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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의 표지 이미지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지음
마음산책 펴냄

2020.10.11.
<월요일의 문장들>이란 책 속에 소개되어 있고, 다른 작가의 책 속에도 사노 요코 님을 언급하였던 터라 이 분이 쓴 책들이 궁금해졌다. 곧바로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이 분 책으로 갈아탔다.
이 책은 그녀가 쓴 동화적인 감성과는 전혀 다른 일상속 모습을 보여주는데 2003년부터 2008년,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까지의 생활 속 산문들이다.

인상에 남는 부분은
암 투병으로 침대반경 50미터 생활자로 지낸 1년동안 한류드라마에 빠졌던 에피소드다. 한국인인 나조차 겨울연가는 끝까지 못 본 드라마인데 그녀는 밤새워 겨울연가를 보고 태어나 처음으로 심장이 옥죄는 듯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것을 계기로 한류드라마에 빠져 1년 내내 왼쪽만 보며 드러누워 있어 턱까지 틀어졌던 경험을 말한다.
명품에 미친 적도 없고 맛집을 찾아다닌 적도 없던 그녀가 한류드라마에 빠져들었던 그때를 허구의 화사함이었다고 고백하긴 하지만 그 기간동안 아주 많이 행복했었다고 쓰고 있다. 젊은 청년부터 나이든 어르신까지 욘사마의 인기는 일본에서 정말 대단했구나 실감.

이후, 뼈 전이로 인한 시한부 선고를 받고는 재규어 그린 차를 사는 대담함을 보이고, 예쁘고 세련된 잠옷을 잔뜩 사는 등 죽는 날까지 좋아하는 물건을 쓰고 싶은 마음을 전하며 책은 끝난다.
생활 속에서 치매에 가까운 건망증으로 인해 일어났던 이야기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속 마음을 참 시원시원 거침없이 적어내려 읽는 동안 재미를 더하였고 자신의 수수하고 시시한 하루하루와 아픔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시크한 표현들도 좋았다.
(하지만 이 분은 그냥 마냥 좋은 할머니상은 절대 아니다. 자신만의 개성이 확실하고 간간히 심통도 부리며 노인의 고약한 모습도 보이는 할머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 너무 안타깝지만 그녀가 남긴 아름다운 동화들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으로 머물 것이다.
2020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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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보니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 바로 나 같은 사람이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다.
흔히 쓰는 결정장애란 용어도 차별의 언어였고 인종을 소재로 한 개그 속에도 상대를 비하하는 편견이 들어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란 것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는 방어보다는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많은 이들이 세상의 차별에 대해 인식하고 그래서 사람들의 관점과 시선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면, 그렇게 그렇게 소외된 자도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에서 소신껏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창비 펴냄

2020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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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부터가 흥미롭고 자극적이지만 내용은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겁고 재미난 책이다.

엄마를 손 여사로 지칭하는 김 작가가 여름 한 달 동안 프랑스에 다녀올 일이 생겼는데 딱 하나 정리하지 못한 게 있다는 말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것은 김 작가가 자식으로 여기는, 그래서 손 여사에게 "미치려거든 곱게 좀 미쳐"라는 소리를 듣게 만드는 고양이 아담과 바라를 맡기는 일이었다.

어쩌다 정치적 대화를 하게 되면 진보성향 김 작가와의 충돌로 딸을 빨갱이라며 "빨갱이 좌파 고양이는 안 봐줘"라고 말하는 보수성향 손 여사.
그렇게 정치적으로는 엇갈리더라도 손 여사가 만족할 만한 용돈 협상으로 고양이를 맡기는 김 작가.

손 여사의 캐릭터를 작가답게 잘 묘사한 덕분에 상황이 그려질 정도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중간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형부 이야기는 참 따스했다. 그중 아버지의 임플란트 치료 이야기를 하자면, 형제들이 돈을 모아 일정부분 모이면 그때 해 드리자는 의견에 김 작가는 아버지의 하루와 우리의 하루는 다르다 말하며 곧장 치료를 할 수 있게 한다.
저마다 다른 하루의 속도! 참 중요한 말이고 새기고 싶은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때론 부모와 자식 간 이해하지 못하는 간극으로 갈등을 겪고 충돌하지만 결국 서로의 적정한 거리를 알아가게 된다. 그게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이니까. 작가의 말대로 어긋나면 어긋나는 대로, 이어지면 이어진 대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따로 또 같이. 무엇보다 서로의 상식과 합리성과 가치관을 넘어서는 사랑이 있기에. 그렇기에 이 책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김봄 지음
걷는사람 펴냄

2020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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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단편 중 '벚꽃새해'와 표제작인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문학이 사랑한 꽃들>을 통해 알게 되었고, 올 봄에는 이 두 편만 골라 읽었다. 대부분의 소설은 책을 덮으면 그냥 잊혀지는데 이 두 소설은 또 다시 읽고 싶어 펼치면서 이번엔 수록된 11편을 모두 읽었다.

'벚꽃새해'는 황학동 노인의 사연과 아유타야의 불상머리 이야기가 액자처럼 담겨있고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주인공의 이모가 들려주는 러브스토리가 액자처럼 담겨있다.
'일기예보의 기법'은 주인공이 들려주는 일기예보관인 동생의 이야기이고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한 소설가가 들려주는 암병동에서 만난 노인의 과거 소설인 ' 24번 어금니로 남은 사랑'과 그에 얽힌 못다한 이야기로 소설들 대부분이 흥미진진했다.

나는 이 책에 실린 11편 중 표제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가장 좋았다. 빗소리를 어떻게 음계로 표현했는지 소설가이자 시인이기에 이런 아름다운 제목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주인공의 이모가 서귀포로 사랑의 도주를 하여 3개월 남짓 살았던 집이 함석지붕 집이었고. 그 집의 빗소리가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에는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는 이모의 말에서 따 온 제목이다. 피아노로 음계를 치면 사월에는 '미', 오월에는 '파', 유월에는 '파#' 칠월에는 '솔', 딱 맞아 떨어진다. 그냥 '도레미파솔라'만 생각했다면 '사월의 미 유월의 솔'이라 했거나 '오월의 미 칠월의 솔'이라고 했겠지만, 김연수 작가님은 유월에 '파#'을 생각한 것 같다.
바이올린 제작자의 이야기를 담은 ' 인구가 나다'라는 소설만 보더라도 작가님은 음악 쪽에도 꽤 조예가 깊으신 듯하다.

올해 읽은 김연수 작가님 책이 4권인데 그 중에 한 권을 꼽으라면 나는 이 책이다.

옛 기억을 통해 각자의 과거를 되짚어 보게 되는 이야기들, 그들이 품고 있던 사랑과 삶의 가치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었고 때론 추리소설적인 부분이 곁들어 있어 재미도 있다. 각 소설마다 아프거나 죽은 이가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슬프지도 않다. 무엇보다 11편의 이야기 소재가 다채로워서 더 좋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20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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