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깊다. 그 배경인 대양만큼 넓고, 영광스럽게도 제목을 차지한 백경(白鯨)만큼 거대하다. 소설은 심연을 감춘 맑은 바다에 흩뿌려진 금박 같은 태양의 잔해처럼 영롱한 비유와 잠언들로 빛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무로 돌아가버린 결말에 이르면, 새삼 '일개' 향유고래를 칭한 제목이 묵직하게 가슴이 닿아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허구의 세계의 '리바이어던'이 현실의 독자에게 주는 무게감은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독자는 묻는다. 40여 년에 걸쳐 모비 딕을 쫓았다는 에이해브의 집념이, 단순히 광기 혹은 증오를 넘어 과연 어느 것에 가까운 형체를 지닌 것이었는지를. 그의 인생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무엇으로 살았는가. 감히 또 다은 대문호의 작품을 빌리자면, "그는 무엇으로 살았는가"를 말이다. 700페이지를 거뜬히 넘기는 대작을 시간을 들여 완독했다는 후련함보다, 모비 딕과 함께 솟아오르며 수정처럼 흩날려 떨어지던 파도처럼 줄곧 밀려오고 높아지는 생각에 막막한 침묵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