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는 하나의 모호한 생각을 여러 단편으로 나눠 보여주는것 같다.
그렇기에 모든 이야기가 비슷하면서도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거겠지.
불후의 명작은 그 울림이 메아리처럼 여러 시대를 걸쳐 반복되고
현재의 작품이 이전 시대의 작품(고대 그리스 작품같은거)을 비출 때 사람들은 찬사를 보낸다.
그렇기에 보르헤스는 시간(시대)이란 무의미하다 생각하여
시공간을 해체하는 파격적인 전개들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전자책]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이다. 그의 산문집은 이 책 외에 “보다”와 “말하다”가 있었는데,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머지 책들의 정체는 몰랐었다.
각설하고 이 책은 그가 작가가 됨에 있어 많은 영향을 끼친 책들과 저자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특히 보르헤스가 많이 언급되는 것을 보아 그를 통해 저자를 깊이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전자책이라다 보니 읽는 것에 집중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이 조금 부족했다. 다른 책들은 조금 여유를 갖고 봐야겠다.
나는 문장을 온몸으로 먹고 싶다.
이 문장이, 그 마음이 되고 싶다.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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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다."라 말했다지만, 나는 "내게 천국이 있다면 헌책방처럼 생겼을 것"이라 대답하고 싶다.
p.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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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의 구원은 날개를 닮은 책과 함께 온다.
p.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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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책 한 권으로 바뀌지는 않지만
책 한 권이 사람의 인생에 계기가 되어준다.
p.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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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마음 = 내 마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책과 그림을 좋아하는 나에게 완벽했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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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쟁이들끼리 수다 떨며 노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신났다🤭
책은 혼자의 것이 아닌, 함께하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느낀다.
말? 그렇다, 그건 공기다,
대기 속에 사라지니까.
이 말들 속에 나 또한 사라지게 하라,
그러다가 어느 입술에 감도는 대기이게 하라,
정처 없이 떠도는 바람
떠돌며 바람을 흩뜨리는 바람.
빛도 스스로의 빛 속에 사라지나니.
- ‘시인의 숙명’, Octavio Paz
허무와 꿈 사이
부서진 기둥 밑에서
나의 불면의 시간들을 가로질러가는
너의 이름, 음절들.
불그레한 너의 긴 머리칼,
한여름의 번갯불이
밤의 등 뒤에서
달콤한 횡포의 불빛으로 떨리고 있다.
퍠허에서 솟아나
허무로부터 너를 벼려내는
꿈의 어두운 물살:
물에 젖은 밤의 해변,
거기 눈먼 바다가 밀려와
미친 듯 후려치고 있다.
- ‘독백’, Octavio Paz
깨어진 시,
번갯불에 쪼개진 나무 둥치 같은,
자신이 떠받고 있는 꽃의 광란으로
부서진 꽃줄기 같은,
그런 시가 문득 그 부서진 틈바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같은 것을 보여준다.
오직 그 많은 것을 사랑한다는 부끄러움이
사랑을 광란으로 몰아가다,
어느날 문득 사랑은 눈앞에 난 오솔길로
갑자기 옮아오는 해로 둔갑한다.
시는 깨어진다
사랑이 스스로의 본질 속에서
부끄러움을 잃고
그 다양성의 통일성을 회복하도록.
시는 깨어진다
해가 돌아오도록.
- ‘제7의 수직의 시 5’, Roberto Juarroz
항상 나는 나의 좆이었습니다, 하느님,
항상 나는 여자에게 들어가는
내 살의 한 조각,
나를 남자이게 하고, 세상을 알게 하고,
삶과 죽음을 가진 사람이게 한 것.
왜 너는 나를 작아지게 하는가?
나는 너의 지혜로부터 배우고 싶은 게 없다.
나는 계속 꿋꿋이, 꿋꿋이 서 있는 남근이고 싶다.
그리하여 정확한 시간에
달콤한 땅의 달콤한 흙더미에 들어가고 싶다.
80세까지만 살아서
제대로 서 있게 해다오!
- ‘항상 나는 나의 좆이었습니다’, Jaime Sabines
누구도 이 고백을
비난이나 눈물로 격하시키지 말라
달인의 득도랄까, 신의 훌륭한 아이러니,
책과 밤을 내게 함께 내리신 이 크막한 은혜
이 책의 도시에
나의 이 빛을 잃은 눈을 주인 되게 하시다.
오직 꿈의 도서관에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두 눈,
자꾸만 뒤로 물러나는 버르장머리 없는 글씨들
나의 불타는 눈의 열망에도 끝내 허락하지 않는 여명, 헛되이
대낮은 끝없는 책들을 펼쳐 보이지만
모두 다 어렵기는, 이미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라져버린
그 어려운 고서들 같은.
(어떤 그리스의 이야기가 있지) 목마름과 배고픔으로
어떤 왕이 그 많은 과일밭, 샘물 속에서 죽어갔다는;
나는 이 높고 깊은 눈먼 도서관 서가 사이를
자향없이 헤맨다, 끝에서 끝까지.
백과사전들, 지도들, 동양,
서양, 시대들, 왕조들,
상징들, 우주와 우주창시론들을
벽들이 보라고 내민다, 쓸데없이.
나의 그림자 속에서 나는 서서히
갈 곳 모르는 지팡이로 텅 빈 어둠을
더듬는다. 나, 일종의 책의 세상에서
하나의 천국을 꿈꾸었던 나.
어떤 '우연'이라는 말 하나로
명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이것들을 지배한다;
다른 사람도 또다른 어두운 하오에
이 많은 책들과 어둠을 선물로 받았겠지.
서서히 서가를 거닐다보면
형언할 수 없는 성스러운 공포로 느낀다,
나는 내가 딴사람인 것을, 다른 어떤 죽은 사람,
나와 똑같은 날에 똑같은 발걸음을 옮겼을 다른 어떤 사람.
그 둘 중의 누가 이 시를 쓰고 있는가,
그 많은 사람들의 나, 아니면 나라는 단 하나의 그림자?
말이 무슨 상관이랴, 내게 오는 이 말이,
결국은 구분할 수 없는, 똑같은 저주인걸.
그루사끄거나 보르헤스, 그 누군가
이 사랑스런 세상을 보고 있다
창백한 잿더미 속에 희미하게 변해가며
자꾸만 꺼져가는 세상,
꿈과 망각을 닮은.
- ‘은혜의 시’, Jorge Luis Borges
꺼져가는 한숨이 멀어져가는
물결에 수없이 굽이친다:
수천의 거울이 보드랍게
나를 완전히 산산조각으로 만든다.
웃음 짓는 통곡, 원경에 마음 둔
울부짖음. 그 많은 포효가
차가운 뱃길을 따라 항해하고 있었다
나를 떠나는 소리들, 나의 나날은
날개 돋은 다리 위로 그렇게 날아간다.
- ‘바다 12’, Eugenio Flor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