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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박연준 지음
북노마드 펴냄

읽었어요
-서쪽은 기울어가는 것들이 마지막을 기대는 곳이다.

-봄은 화려한 색으로 소리를 대신했다. 피고 지는 데 이토록 조용한 생명들이라니. 내가 피었다 지느라 소란할 때도 꽃들은 반복이라는 눈을 끔뻑일뿐 조용했다.

-꽃과 달리 우리의 얼굴은 '오래된 얼굴'이다.
시간은 몰래 얼굴에 금을 긋고 도망간다. 나는 시간이 그리다 만 미완성작, 완성은 내가 사라진 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나 이루어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심장이 쪼그라든다.
사랑하는 자는 무릎을 꿇는 자가 아니라, 무릎이 꺾이는 자다. 먼 훗날 당신이 많이 아파 내 무릎이 꺾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나뭇가지가 눈의 무게를 못 이겨 꺾이듯 그런 것은 아니면 좋겠다.

-나는 사람마다 각자 경험하고 지나가야 할 일정량의 고유 경험치가 존재한다고 믿거든요. 다 겪지 못하면 다음으로 못 넘어가는 거죠. 당신을 사랑하고, 또 헤어지던 순간은 꼭 필요한 경험이었어요. 그 일을 나는 긍정합니다.

-마르 그리트 뒤라스는 사람을 일컬어 "한밤중에 펼쳐진 책"이라고 했다는데, 나도 당신도 서로의 밤에 침입해 어느 페이지부터랄 것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열렬히 서로를 읽어나간 거겠죠. 내게는 사랑에 대한 첫 독서가 당신이란 책이었고, 행복했고, 열렬했어요.
어느 페이지는 다 외워버렸고, 어느 페이지는 찢어없앴고, 어느 페이지는 슬퍼서 두 번 다시 들여다 보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즐거웠습니다.

-아무쪼록 잘 사는 일이란 마음이 머물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순간의 시간을 온전히 할애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이라면 될 수 있는 한
'잘 대접해서' 보내주고 싶다.

-보는 것과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바라보다' 라 함은 시선을 떼지 않고, 공들여 바로 본다는 것이니까.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 한곳을 선택한다는 뜻이며,
눈과 마음과 몸이 합작하여 (대상을 ) 바라
(대상을) 보는 일이다.

-바다가 뒤척이는 것은 바다가 덜 무겁기 때문,
사랑이 뒤척이는 것은 사랑이 덜 무겁기 때문.

-슬플 때 사람은 이기적이 된다.
오직 '나만의 ' 슬픔에 빠진다.
혹 동병상련의 누군가를 만났다 해도 그 사람의 슬픔을 슬퍼하기보다 '나'의 슬픔이 안타까워 위로하게 된다.

-우는 것은 마음을 청소하는 일이다. 목 놓아 울었더니 얼굴 아래부터 발가락 끝까지 '속을 제대로 '샤워한 기분이다.슬플 때는 열심히 울자. 열심히 울다보면 배가 고파지고, 배가 고파 뭘 먹다보면 힘이 생기니까.

-이미 흘러가버린 날들은 어디에 머무는 걸까? 몸을 부풀리던 봄도, 시끄럽게 울어대던 여름도, 살아 있는건 뭐든 뚝뚝 떨어지게 하던 가을도 사라지고 없다. 겨울은 춥고, 높고, 길다. 지나간 것들만 따로 모아놓은 박물관 같은 것이 있다면 어떨까? 입장료는 순도 높은 그리움
한 덩이. 그리움이 없는 사람들은 그 박물관에 들어갈 수 없다. 박물관은 '과거'라는 무거운 짐을 가진 사람들에게 방을 하나씩 제공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겐 젊은 사람들보다 더 큰 방이 주어질 것이다. 흘려보낸 것들이 더 많을 테니까.

-바다는 날마다 새로운 귀를 준비하고, 밤마다 무거워진 귀를 털어내는 고단한 작업을 하면서도 한 번도 찡그리지 않는다.

-작가는 유혹하는 사람이다. 가볍고 무거운 단어들을 놓고, 비비고, 들어올리며 호객하는 자다. 고백하기 위해 가장 많은 단어를 필요로 하는 슬픈 짐승이자,
나무 한 그루를 이야기하기 위해 기억하는 모든 숲을 에둘러가려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삶에 있어 영원한 양지도, 영원한 음지도 없다.
2019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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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케테-료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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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P22. 고요하고 어두운 방에 누워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엔 끝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딸에 대하여

김혜진 지음
민음사 펴냄

2019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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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 나는 송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거나 내 품에 안겨 잘 때 슬프면서도 행복하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슬프고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서 행복하다. 그러니까 내가 송이를 바라볼 땐 언제나 슬픔이 먼저고 그다음이 행복인데 송이도 그랬으면 하는 것. 송이가 자신을 바라볼 때 처음엔 좀 슬프더라도 마지막은 좋았으면 하는 것....
그게 내 유일한 바람이다.

P25. 나는 남들처럼 괴롭지 않은 이유가
어쩌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P38. 지난날들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밤. 그날들은 지나갔고 다른 날들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사실에 잠시 안도했던 적이 있었으나 어쩌면 그 사실이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모든 날들을 비슷하게 만들며 살고 싶었다.
나 혼자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P87.어떤 순간이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면
어쩔 줄을 모르겠다.

P88.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19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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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케테-료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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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2. "알아? 나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야.
하루를 못 벌면 그다음 하루는 굶는 인생이라고.
죽는 건 하나도 안 가여워.
사는 게, 살아 있다는 게 지랄맞은 거지."

P164. 벨기에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어요.
나 같은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나 역시 입양된 가정에서 늘 방황했고 합당한 애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장하는 내내 내가 누구인지 몰라 혼란스러웠고,
사실은 지금도 종종 그렇습니다.
입양은 버려진 나를 구원해 주었지만,
동시에 나의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박탈해
가기도 했으니까요.

P241.나는 그 소란이 좋았다.

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민음사 펴냄

2019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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