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처음 아이에게 더하기를 가르칠 때, 대부분 가정에서는 “10이 되는 수”를 먼저 가르칠 것이다. 우리 집 역시 10칸짜리 플라스틱 통에 부지런히 과일을 채웠었지. 찰떡같이 알아듣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우리 집같이 10을 위한 더하기(?)를 또 하는 예도 있었을 터. 아마 이 작가님도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셨을까? 그래서 다른 꼬마들은 조금 더 쉽게 10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귀여운 책을 쓰신 건 아닐까?
안희진 작가님의 『십이 될 거야!』를 소개한다.
『십이 될 거야!』는 숫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교실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왕좌왕 시끄러운 숫자들에 자리에 빨리 앉으라고 소리를 지르는 선생님의 모습이 피식 웃음이 난다. 숫자들은 10칸의 상자에 숫자를 채워야 하는 미션을 받았는데, 남아서도 안 되고 해서도 안 된다. 셋도 안되고, 둘이어야만 한다. “1등이라고 으스대며 나 하나만 알 땐 미처 몰랐어. 9해주고 양보하면 우리도 하나가 될 수 있는걸”이라는 멋진 문장과 함께 첫 10이 탄생하며, 숫자들은 하나둘 짝을 이룬다. 5의 멘트에서 아이는 “5가 너무 딱해”라며 속상해하기는 했지만, “진작에 이 책이 나왔으면 나도 더 쉽게 배웠을 텐데!”라며 동생들에게 참 도움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
물론 이미 꽉 찬 9살이 된 우리 아이에게는 『십이 될 거야!』로 짝궁수를 익히는 도움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십이 될 거야!』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채우는 마음은 배웠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꼬꼬마 친구들을 키우는 부모님들께 『십이 될 거야!』를 강력히 추천해 드리고 싶다. 연산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10이 되는 수를 배우는 학습적인 부분으로도,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배우는 것에도,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으로도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아이가 좀 크다 보니 동화책 등을 읽느라 그림책을 읽는 양이 많이 줄어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또 한 번, 그림책에서 배우는 세상을 느낀 것 같아, 그림책은 역시 평생에 걸쳐 읽는 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25#43 영의 상속
2025.12.24~12.29
⏩️사랑을 쟁취하는 자, 저택도 얻을 것이다
✅줄거리
유명 작가 화랑이 자신의 조카 오영에게 저택을 물려주기 위해서 사랑의 테스트를 한다. 29살 인생 동안 책과 고양이를 제외하고 누군가와 진지하게 사랑해본 적도, 관심도 없는 오영이 진정한 사랑을 느끼길 원해서 저택에 파티를 열어 초대된 5명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 테스트의 합격 조건이다.
오영은 열심히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다 양봉업자 로하와 잘 되어갈 것 같을 때즈음 미션 수행을 포기한다. 그 와중에 화랑에게 협박 편지와 미스테리한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오영과 함께 모인 사람들끼리 범인을 잡고자 한다. 결국 착실히 화랑을 보좌했던 홍진의 변질된 사랑이 드러나며 사건이 마무리되고, 오영은 다섯 명의 마음을 전부 얻지 못했지만(? 이미 남자들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 실패인가 싶기도..) 저택을 상속받는다.
✅느낀점
저택을 상속받기 위해 사랑을 해보거라는 테스트는 쇼킹하긴 했지만 화랑이 조카를 아끼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려운 시험은 아니어서 놀랐다. 다들 오영에게 보통 이상의 호감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뭔가 그 호감의 서사가 충분하지 않아서 냅다 좋아하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여배우 한오름이 초대된 것도 좋았지만, 혼자 너무 개연성 없는 삶을 살아버렸다.
그리고 이 책에서 신기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저택의 지박령 부이의 존재였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사람들의 관심을 피해 조용하게 살고 싶었던 그녀는 돈 많은 유부남을 꼬셔 저택을 짓게 하고 그 안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다 죽는다. 그리고 그 저택에 영혼으로 머물며 저택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조종하며 지냈다. 에필로그는 부이의 절규로 끝난다. 영이 저택의 새로운 주인이 되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에. 지박령 컨셉 때문에 <캔터빌의 유령>이 생각나는데 비슷하진 않다. 영혼의 갈증이 해결되거나 문제가 풀리는 게 없이 좀 싱겁게 끝난 것 같다.
*여하하다: 의견, 성질, 형편, 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있다 / 무엇을 어떻게 하다 (여하한: 어떠한)
*달뜬: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조금 흥분되다 / 열기가 올라서 진정하지 못하다
*편폐: 편벽되게 특별히 사랑함(편애) / 한쪽만 없어지거나 버림
*성토하다: 여러 사람이 모여 국가나 사회에 끼친 질못을 소리 높여 규탄하다
고독자 미션과 별도로 써보는 기록.
아마 고독자 1기가 아니었다면 평생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를 읽을 수 있었을까 싶다. 버지니아 울프에 빠졌더라도 앞의 몇 페이지를 잠깐 들여다보고 아마 포기했을 듯. 그래서 이 고독자 미션이 정말 고마울 지경이다. 어떻게든 읽어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들 뿐 아니라 점점 좋아지기 때문이다. 왜 울프의 최고봉 작품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듯.
<파도>는 기존의 책을 읽듯 읽을 수가 없다. 특히 내 경우 어떤 책을 읽든 기록을 남길 마음으로 읽기 때문에 보통 전략적으로 읽는 편인데 <파도>는 불가능하다. 일단, 줄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다. 사실 잘 살펴보면 줄거리가 있기는 있다. 상징과 비유가 많아 그 줄거리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을 뿐. 또, 그 줄거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잘 모르겠는 줄거리를 파악하려고 읽다가는 멘붕에 빠지게 되고 결국 포기하기 직전까지 갈 수 있다는 것.
그러니 <파도>는 그냥 읽는다. 사실 원서로 읽을 수 있으면 훨씬 더 아름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울프가 시희곡이라고 불렀을 만큼 <파도>는 시적인 표현들의 향연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번에 책을 읽을 땐 줄거리보다는 그냥 문장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곳들을 필사해 나갔다. 보통 어려운 책들을 읽을 때는 마음에 드는 문장은 포스트잇으로, 전체적 줄거리나 중요 사항들은 마은드맵 식으로 적으면서 읽는다. <파도>는 그저 적어나갔다. 그리고 그 적은 것들을 모두 읽은 후, 다시 읽으면서 떠올려보니 전체적 윤곽을 잡을 수 있었고 그 문장들이 바로 마음에 들어온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이해했다고 위안을 삼는다.
몇 년에 한 번씩 읽어야 하는 책 리스트에 <파도>도 추가해 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한참을 귓속을 의식하게 되었다. 고막 남자친구라니. 실체도 없고 상처도 없는 연애라니. 이 기묘한 설정 앞에서 나는 계속 웃다가도 문득 서늘해지곤 했다.
권혜영 작가가 그려낸 지나의 세계는 비현실적이면서도 지독히 현실적이었다. 현실 남자 울렁증을 가진 여자가 ASMR 콘텐츠 속 목소리와 연애를 한다는 설정은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읽다 보면 묘하게 이해가 되었다. 일방적인 사랑. 상처받지 않는 안전한 거리. 그 안에서 누리는 평화로움. 그것이 얼마나 달콤한 망상인지.
그런데 그 평화가 깨지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다즐링 행성의 왕자가 애시를 찾으러 왔다는 설정, 그리고 지나가 고막 남자친구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벌이는 분투는 웃기면서도 애잔했다. 남자 염색체를 가진 신체의 일부를 구하라니. 손톱이든 타액이든 터럭이든. 남자 울렁증을 가진 여자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가람이라는 친구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 복잡해졌다. 가람은 지나와 달랐다. 여전히 쌍방의 연애, 쌍방의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두 여자가 각기 다른 형태로 품고 있는 애정과 망상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사랑이란 결국 저마다의 방식으로 망상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누군가는 쌍방으로. 누군가는 안전하게, 누군가는 위태롭게.
권혜영 작가의 문장은 가볍게 읽히지만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애정이라는 이름의 망상과 망상이라는 이름의 애정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얻고 또 헤매는가. 비정상적으로 분비된 사랑의 호르몬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 이토록 기묘하고도 절실할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니, 나는 내 귓속을 다시 한번 의식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쩐지 무언가 울려 퍼질 것만 같았다. 실체 없는 목소리, 상처 없는 사랑. 그것이 주는 위안과 공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달달함보다는 씁쓸함을 더 많이 느꼈다. 하지만 그 씁쓸함 끝에 남은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다채롭고 기이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해였다. 지금은 없는 달달함을 위하여. 그 문장이 한참 동안 귓가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