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의 상태가 이렇게 변하자 내 삶을 규정하고 지휘하기 위해 뇌가 항상 챙기던 외부 세계의 수많은 일들이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바깥세상과의 관계를 계속 일깨워주던 뇌의 재잘거림도 잠잠해졌다. 작은 목소리들이 사라지자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꿈도 날아가 버렸다. 나는 혼자였다. 순간순간 고동치는 심장박동의 리듬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28p)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던 뇌과학자. 그녀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의 몸에서 이상징후를 발견하고 이내 그것이 뇌졸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순간 섬광처럼 그녀에게 드는 생각. "이거 정말 멋진데?" 많은 경우에 우리는 특정한 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그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실제 우리가 특정 상황에 던져지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병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좌뇌와 언어 중추를 잃었을 때 시간을 연속적인 짧은 순간들로 나누는 시계도 사라졌다. 순간들이 정확하게 매듭지어지는 대신 열린 결말로 다가왔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서둘러 밀어붙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한가롭게 해변을 거닐거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빈둥거리듯, 좌뇌의 '행하는' 의식을 우뇌의 '존재하는' 의식으로 바꾸었다. 아주 사소하고 늘 고립되어 있다고 느꼈던 내가 이제 거대한 존재가 되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어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새로운 관점으로 현재의 일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담당 세포들이 망가져서 과거와 미래에 관련된 일들을 숙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였기에 내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뿐이었고, 그것은 아름다웠다. (58p)
뇌졸중 환자 중에는 더 이상 회복이 되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이루고 있는 작은 성취에 주목하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볼 줄 알아야 다음에 무엇을 할지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이 회복을 가로막는다. (88p)
그녀는 간신히 몸을 움직이고, 씻으면서 동료에게 전화를 건다. 아무렇지 않았던 일상이 한순간에 철인 3종경기보다도 힘든 일이 된다. 아주 절박하고 느린 그녀의 행동들을 보며 인간의 무력함과 뇌졸중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인간의 몸은 너무나도 섬세해서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한 순간에 완전히 무녀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날 아침.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저자는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나저나 내가 꽤 스테레오타입에 갇혀있다고 생각했던 게 활발하게 활동하던 뇌과학자라는 기본 배경만 가지고 책을 읽어서 (왜인지) 당연하게 저자가 남자인줄 알았다는 것. 왜인지 부인과 아이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러나 그녀는 미혼의 여성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승승장구할 뿐더러 그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신은 그녀에게 더 즐길거리를 던져주고 말았다.
뇌졸중을 통해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이라면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기쁨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평화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새로운 감정이 밀려들어 나를 해방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런 감각 경험에 어울리는 새 단어를 배워야 했다. 아울러 감정이 내 몸에 계속 남아 있게 할지, 아니면 내 몸에서 곧장 흘러나가게 해야 하는지 판단할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18p)
한순간 망가진 좌뇌를 회복하기까지 8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의 중요한 기억들을 저자는 꾸준히 되살린다. 한편으로는 기억력이 정말 좋고,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의지가 정말 강했구나라고 느껴졌다. 왜냐하면 뇌졸중에 걸렸던 초반부의 묘사가 정말 생생하고 얼마나 자신이 일상적인 행동에 곤란을 겪었으며 우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감정은 어땠는지의 묘사도 세세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좌뇌와 우뇌의 역할이 다르다는건 알았지만 한쪽의 기능이 월등해질 때 느끼는 것들은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뿐.
감정적 치유는 지루하리만치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노력할 가치가 있었다. 왼쪽 뇌의 힘이 점차 강해지면서 내 감정이나 상황을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나 외적 사건 탓으로 돌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나와 나의 뇌 말고는 나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만들 사람은 없었다.
외부의 그 무엇도 내 마음의 평화를 앗아갈 수 없었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문제였다. 내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을 어떻게 지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달려 있었다. (119p)
좌뇌의 능력을 되찾으려면 새로 얻은 우뇌의 의식과 가치 체계, 그와 관련한 개성을 얼마나 많이 희생해야 할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우주와 연결된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을 모든 것에서 분리된 존재로 두는 건 싫었다. 뇌의 회전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진정한 '자아'와 더 이상 접촉할 수 없게 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건대 세상 모든 번뇌로부터의 해방감(열반과 같은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 '정상적인'사람으로 돌아가려면 우뇌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133p)
우리는 모두 다른 뇌세포를 가진, "50개조의 분자적 지성으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오늘 아침 언덕을 올라 출근한 내 다리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 손가락과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내 눈이 받아들이는 정보들을 수많은 세포와 뉴런이 뇌로 전달하고 좌뇌와 우뇌는 끊임없이 소통하며 처리할테니 말이다. 본질적으로 뇌와 몸의 세포들끼리 본질적으로 배선된 방식도 다를것이므로 이를 처리과정의 개인차로 저자는 언급한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는 뻔하디뻔한 비유가 사실 이토록 과학적인 설명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뇌졸중에 걸렸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회복과정은 어땠는지 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느낀 감정, 주변사람들이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할지, 회복과정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등등. 그 중에서 뇌졸중과는 뭔가 내 일이 아니라고(...) 여전히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나에게 가장 유용했던 정보는 우리의 감정이 90초의 주기를 가진다는 것. 그래서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거나 너무 들뜰 때 90초의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면 내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음, 잘 써먹어봐야겠군(라고 다혈질이 말했다)
내가 경험하는 것은 내 몸을 구성하는 작고 아름다운 신경 회로들이 내가 마음이라 부르는 방을 함께 짜면서 만들어낸 자각이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연결을 바꾸는 신경세포들의 가소성 덕분에 여러분과 나는 이 땅에서 유연하게 사고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택할 수 있다. 다행히도 오늘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어제의 모습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180p)
내 마음속의 정원을 열심히 가꿔나가야지. 저자의 끊임없는 주장을 조금 확대해석해서, 개인의 감정이 모든것을 좌우한다는 자기개발서틱한 논리는 별로 내키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의 중심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은 늘 깨닫는다(그리고 늘 실패를 반복한다). 감정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그녀가 느낀 체험을 고스란히 하는 것은 큰 리스크와 불가능함을 안고 있지만(...) 양쪽 뇌의 기능을 알고 생각하며 행동해 봄직하다. 내 마음속의 정원을 최선을 다해 가꿀 것.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물려받은 DNA와 주변의 환경들이 잘 만날수 있도록 "활기차고 아름답게 나의 삶을 살자"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윌북 펴냄
3
1월 6일은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이 지난 날을 축하하는 날인데
이날이 되면 염소 썰매 경주를 했단다. 정말 신이 났었지.
1등을 하면 상도 받았어.
국내에서도 <비밀의 화원>으로 유명한 미국의 동화작가, 타샤 튜더의 책이다. 1977년에 출간되었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타샤 튜더의 시리즈 중 한권. 그녀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아주 사소한 일상까지도 생애의 기쁨으로 발견해내는 그녀의 능력은 정말 반짝반짝 빛난다. 부드러운 수채화와 아기자기하고 담백한 그림체로 담아낸 계절의 풍경, 가족들의 모습, 멋진 축제와 축하음식들은 따뜻한 기쁨을 보는 이에게도 선사한다.
그대를 환영하오, 아름답고 싱그러운 5월이여.
5월 1일은 5월제라고 하는데, 농사가 잘되기를 비는 날이지.
이날이 되면 아이들은 이웃집 문 앞에 꽃바구니를 몰래 갖다 두었단다.
5월제 기둥을 에워싸고 빙글빙글 춤도 추었지.
정원에 씨앗을 뿌리는 달도 5월이었어.
11시, 간식 시간에는 사과나무 아래 맛있는 아이스티와 쿠키를 차려놓고 파티를 열었단다.
실제 사물이나 사람을 모델로 그려서인지 그림에는 애정이 묻어난다. 그녀가 정원의 꽃과 나무, 음식, 코기들, 집과 가족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했는지 그 다정함을 가늠할 수 있는 그림들이 장마다 펼쳐진다. 모든 계절의 숨어있는 아름다움까지 찾아내어 멋진 시구와 함께 잔잔하게 담아낸 하루하루에 나도 흠뻑 빠져들어 살아보고 싶다. 치열하고 팍팍한 현실의 순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말그대로 동화같은 풍경들이다.
1
사실 어린 김지영 씨는 동생이 특별 대우를 받는다거나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원래 그랬으니까, 가끔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자신이 누나니까 양보하는 거고, 성별이 같은 언니와 물건을 공유하는 거라고
자발적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에 익숙했다.
어머니는 터울이 져서 그런지 누나들이 샘도 없고, 동생을 잘 돌봐 준다고 항상 칭찬했는데,
자꾸 칭찬을 받으니까 정말 샘을 낼 수도 없었다. (25-26p)
교사는 쭈그려 앉으면 속옷이 보일 수 있으니 치맛단을 잘 붙잡으라고 말했지만
여학생은 끝까지 치맛단을 추스르지 않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빼꼼빼꼼 속옷이 보였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 오자 선생님을 오리걸음을 중단시켰다.
역시 복장 불량으로 적발되어 나란히 교무실로 끌려가던 같은 반 아이가 왜 치맛단을 붙잡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 옷차림이 얼마나 불편한 건지 두 눈으로 확인하라고."
'82년생 김지영 씨'는 자주 눈을 감고, 입을 닫았다. 굳이 얘기를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 괜한 갈등을 빚고 싶지 않기 때문에. 김지영 씨가 살아온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읽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김지영 씨가 운이 나빴다고. 저런 일이 어떻게 한 사람한테 계속 일어날 수 있냐고. 작가는 통계와 자료로 답한다. 그 시대를 겪은 누군가는 끊임없이 겪었던 일이다. 그 누군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뭐 저 정도 일 가지고 그러냐고. 할머니와 어머니에 비하면 그녀가 겪은 일은 아무것도 아니며, 직접적으로 신체에 위해가 가해진 적도 없었으며, 그 누구도 인격적으로 김지영 씨를 욕한 적도 없었다. 심하게 가난하지도 않았고 가정환경이나 친구 관계, 부부 관계도 결코 나쁘지 않다. 바바리맨과 선생님들의 발언은 여학생이라면 한번은 겪었을 일이며, IMF를 조용히 지나간 가정이 어디 있냐고.
선배는 평소와 똑같이 다정하고 차분히 물었다.
껌이 무슨 잠을 자겠어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김지영 씨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94p)
"제 옷차림이나 태도에 문제가 없었는지 돌아보고, 상사분의 적절치 못한 행동을
유발한 부분이 있다면 고치겠습니다."
두 번째 면접자가 하! 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큰 소리로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김지영 씨도 씁쓸했는데,
한편으로는 저런 대답이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후회했고,
그런 자신이 한심했다.(102p)
그 말많고 시끄러운 이 책을 드디어, 단숨에 읽어가면서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궁금했다. 대체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메갈"이니 "페미충"이라는 비난을 쏟아붓는 이들 중에 이 책을 단 몇쪽이라도 읽은 적이 있는가. 그들이 이 책을 제대로 읽었더라면(심지어 어려운 내용이 전혀 아닌데) 과연 본인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모를 따위의 논리를 세우지 않을텐데. 왜 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고 분노하는가. 심지어 '82년생'과 거리가 먼 이들까지 말이다.
처가살이가 시집살이보다 고되다는 등 요즘은 장서 갈등이 사회 문제라는 둥 하며,
장모를 모시고 사는 걸 보면 만난 적은 없지만 김은실 팀자의 남편은 좋은 사람일 거라고 했다.
김지영 씨는 17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미용 일을 하러 나간 동안 잠깐식 막내를 봐주셨을 뿐
삼 남매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등의 돌봄 노동은 전혀 하지 않으셨다.
다른 집안일도 거의 안 하셨다. 어머니가 차린 밥을 드시고,
어머니가 빨아 놓은 옷을 입고, 어머니가 청소한 방에서 주무셨다.
하지만 아무도 어머니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111p)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에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망연히 주저앉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
사업가의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123p)
그건, 이 시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겪었고, 그리고 조용히 넘어갔던 일들을 낱낱이 기록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건들은 아주 사소하다. 내가 초등학교 때도 출석번호의 앞번호는 남학생들이었고, 괴롭히는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을 좋아하는 거라고 했으며, 여고에 다니는 친구들은 선생들의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들을 농담으로 흘러넘겨야 했으며, 성폭행 당한 피해자의 옷차림 운운하는 기사를 끝도 없이 봐왔다.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갈때는 한여름에도 오싹했으며, 생김새, 화장, 옷차림 등등으로 지적받는 일은 지금도 종종 그렇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두세쪽에 한번씩 울화가 치솟았는데 모든 등장인물을 "씨"로 언급하는 그 건조하고 사실적인 묘사들 때문에 더 그랬다. 나의, 내 주변의 이야기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변태는 많았다"라는 말로 치부할 일인가. 30%도 되지 않는 여성인력의 비율에 '여풍이 거세다'며 박수칠 일인가. 잠시잠깐 아이를 데리고 나온 이들에게 '맘충'이라며 손가락질 할것인가.
회사에서는 임신한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출근과 퇴근 시간을
30분씩 늦출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는데, 김지영 씨가 임신 사실을 알리자마자
남자 동기가 대뜸 말했다.
"와, 좋겠다. 이제 늦게 출근해도 되겠네."(138p)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기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149p)
아버지가, 할머니가,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대학 선후배들이, 직장 동기가, 지나가던 회사원들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진 한마디들이 쌓이고 쌓인다. 인식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문제가 되냐며, 그렇게 살았고 생각하고 맞는 말과 행동을 한 것인데 말이다. 몰카가 회사에 붙자 남직원들은 그것을 돌려봤고 이후 여직원들은 심리상담을 받고 퇴사했다는 지점에서 죄없는 책을 찢어버리고 싶어졌다. 심지어 이야기 말미에 등장하는 이 책의 서술자는 상담가였는데, 그조차 와이프의 어려움은 잠시 이해하는 듯 하나 결국 똑같은, 본인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차별적인 결론에 이른다. (뭘 듣고 느낀거야)
같은 아이 엄마라서 그랬는지, 김지영 씨가 순진한 소리를 해서 그랬는지,
점원은 마음이 쓰이는 눈치였다.
아이 어린이집 보낸 사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이만한 일자리도 없다고,
일단 구인 광고는 떼어 놓을 테니 생각해보고 빨리 연락 달라고 했다.
김지영 씨가 남편과 상의해 보겠다고 대답하고 돌아서는데, 점원이 말했다.
"나도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에요."(160p)
그래도 누군가는 계속 싸운다. 옳지 않다면 말하고 바꾸는게 옳은 것이다. 분명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는데 눈감고 입막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바바리맨을 잡았던 친구들이, 차승연 선배가, 강은실 팀장이, 윤혜진 씨가, 강혜수 씨가 그리고 많은 김지영 씨가 끊임없이 싸운다.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두고본다면 우리는 계속 그 세상에서 살아야 할 것임을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세상에 남고 누군가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