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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무엇일까? 에 대한 해답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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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복음이 세상 속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고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교인들의 머리와 입에만 머물고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무언가 바뀌어야만 한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말씀과 세상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머리에 채우는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세상 속에서’ 말씀을 경험하여 그 말씀이 우리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일이 진정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세상 구석구석, 우리 주변 사람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 내거나 조작해 낼 수 없는 영혼 깊은 곳의 변화를 일으켜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회개는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
진정한 회개는 변화를 낳는다.
그런데 왜? 왜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난 반면, 수십억은 아닐지라도 세상 수백만 명의 시잔과 아미르, 나빈은 꼭 필요한 것 조차 거의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 태어났을까?
이런 일을 보고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예전처럼 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나를 더욱 흔들어 놓은 다음번 만남에서 더욱 증폭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그분의 사랑을 믿기를 얼마나 자라시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랑에 관해 들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사랑을 믿을 수 있겠는가.
정수 필터가 아무리 도움이 된다 해도 누구 하나 천국에 보내 줄 수는 없습니다. 의약품이나 위생 시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이 마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영생으로 가는 구원의 진리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사람들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일까? 내가 정말로 그 가족들을 나 자신처럼 사랑했다면 왜 당장 산 아래로 달려가 딸을 찾도록 돕지 않았을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일까?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내 이웃들을 나 자신처럼 사랑해야 할까?’
누가복음 10장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25절) 예수님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갔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책임지는 지도자들이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을 모르는 척한다. 과연 누가 죽어 가는 이 사람을 도울 것인가?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눅 10:34).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표현은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폄하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사마리아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피해자의 상처를 닦은 뒤 가까운 여관에 데려다준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모든 숙박비와 치료비까지 대신내 준다. 이야기의 끝에서 예수님은 질문을 완전히 비트신다. 이제 질문은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사랑을 행한 사람은 누구인가?”다.
예수님은 종교 엘리트 집단 출신의 이 남자에게 율법이 말하는 사랑이 단순한 종교적 지식과 종교적 의무 이상이라는 점을 깨우쳐 주기 위해 충격 요법을 사용하신다. 그냥 어려운 사람들을 편견 없이 도우라는 교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교훈이 목적이었다면 예수님은 그냥 그 율법교사와 같은 유대인이 온갖 편견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멈춰 사마리아 사람을 돕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에 부응하지 못하는 종교 엘리트들의 현실부터 지적하신 뒤에 사마리아 사람을 등장시켜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한 율법교사의 깊은 미움과 편견을 들추어내신다. 이 율법교사에게는 바로 새 마름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향한 진짜 사랑은 종교적 학습만 해서는 만들어 낼 수 없다.
하나님은 제 안에 이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불어넣으셨어요. 이 사람들에게 제 삶으로 그 분의 사랑을 보여 드리려는 열정을 제 안에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여기 있는 것입니다.
내 모든 종교적 배움이나 종교적 책임감을 초월한 새로운 종류의 사랑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일으키실 수 있는 종류의 사랑으로, 내 인생이나 가족, 미래를 위해 세웠던 계획을 송두리째 바꾸게 만드는 종류의 사랑으로, 편안한 자리에서 나와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 속으로 온몸을 던지는 희생적인 사랑으로.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교회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처음에 의도하셨던 형태의 교회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고수하는 동시에 불쌍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희생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의 모임이 이들에게는 너무도 필요하다. 이런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냥 믿음의 형제자매들, 그들 앞에 놓은 하나님의 말씀, 그들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만 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도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내게도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저 하나님을 찾고 서로를 사랑하고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주변 세상에 하나님 사랑의 좋은 소식을 전하기로 결단한 공동체에 속한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것이 하나님이 원래 설계하신 교회의 본질이 아닐까?
이 마을이 육체적으로 절박한 상황에 처한 줄 알기에 주민들의 육체적 치료를 위해 밤낮으로 고군분투한다. 동시에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단순한 약이나 치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영혼을 치료해 주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목숨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벤과 나는 서로 완전히 다른 교육, 경험, 재능, 열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둘 다 하나님이 그분의 사랑을 전하고 세상의 절박한 필요를 위해 쓰라고 허락하신 독특한 재능을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발휘한다. “각자의 ‘독특한’ 도움.” 하나님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길을 여시려고 현재와 같은 글로벌화를 계획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용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사람들에게 독특한 교육과 경험, 재능, 열정을 주신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제대로 된 교회가 되면,
우리의 방식이나 이념, 트렌드, 전통에 따른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교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대가를 충분히 계산한 뒤 하나님이 원래 뜻하신 그런 교회가 되면, 그러면 세상이 바뀐다.
다른 누군가 하겠지 하면서 자기 삶을 살기에 바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
내가 목사로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은 절박한 세상 속에서 사역에 대해 ‘말만’ 하는 것이다. 나는 사역을 ‘하고’ 싶다.
당신의 직장, 학교, 사는 동네, 사는 집, 재능, 기술, 능력, 자원은 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주변 세상에 복음의 소망을 전할 독특한 기회들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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