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신분제로 인간을 옭아매고 총칼로 위협해 육신을 지배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누군가는 득을 보고 누구는 손해만 입는 불공정한 세상에서 인간이 알아서 시대(라고 쓰고 기득권이라 읽는다)의 이익에 봉사하니 말이다. 혹자는 그를 물질과 자본, 신자유주의적 착취라고 하지만 이제와 혁명의 가능성은 글쎄.
한병철은 AI가 정보를 매개로 인류를 착취하는 시대가 도래하리라 전망한다. 실재가 더는 중요치 않은 새 시대에 인간은 공동체도, 가치도 잃고 제가 결정권이 있는 양 착각하는 저능하고 화 많은 디지털 가축으로 전락하리란 것.
다정한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비정한 철학서로 다시 쓴 듯하다. 좀 뻔하긴 해도 철학적 사고의 지적 즐거움이 분명하다. 책 안 읽는 대중의 멍청함에 대한 날 선 비판이 매섭고 철학이 저널리즘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통렬하다. 그를 겉멋 든 꼰대라고만 여겼던 나를 반성한다. 그렇다고 꼰대 아니란 건 아님.
- 실패담 크루
p.9 페이스트리는 뜻밖에 정치적인 빵이다. 겹겹이 쌓인 층과 층 사이, 선처럼 얇은 틈이 숨어 있다.
p.13 예의바르게 돌려 말하면서 정곡 찌르기, 공격적이지 않고 남 신경 거스르지 않으면서 원하는 바를 관철하기 등의 기술을 가르치는 사교육 업체가 나만 모르는 곳에서 성업중인지도 몰랐다.
p.26 극복하고 넘어서고 미래를 기약하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굳이 안 그러고 싶은 실패도 있으니까. 그냥 실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삶의 일부로 남은 실패. 그걸 이제 남 앞에서 편히 말해 보자는 취지예요. 일종의 담백한 공유랄까. 재미도 있고요.
p.29 남의 서사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 타인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 간섭하고 싶은 마음, 그걸 매개로 자기 얘기를 덮어씌우고 싶은 마음 다 전형적인 꼰대의 특징이니까요. 우린 안 하기로 했어요.
- 우리가 떠난 해변에
p.219 모든 멈춘 것은 퇴색하고 틈이 벌어지고 낡아간다. 움직이지 않는 바위는 제자리에서 조금씩 바스러지고 있다. 어느 날 회색 재로 풀썩 무너져내려 실체조차 없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사랑도 언젠가 그처럼 소멸하리라는 희망만이 그동안 설을 버티게 했다.
- 사는 사람
p.304 그때 나는 멀리 가면 빨리 갈 수 있다고, 빨리 가면 멀리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빠르게 멀리 가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이유라고.
아주 멀리 온 것 같은데 제자리뛰기를 하고 있었던 기분이다.
p.13 예의바르게 돌려 말하면서 정곡 찌르기, 공격적이지 않고 남 신경 거스르지 않으면서 원하는 바를 관철하기 등의 기술을 가르치는 사교육 업체가 나만 모르는 곳에서 성업중인지도 몰랐다.
p.26 극복하고 넘어서고 미래를 기약하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굳이 안 그러고 싶은 실패도 있으니까. 그냥 실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삶의 일부로 남은 실패. 그걸 이제 남 앞에서 편히 말해 보자는 취지예요. 일종의 담백한 공유랄까. 재미도 있고요.
p.29 남의 서사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 타인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 간섭하고 싶은 마음, 그걸 매개로 자기 얘기를 덮어씌우고 싶은 마음 다 전형적인 꼰대의 특징이니까요. 우린 안 하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