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토지>는 1897년 추석, 들판의 세떼들을 쫓는 ‘후우이이’하는 소리로 시작해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며 부르는 ‘독립 만세’ 소리로 끝을 맺는 대하소설입니다. 50년에 이르는 시간과 구한말의 한 시골 마을에서 만주와 러시아를 넘나드는 광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기에 익숙하지만 방대한 분량으로 많은 도전자들의 완독 의지를 꺾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구한말 경남 하동을 배경으로 하기에 많은 꽃 이름이 등장하는데요. 여기서는 목련을 알아봅시다.
목련의 꽃말은 ‘고귀함’입니다. ‘매초롬하다’는 말은 ‘젊고 건강하여 아름다운 태가 있다’는 의미고요. 목련은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꽃이 질 때는 지저분하고 추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경남 하동에는 실제로 토지 속 최참판 댁을 재연해 둔 공간이 있습니다. 무엇이 목련을 고귀하게 하는지 올 봄 직접 확인해 보시면 어떨른지.
기타모리 고 <꽃 아래 봄에 죽기를>
꽃이 피기에는 이른 어느 추운 봄날, 신원 불명의 하이쿠 시인이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나이도, 이름도 출신도 불분명한 이 늙은 시인은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그의 죽음이 안타까웠던 건지, 시신이 발견된 집에는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추위로 개화 시기가 늦춰지고 있던 시점이었기에 기사를 작성한 이는 ‘기적의 꽃’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피어난 ‘기적의 꽃’은 ‘벚꽃’입니다. 화사하고 화려하게 핀 벚꽃길을 걷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뜨죠.
벚꽃의 꽃말은 참 많습니다. ‘순결’, ‘미인’, ‘교양’, ‘정신미’, ‘번영’, ‘행운’, 혹자는 우스개로 ‘중간고사’라고도 합니다. 벚꽃의 진짜 꽃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어떤 현명한 이는 ‘자기 마음과 분위기에 맞는 꽃말을 정하면 된다’고 답했다고 하더군요.
자, 자기 마음에 드는 꽃말을 정하셨나요? 그렇다면 남은 건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일, 그걸로 충분하겠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우미인초>
제목의 ‘우미인’은 한고조 유방과 경쟁하던 젊은 영웅 초패왕 항우의 여인 우희를 의미합니다. 항우가 패하자 자결하여 꽃이 되었는데 그 꽃이 우미인초라는 거죠. 우희의 비극적인 사랑에서 태어난 꽃이름을 제목으로 삼았기 때문인지 이 이야기 역시 사랑이 만들어낸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딸의 결혼을 이용해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엄마와 지위와 출세에 연연하는 남자들, 이들은 오로지 삶만을 추구하며 희극을 꿈꾸지만 언제든 들이닥칠 죽음이라는 비극은 외면하죠. 그 모든 욕망이 좌절되는 순간 꽃은 지고 맙니다.
우미인초(개양귀비)의 꽃말은 위안, 약한 사랑, 기약없는 사랑입니다. 개양귀비는 다양한 색깔을 갖는데 색깔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고 전합니다. 계절이 돌고 돌 듯, 꽃이 피면 언젠가 반드시 지는 날이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처럼.
가와바타 야스나리 <천마리 학>
이 이야기에는 아버지와 무관해지려 하고,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마치 아버지의 그림자를 좇듯 그가 남겨둔 인연에 이끌려 다니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자기를 마음에 둔 여자를 외면하고, 아버지와 모종의 관계였던 여자를 택하는 근친상간적인 남자의 결정은 태평양 전쟁 패전 후의 일본 사회의 상실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끊고 싶지만 끊어낼 수 없는 역사의 연장선에서 일본인들이 택할 수밖에 없던 것이 현재의 무력감임을 예언했던 것인지도요.
창포의 꽃말은 ‘우아’입니다. 붓꽃의 꽃말은 ‘좋은 소식’이고요. 창포와 붓꽃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닮는 것처럼, 이 두 꽃 역시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봄, 우아하게 좋은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죽음 직전까지 쓰고 고치기를 거듭했다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다 읽으려면 휴가가 한 달은 필요할 거라는 농담이 있을만큼 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마르셀의 분신인 화자 ‘나’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과 심리, 사회의 변화에 따라 대립하는 부르주아와 귀족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이기도 합니다.
스완의 딸인 질베르트는 ‘나’의 첫사랑입니다. 온 마음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가진 모든 것을 다 줘도 아깝지 않다고 믿고 있죠. 그래서 ‘나’는 유산으로 받은 항아리를 팔아 꽃을 선물할 생각을 합니다. 이 첫사랑이 영원할 거라 믿는 마음으로요.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입니다. 첫사랑에 빠진 사람이 선물할 법한 꽃이죠.
장미의 꽃말은 색깔마다 다릅니다. 빨강은 열렬한 사랑, 흰색은 순결함, 노랑은 우정. ‘나’는 어떤 색을 선물했을까요. 저는 빨강보다는 흰색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질베르트의 사랑이 너무나 순수하고 순결하다고 믿고, 또 바랐을 테니까요.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꽃을 선물하시겠어요?
글 | 플라이북 에디터 서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