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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음모론의 시대다"
전상진 선생은 학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는 '음모론'이라는 단어를 과감히 내세워 이 시대를 진단해 낸다. 놀랍고도 안타깝게도 그가 진단하는 시대 정의는 지나치리만큼 설득력 있다. 그렇다. 지금은 음모론의 시대다.
음모론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지금이 음모론의 시대라고 부르는 전상진선생의 말의 설득력이 달라질 것이다. 이 시대를 잘 포착해내되, 어느 시대에나 통용될 법한 것을 꺼내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음모론은 세계나 사건의 원인을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으로 무조건적으로 돌려버리는 설명 체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음모론의 시대가 된 것은 지나치게 복잡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맞는 얘기다. 게다가 복잡할 뿐 아니라 너무 전문적인 것들이 많아서 무엇이 진짜인지 전문가가 아니면 알 도리도 없다. 하다못해 4대강 정비사업(이라 쓰고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라고 읽는다)만 하더라도 그에 따른 효과와 부작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이는 천안함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것을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너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그러한 사건들의 책임 귀속을 그냥 누군가에게 뒤집어 씌운다면, 이는 사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호소력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의 실패는 이명박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자들의 음모 때문이며 천안함 사건은 앞뒤 가리지 않고 북한의 소행이며 이를 의심하는 것은 종북주의자들의 음모라는 등으로 말이다. 음모론은 이처럼 모든 사건을 아주 심플하게 설명해준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현실은 저 멀리 있고, 그들만의 설명 방식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음모론은 설명에 있어서의 마약이다.
저자의 통찰력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음모론자를 두 부류로 나누는 것이다. 신념으로 움직이는 자와 기회주의를 노리며 움직이는 자. 내가 보기에 이 나라의 소위 '보수'라는 작자들 중, 국회에 들어가 있는 자들은 기회주의를 노리며 음모론을 주장하는 자들이며, 그들이 신념으로 움직이는 자들을 이용하여 이 사회에 자신의 음모론을 퍼뜨리고 자신의 음모론에 반대하는 자들을 '음모론자'로 몰아붙이는 행태를 반복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신념으로 움직이는 '보수(라고 쓰고 수구꼴통이라고 읽는다)'는 그들이 기회주의적으로 자신들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듯하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외에도 저자가 음모론 자체를 '통치의 음모론'과 '저항의 음모론'으로 나누는 것, 음모론의 세 가지 기능을 말하는 것, 정치적 기능으로서의 음모론을 다루는 것들 모두 설득력 있다. 다만 음모론을 신정론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굳이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신정론'이라는 단어는 대개 철학적으로 다루어지던 단어라는 점만 언급하겠다.
이 시대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진단을 정확히 해야 처방도 정확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저자는 진단을 정확히 함과 동시에 진단을 내리고 이를 자각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자기 반성을 촉구한다. 그들도 잘못이지만, 우리도 정치적 책임이 있다. 그들은 '죄인'이지만 우리도 '정치적 책임'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죄를 저지를 때, 우리도 어느 정도는 눈감아 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땅콩회항 사건만 하더라도, 우리 역시 알게 모르게 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던 것을 당연하게는 아닐지라도 알게 모르게 인정해왔던 것이다. 이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죄인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용인해준 '정치적 책임'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정치적 책임을 느끼며, 그리고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며 우리 자신부터 반성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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