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은 <금오신화>를 읽어보겠노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금오신화>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형태의 책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는 <금오신화> 자체를 그대로 풀어서 읽기 쉽게 쓴 것이 아닌, <금오신화>의 저자 김시습을 책 속에 등장시켜 각 이야기에 담긴 해석을 제자와 함께 공부하는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어쩌면 이 해석이 김시습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김시습이라는 인물이 살았던 배경 위에 그의 행동을 쫓아 이런 의미이지 않을까? 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이 아주 큰 책이다.
책은 <금오신화> 속 다섯 편의 이야기 외에 김시습이 제자 선행에게 한 편의 이야기를 주고 그 이야기의 해석을 함께 이야기 나누며 공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독자는 이 대화를 읽으며 제자 선행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생각하며 각 작품 속 의미와 당대 역사적 배경 사이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따로 읽었던 "이생규장전"만 놓고 본다면 그저 생과 사를 뛰어넘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김시습이 등장하여 설명하고 가르쳐주는 당시의 역사 배경을 알고 읽으니 무척 새롭게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진정한 공부는 보이는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속뜻을 찾고 더욱 확장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라는 "이야기"의 중요성과 함께 계유정난 이후 벌어진 여러가지 사건과 함께 김시습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새롭게 <금오신화>를 써 해석을 제시한 강숙인 작가의 시도이고 우리는 이것을 바탕으로 또다른 해석은 없을지 어느 것이 옳을지 여러 방면으로 찾아보고 또 다른 해석의 시도를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역사의 쓸모 - 최태성
최근 방송에서 많이 보이는 역사강사 최태성님의 책이다. 부제는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로 22가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한국사를 재미있게 강의하는 것을 많이 보았으므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의 강의에는 항상 무언가 배울만한 교훈을 알려주는 게 참 좋았다. 이 책에도 그가 생각하고 느낌 다양한 교훈들이 들어있다.
저자는 시간 여행을 할 순 없지만 역사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놀랍게도 100년전, 1000년전에 살았던 사람들도 그와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위기를 겪고 또 극복해내는 이야기를 보고 그에게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어주고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친구가 되어준다. 그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만난 수많은 인문들의 이야기는 그의 인생에 더할 나위없는 재산이 된다.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까? 저자는 역사가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한다.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역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강의의 1강에서 역사를 왜 배우는지를 다룬다고 한다. 역사를 공부하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굳이 시간을 되돌리지 않아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무수히 많은 선택과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역사는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쓸모있는 학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 책 제목을 '역사의 쓸모'라고 이름 붙였다.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기에 그때마다 막막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역사 속 인물들은 이미 그런 경험을 했다. 그 수많은 사람의 선택을 들여다보면 어떤 길이 우리 삶을 더욱 의미있게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역사는 아득한 시간 동안 쌓인 무수한 사건과 인물의 기록이다.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과 그 과정에서 형성된 문화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역사를 공부해야 할 이유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역사는 기록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일
역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공부이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긴 시간 안에 엄청나게 많은 삶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계속 그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좀 더 의미있게 살기 위한 고민,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품위있는 삶을 만드는 선택의 힘
우리는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 선택은 때때로 예측 불가능할 만큼 기상천외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며 한번 선택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과거를 알 수 있다. 지금의 우리처럼 사는 내내 수많은 갈등 속에서 결정을 내렸을 과거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예측해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을 품위있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역사적 사고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만 생각하여 잘못과 부정을 저지른다. 역사적 사고를 통해 이런 잘못을 줄일 수 있다. 역사적 사고란 역사 속에서 나의 선택이 어떻게 해석될지 가늠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고는 특히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지식인이나 오피니언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고이다.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해
조선의 성군으로 꼽히는 정조는 참 힘들게 왕이 된 인물이다. 목숨을 부지하느라 고생했던 정조는 왕이 되자마자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정치 개혁을 위해 힘쓴다. 자신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 규장각을 세우고 당파나 신분에 관계없이 똑똑한 관료들을 뽑아 규장각에 배치했다. 정조가 키운 인물중에 하나가 정약용이었다. 그는 모든 학문 분야에서 천재성을 갖춘 인물로 조선의 르네상스맨이였다. 정조는 정약용을 무지 신임하고 아꼈다. 정약용의 집안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점때문에 정조는 정약용을 내친 후 다시 조정에 불러들이기로 말을 맞추었다. 그리고 정약용은 조정에서 물러나 자신의 생가에 '여유당'이라는 현판을 걸고 왕의 부름을 기다린다. 그렇게 왕의 부름을 기다리던 그에게 왕의 편지가 도착한다. 보름 후 부를테니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왕의 부름을 받기 하루 전 갑작스럽게 정조가 사망한다.
자신을 보호해주던 정조가 사라지자 신유박해로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당하고 정약용은 유배를 가게 된다. 천주교와의 인연을 끊었다는 호소가 받아들여져 간신히 죽음만은 면했지만 큰형 정약현의 사위가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강진으로 유배지를 옮겨 살아야 했다. 그의 일문은 폐족이 되었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나라를 탓하거나 운명을 탓하며 인생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유배 18년동안 500여권이 넘는 책을 쓴다. 그가 왜 이렇게 미친듯이 책을 만든 것일까? 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그의 답변이 담겨 있다. 만약 자신이 지금의 생각을 남기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사헌부의 재판 기록만보고 자신을 죄인 정약용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글을 남겨 후세의 평가를 받으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정약용은 그의 뜻대로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후대에 인식될 수 있었다. 우리는 인생의 고비를 만날때마다 역사 속 인물과의 소통으로 지금 당장 닥친 문제를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멀리서 내 문제를 바라보면 현재의 고비는 긴 인생에서 작은 하나의 고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 할머니, 할아버지는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왔을까?
2017년 촛불 탄핵이 일어나고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자 태극기 부대의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태극기 부대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배가 높은 어르신들이다. 이 노인들을 비하하는 틀딱충이란 용어가 남발하면서 저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과 벌레를 뜻하는 충을 합해서 노인들을 벌레처럼 비하한 용어였다. 집단 간 갈들이 심해지고 노인 혐오로 표출되는 상황에 대해 그는 고민했다고 한다. 그들은 왜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건지 우리는 그들이 살아온 삶의 시간을 상상해보고 이해한다면 세대 갈등이 갈등을 넘어 혐오로 번지는 것만은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서로의 시대를, 상황을, 입장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관점도 달라질 거라고 말한다.
22가지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을 들어주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책이다. 그분의 강의를 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책도 강의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신화지만,
금오신화의 신화와 그리스신화는 한자가 다르다. 경주 금오산에 머물러 작품을 써서 금오. 새 신, 말씀 화 <新話> 새로운 이야기라는 뜻이고, <神話>는 신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8달만에 글을 읽어, 논어 처음에 등장하는 "학이시습지불역열호"에 시습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는 김시습.
1471년 37세 지어졌으며, 요즘 단편소설 분량에 5편이 전해진다.
만복사저포기-만복사에서 윳놀이
이생규장전-이생이 담넘어 보기
취유부벽정기-부벽정에서 취하기
남염부주지-남염부주에 가다
용궁부연록-용궁잔치 초대받기
만복사 불상 앞에서 윳놀이를 하고 이긴 양생은 어느날 여인을 만나는데, 왜구로 죽은 여인은 양생의 문에만 보인다.
담넘어 시를 주고 받은 이생과 최씨는 혼례를 치루나, 홍간적의 난으로 헤어진 최씨는 죽임을 당한다. 그날 이생은 이미 죽은 지 알았지만,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시 나타난 최씨와 몇년을 산다.
부벽정에서 만난 여인은, 선녀였고 헤어진뒤 그리워하며 병을 얻지만, 홍생은 견우성 휘하 종사관으로 옥상상제의 명을 받고 세상을 떠난다.
인물들을 치밀한 비극적 상황으로 몰아넣는 그리스비극과는 달리, 죽은이와 산자의 경계를 넘는 한국적 비극을 제시한다.
죽은자가 이승에 오고 가고,
산자 앞에 나타나 고통을 전한다.
시로 전하는 은근한 사랑, 숭고하고 애절한 사랑, 그리고 저승에서 토론하고 염라대왕이 되는 기묘함(남염부주지)까지 다채로운 이야기 꽃을 피운다.
최초의 소설이니, 지금처럼 복잡하지도 길지도 어렵지도 않은, 단순 담백 진솔하다.
역설적으로 최초는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