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jiin님의 프로필 이미지

sujiin

@sczmxrzpiyhp

+ 팔로우
서른아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의 표지 이미지

서른아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진 지음
엔트리 펴냄

읽었어요
올해로 딱 30이 되었다. 옛날 같으면 이립(而立)이라고 해서 마음이 확고하게 서서 움직이지 않는 어른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 흔들릴 마음조차 없어진 어쩐지 열정의 김이 빠져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애매한 존재가 된 것 같다.

20대의 시간을 지나고 돌아보니 죽도록 노력해야 겨우 남들과 비슷하게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기를 쓰고 바득바득 살아야 겨우 남들 사는 만큼의 '평범한' 삶을 사는 걸 깨달으니 인생이 약간 허무해졌다. 말도 안 되는 핑계 같지만 난 그 허무감이 싫어 이제 죽을 만큼 노력하진 않게 되었다. 노력하지 않는 건 아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지만, 열심히 한다고 그에 비례하여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몸으로 배워가고 있다.

생계를 위한 일을 진력을 다해가며 필사적으로 하기 보단, 일은 딱 남들만큼만 하고 내 건강과 삶의 즐거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챙기게 되었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면서 학업과 취업 준비, 사회생활이라는 보통의 사람들이 으레 겪기 마련인 질곡의 시간을 거치며 삶의 태도가 바뀌게 되었다. 어디에 내세울 만큼 노력했다고 할 수도 없지만 내 나름대로는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지금의 자리에 서 있게 된 건 부정할 수 없다. 그 자리라는 게 자랑할 수준도 아니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는 딱 그 정도지만.

삶의 정신적 변곡점에 선 지금,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맞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듯 했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껴 싱숭생숭한 마음에 맴돌던 이야기를 누군가 대신 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30대의 시작을 같이 하기에 썩 괜찮은 책이었다.


**우리는 실패를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실패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실패의 조각들은 녹지 않고 몸에 차곡차곡 쌓이고 결국 그것들이 나를 만든다. 실패한 일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무용담처럼 떠벌릴 필요도 없다. 다만 실패든 성공이든 또 다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 그러니 실패의 기억은 그냥 쓴 웃음으로 넘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것 (p.26)**
2019년 1월 6일
0

sujiin님의 다른 게시물

sujiin님의 프로필 이미지

sujiin

@sczmxrzpiyhp

가볍게 접근하는 것은 좋으나 너무 가벼워서 진중함이 없는 느낌이랄까. 예전에 다녀왔던 포루투갈에 대해 다뤘던 책이라 더욱 기대가 컸으나 조금은 실망했던 책

세상의 서쪽 끝, 포르투갈

서양수 지음
홍익출판사 펴냄

👍 떠나고 싶을 때 추천!
2020년 6월 18일
0
sujiin님의 프로필 이미지

sujiin

@sczmxrzpiyhp

페미니스트, 좀더 넓게 말하면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하는 작가의 글쓰기 방법론에 관한 책.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적인 관점에 대한 경계가 돋보였다.

p.285) 예술 소비자에 익숙해진 우리가 예술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냥 하는 길'밖에 없으니까.
마지막 문장이 미루던 글쓰기를 다시 하게 만든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어크로스 펴냄

👍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추천!
2020년 4월 18일
0
sujiin님의 프로필 이미지

sujiin

@sczmxrzpiyhp

"이름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간구하는 밤이 언젠가 올 것이다. 짐작보다 더 빨리. 등 뒤에서 적막한 저녁의 구름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p.148)​

약국을 운영하는 평범한 중년 여성과 지방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과 학교 폭력 가해자가 된 자식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사회 중산층 가정의 정신적 퇴행을 보여준다. 소설은 약사인 세영이 죽음을 위한 약 조제법을 잘 알고 있다는 시니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 학교 폭력 피해자인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장면으로 끝난다. 세영이 자식을 학교 폭력 피해자 아이의 죽음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고 자식을 보호했다 느끼고 진심으로 안도할 수 있었을까. 무너진 도덕성과 ‘평범함’에 대한 욕망 사이의 괴리만큼 불안감이 증폭되진 않았을까.

​ 엄마는 혹여 자식에게 불똥이 튈까 친구의 장례식장에 가려는 것을 말리며 이번에도 정당한 행위를 끝내 미루기만 한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걸까?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보다 적확한 명제라는 것을 알지만 의문이 든다. 정의에 대한 끝없는 유예로 몸과 마음의 안위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행복으로 치환될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오늘의 사회가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너도 나도 자본이 주는 안락함에 취해 우리의 욕망의 대상마저 닮아가고 있다. 연봉 얼마 이상의 직장, 몇 평 이상의 아파트, 일 년에 한번은 해외여행 가기, 자식을 인 서울 대학에 보내기... 그게 우리가 마음 깊숙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까.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잣대를 걸러내고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찾고 생각과 행동의 도덕적 반경을 양수로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그걸 깨닫는게 더욱 소중하다는 걸 느낀다.

- 정이현 작가 특유의 로맨스를 기대하고 폈으나 의외로 사회 풍자였다.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으나 새로운 느낌이었다.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정이현 지음
현대문학 펴냄

읽었어요
2019년 6월 16일
0

sujiin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