지 않아 완독에 성공했다.
그래, 어쩌면 나는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이 작가가 최종적으로 시사하는 바와 같이 나의 깊은 안쪽을 들여다보고 이를 직시하는 것이 말이다. 고작 챕터 1에서부터 나는 은연중에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완독함으로써 느낀 바는 분명하다.
누구나 심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를 온전히 직면하고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종의 기원이겠고, 또 현 인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역량이 그것이지 않을까 한다.
나라는 작은 존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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