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ji Margo Lee님의 프로필 이미지

Yeji Margo Lee

@zvudaenhykeg

+ 팔로우
뒤돌아보며 (2000년에 1887년을)의 표지 이미지

뒤돌아보며

에드워드 벨러미 지음
아고라 펴냄

읽었어요
1888년에 쓰인 소설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당대 미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기 위해 묘사한 모든 글들이 2017년 한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곧이 믿었을 것이다.

작가가 상상한 100년 후, 2000년에 인류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이룬다. 현대의 삶이라는 게 얼마나 뼈 아프고 그로테스크한지 한 번이라도 한숨 쉬어 본 독자라면 벨라미가 자세하게 묘사한 이 유토피아에 푹 빠져서 중반부까지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중반부를 넘어서면, 그 과도한 자세함에 약간 지치기 시작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 방대한 분량에 드라마적 요소가 우선순위에서 밀려, 읽는 데 약간의 인내를 요하게 된다. 하지만 괜찮다. 벨라미는 최대한 디테일하게 사회의 작동원리를 서술해야 후손들이 시행착오없이 그런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고맙기까지 했다. SF의 고전답게 시간여행 설정을 넘어 신용카드나 라디오 같은 기술적인 상상력까지 더해주니 흥미진진한 요소도 있다.

책을 덮자 씁쓸했다. 2000년의 한국인들은 벨라미가 통탄했던 1887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자본주의적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당시 책 속 유토피아에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정치단체가 유럽에 생겨났고 우리가 북유럽 서유럽 본받아야 한다며 입에 달고 사는 이유에 벨라미가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이 책을 많은 사람에게 권해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해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거라고 본다.

아래는 벨라미가 묘사한 1887년이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매장 감독이 매 같은 눈을 하고 장사를 감독하는 모습을 보았다. 점원들을 감시하면서 점원들이 돈이 있으면 돈으로, 돈이 없으면 신용으로 사라, 사라, 사라고 손님에게 권유하도록, 손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필요한 것 이상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사라고 권유하도록 감시하는 모습을 말이다."

"아무 일도 세상에 해주지 않고 어떻게 살았느냐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내내 빈둥거리며 사는 자를 세상은 왜 먹여 살려주었느냐고? 질문에 답하자면 우리 증조부가 돈을 모았고 그 뒤로 후손들이 이 돈으로 먹고 살았다고 해야겠다. (...) 원래 증조부가 번 돈은 결코 큰 금액이 아니었다. 그 돈은 삼대가 빈둥거리며 놀고 먹는 동안 원래보다 훨씬 더 불어났다. (...) 모든 사람이 자신도 그렇게 되고자 원했던 이 기술을 쓰는 사람은, 투자 수익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2017년 2월 20일
0

Yeji Margo Lee님의 다른 게시물

Yeji Margo Lee님의 프로필 이미지

Yeji Margo Lee

@zvudaenhykeg

작가는 기기의 경우를 통해서 같은 이야기를 살짝만 바꾸어 유통시키는 미디어/예술을 비판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굉장히 싫어할 얘기를 하자면, <모모>는 사실 사람들이 널리 그리고 오래도록 읽을 법한 보편적인, 그래서 ‘상업적인’ 이야기꼴을 갖추었다. 등장인물의 모습과 이름, 여러 설정들만 살짝 바꾸면 내가 최근에 본 <어벤저스>랑 다른 게 뭘까 싶을 정도로.
앞으로도 이야기의 공식을 충실하게 잘 따르고, 자기 식대로 잘 변형하는 스토리텔러가 널리 회자될 것이다. 아무도 그 이야기가 저 이야기고 저 이야기가 이 이야기인지 모를테고, 들을 때마다 감탄할 것이다. 그 점에서 1970년대에 쓰인 이 작품은 이미 앞서 있다.
모모와 회색인간이라는 은유 역시 너무나 쉽고 보편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또 얼마나 직설적인가. 안전한 틀 안에서 뾰족한 날을 가는 것. 그러니까 쉬운 형식 안에서 날카로운 메시지를 주는 것. 최근에 접하는 많은 콘텐츠에서 이 기술을 발견하고 있다.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
비룡소 펴냄

읽었어요
2018년 5월 28일
0
Yeji Margo Lee님의 프로필 이미지

Yeji Margo Lee

@zvudaenhykeg

아마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벽에 부딪힌 것처럼 느낄 미래에 다시 책장을 들추며 기술을 연마해야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칭찬을 과대평가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 쓰인대로 칭찬은 정크푸드 같아서 너무나 즉각적으로 쉽게 고래를 춤추게 한다. 오히려 밑 빠진 독처럼 계속해서 칭찬만을 갈구하게 하는 게 칭찬의 성질일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잘 했다!’ ‘착하다’는 칭찬 외에 그 상황에 그 인물에게만 할 수 있는 ‘과정에 대한 격려’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마음에 콕 박혔다. 내 생각에 이건 비단 자녀양육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긍정의 훈육

제인 넬슨 외 2명 지음
에듀니티 펴냄

읽었어요
2018년 3월 20일
0
Yeji Margo Lee님의 프로필 이미지

Yeji Margo Lee

@zvudaenhykeg

유년 시절, 침대에 누워 벽지의 잔무늬를 세어보면서 공상을 일삼았다. 그때 내 뇌리를 스치던 수많은 상상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책.

실비아 플라스 동화집

실비아 플라스 지음
마음산책 펴냄

읽었어요
2018년 3월 16일
0

Yeji Margo Lee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