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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과 식민주의 (일본 제국주의의 남진과 대동아공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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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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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박물관과 식민주의 (식민지 역사의 재현과 문화재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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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평론아카데미

초민족 시대의 민족 정체성:식민주의·탈식민이론·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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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한국과 타이완에서 본 식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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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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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성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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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daimoniaaa
Review content 1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을 해주시는 최재천 교수님이 계셔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말씀뿐만 아니라 행동도 하시니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과 공존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원론이 아닌 일원론인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연 위에 인간이 존재하고, 그 자연은 인간의 기술발전을 위해서 무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신의 피조물 중 인간이 최고라고 떠드는 집단도 있으니..그것은 착취하는 식민주의적 사고로 아직까지도 식민지배의 유전자가 우리에게 새겨져 있는 것이다. 대체에너지도 환경오염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싶다. 이 책을 다 읽고, 스팸메일함을 비워본다. 개인으로서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개미보다 없어서 허무하고 무기력해진다. 그럼에도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개미보다 못하기 때문에 환경운동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규모있는 소비지출을 통해 관련 기관에 후원하는 것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좋은 실천이 될 것 같다. 하아...말은 이렇게 하지만서두 힘빠지는 환경오염의 현실...
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열림원
1년 전
빵소금
빵소금@saltybread

스팸메일함 비우러 감미다,,,

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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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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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daimoniaaa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었던 폭력의 순간들을 단지 일탈로 경시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순간들은 자본주의의 기반이다. 자본주의하에서 성장은 새로운 개척지를 필요로 하며 늘상 개척지로부터 가치를 뽑아내고는 가치에 대한 지불은 하지 않는다. 즉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식민주의적이다.' 처음 읽을 때는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식민지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착취가 재산이 되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파괴가 신산업이 된다는 것을. '남반구의 기후 붕괴로 인한 트라우마는 식민통치로 인한 트라우마와 맥을 같이한다. 남반구는 두번이나 고통을 겪었다. 첫번 째는 북반구의 산업 성장을 촉진했던 자원과 노동력의 착취였다. 이제는 북반구의 산업에서 나온 배출로 대기 커먼즈가 전유되고 있다. 기후위기를 분석하면서 식민주의 차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는 핵심을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원자재 개발로 지구 곳곳을 뚫어대고 있는 현상을 보면 어쩌면 인간은 크게 성장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이상적으로 성장했더라면 결과까지 생각하고 행동할텐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 더 많이 벌어지고 있다. 그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와 우주개발을 꿈꾸고 있지만 이 또한 새로운 파괴를 만들어 낼뿐이다. ’100퍼센트 청정에너지 시스템을 갖춘다면 우리는 그 에너지로 무엇을 할까? 우리가 화석연료로 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을 할 것이다. 숲을 더 많이 파괴하고, 저인망으로 물고기를 더 많이 잡고, 더 많은 산을 채굴하고, 도로를 더 많이 걸설하고, 산업형 농장을 확장하고, 더 많은 쓰레기를 매립지에 보낸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이 국면을 타개할 정책들을 쏟아놓곤 한다. 언제까지 고성장 시대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미 이룬 성장에서 분배하며 사는 삶도 있는데 말이다. 성장과 개발만이 인류의 목적인 것처럼 살아간다. 탈성장은 게으르고 안일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GDP를 줄이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불평등의 균형을 찾고, 소득과 자원을 배분하며, 불필요한 노동에서 해방하며, 공공재에 투자하는 것이 탈성장에 관한 것이다.
적을수록 풍요롭다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적을수록 풍요롭다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제이슨 히켈 (지은이), 김현우, 민정희 (옮긴이)
창비
1년 전
:)
:)@eudaimoniaaa

@saltybread 다같이 읽었어야 했는디…

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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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

@o0aijquj
1960-70년대 한국에서의 ‘근대화’는 하나의 거대한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구악의 일소를 내세우면서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그리고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은 “우리도 남들처럼 잘 살아보겠다.”는 신념에 근거해 협동조합주의적 ‘근대화’ 정책을 여러 수행했다. 비단 박정희 행정부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 역시 이에 동조하였고, 박정희 행정부가 제시한 ‘근대화’라는 이정표는 자신들을 더 나은 내일과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화’는 단순히 박정희 행정부의 의지만이 아니라 주변 세계의 정세, 냉전이라고 하는 국제적 상황에 의한 미국의 이데올로기 중 하나였다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트루먼 행정부에서 시작해 신생국가와 제3세계에 대한 외교정책으로 ‘근대화론’을 핵심으로 삼은 케네디 행정부까지 ‘근대화론’이 어떻게 사회과학계와 밀월을 맺으며 대외 정책의 한 기조로써 삼을 수 있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많은 미국의 사회학자들은 학계가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었다. 이는 사회과학이라는 자신들의 학문에 ‘과학’이라는 위상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인했으며, 미국 행정부의 입장에서도 이미 1950년, NSC-68로 알려진 문건에서 미국을 스스로 공산주의를 억제하기 위한 투쟁에 개입하는 중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위한 시도로써 사회과학이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이렇게 서로 맞아떨어진 입장 속에서 미국 행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과거 1930-40년대 각각 뉴딜(New Deal)과 페어딜(Fair Deal)의 경험, 그리고 마셜 플랜이라고 하는 거대한 전후 유럽 재건 사업을 토대로 1950년대와 60년대의 신생국가 탄생, 그리고 제3세계에 정책에 있어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 과거 유럽의 식민주의가 지배했던 제3세계를 끌어들일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사회과학계 역시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유럽은 이미 산업사회에 대한 합리와 희망을 양차의 세계대전으로 모두 잃었던 반면, 대서양 너머 미국은 상대적으로 전장이 아니었다는 점과 1920년대의 ‘경제적 광란’ 혹은 ‘경제적 부흥’을 통해 학문기관이 발달할 수 있었다. 이 전환 과정에서 ‘근대화론’이 등장하였고, 특히 ‘시카고 학파’로 불리는 이들이 사회과학을 ‘과학’의 영역으로 올려놓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였다. 매리언 레비, 대니얼 러너, 폴 로즌스타인 로단, 월트 로스트와 같은 인물들이 수행한 사회과학의 연구 방법에서 사용한 수치화, 통계화의 사례를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결론이 주관적 산물이 아니며, ‘근대화’는 지구의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근대화가 곧 개인과 사회에 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그러나 사회과학계가 ‘학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매카시즘이 휩쓸던 시기 정부와 협업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사회과학을 연구하면서 사용한 엄격한 ‘객관성’ 수립이 사회전복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과 ‘비애국’이라는 포화와 하원에서 벌어진 반미활동조사위원회와 같은 공산주의자 색출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과 사회과학자들이 냉전의 ‘오른쪽’에 위치했고, 미국의 승리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은 과연 당대 미국의 사회과학이 진정으로 ‘객관성’을 지녔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낳게 만든다. 많은 사회과학자가 미국의 냉전에 기여할 기회를 추구했다는 점, 미국 외교정책의 입안자들이 자신들의 열렬한 청중이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에서 그들이 추구한 ‘객관성’이 참된 의미로써의 ‘객관성’인지 되묻자는 것이다. 또, 사회과학자만이 아니라 정책의 입안자들 역시 자신들이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신념 속에서 비서구의 ‘전통사회’가 자신들의 청사진을 충실히 따른다면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봤다. 입안자들도 포드 재단과 록펠러 재단을 통해 사회과학자를 후원하고, CIA의 지원 아래에 근대화를 장려하여 이들을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이행시키고,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게 할 수 있는지 연구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사회학자들이 만든 ‘근대화론’이란 사회과학은 태생부터 ‘객관적’일 수 없었다. 이러한 ‘객관성’ 속에서 다른 세계에 자신들의 ‘객관성’을 이식하려는 시도는 강압적일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폭력과 전쟁이 수반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박정희 행정부와의 관계였으며, 일본에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회담과 日美안보조약이었으며, 베트남에서는 공산주의 게릴라에 맞서 세운 전략촌이었다. 전략촌은 베트콩에 대비하기 위해 세워진 전진기지였다.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미국이 오히려 전략촌 주민들을 상대로 억압적이고, 감시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그려냈다. ‘자유’의 수호자이자 세계의 ‘경찰’이라 부르는 미국의 ‘근대화’라는 ‘보편성’은 제국주의가 무너져내린 지역과 세계에 ‘제국주의’의 모습을 개조한 억압이자 폭력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미국의 ‘근대화론’에 대한 수사법에서 식민주의적 내용을 담진 않았지만, 유럽 식민제국의 붕괴로 변화된 지역에서의 영향력 행사에 있어서는 놀라울 정도로 유럽의 식민제국과 닮았다. 결국, 근대화론은 제국주의가 가진 과거에 의존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기인한 ‘근대화론’과 미국의 제3세계 정책은 남베트남이 아니라 1953년에는 이란에서, 1954년에서는 과테말라에서, 1958년에는 레바논에서 자신들의 ‘객관성’을 이식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보편성’ 이식을 위해 1980년대부터 커크패트릭과 같은 네오콘들이 때로는 우익독재체제를 지원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남베트남만이 아니라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사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군이 주둔하고,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식하려 했지만, 미군의 철수와 함께 무너진 것을 보면서 말이다. 미국이 내세우는 ‘경찰’의 역할은 때로는 사회를 지탱하고, 치안을 유지하고, 공동체를 보전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경찰력’이라고 하는 힘(力)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봐서 미국을 “세계의 경찰”이라는 묘사하는 표현은 참으로 미국의 지위와 미국이 내세우는 ‘보편성’을 잘 묘사하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

마이클 레이섬
그린비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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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goldstarsky
전공인 언어학을 비롯해 국제관계와 미디어 등의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저작을 다수 남긴 노엄 촘스키 소개서다. 일찍이 <뉴욕타임스>가 “생존 지식인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했고, <시카고트리뷴>은 “생존한 저자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으니 촘스키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게 쓸데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올해로 아흔 하나가 된 촘스키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하나는 언어학으로, 촘스키는 언어를 습득하는 인간의 능력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생득적 요소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이론을 통해 입증하려 했다. 문법론을 중심으로 한 그의 연구는 기존 언어학 방법론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 학계에선 이 같은 현상을 ‘촘스키 혁명’이라고까지 불렀다고 한다. 언어학계의 근간을 흔든 촘스키는 이후에도 자신의 이론을 꾸준히 수정·발전시켜 전무후무한 업적을 쌓아올렸다. 작금의 언어학계가 촘스키의 접근법을 따르는 형식주의자와, 다른 방법론을 모색하는 기능주의자로 갈려 있고, 둘 모두 촘스키의 업적과 공헌을 부인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촘스키는 정치 철학자이자 사회비평가로서도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면 전공을 초월해 의견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데, 미디어를 통해 일회적인 의견을 발표하는 걸 넘어 학술적으로 심도 깊은 논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촘스키의 글은 특유의 통찰력으로 정부와 미디어, 자본주의가 자행해온 기만과 조작을 직관적으로 드러내 엘리트 집단 뿐 아니라 대중에 널리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활동에서 비춰지는 촘스키의 세계관은 미국의 정치상황에 비추어 매우 급진적이어서, 만약 그가 언어학에서 입지전적인 업적을 쌓지 못했다면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기란 어려웠을지 모른단 평가가 많다. 하지만 촘스키는 무너지지 않는 업적을 쌓은 학자이자 남다른 통찰과 직관을 갖춰 대중적인 인기도 높다. 이로써 그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대중지향적인 정치서를 주로 써온 작가 데이비드 콕스웰은 촘스키 소개서라 할 만한 책 <만만한 노엄 촘스키>를 만화 다큐멘터리라 명명한다. 대중에 친숙한 만화라는 형식 위에 다큐멘터리적 기법을 녹여냈다는 뜻이다. 그는 이 책에서 촘스키의 개인적 삶과 언어학계에서 이룩한 업적, 미디어와 정부, 자본주의와 국제문제에 대한 촘스키의 날 선 비판을 두루 다루었다. 촘스키가 일생에 걸쳐 남긴 주요한 주장을 159p의 얇은 책 안에 압축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특별함이 있다. 책은 촘스키의 생애와 경력, 그가 영향을 받은 선배들, 언어학계에서 남긴 업적, 미디어에 대한 비판, 정치관, 시민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저항방식 등을 순차적으로 서술한다. 마지막엔 촘스키와 나눈 인터뷰가 짤막하게 실려 있어 책을 통해 접한 노엄 촘스키가 현재의 문제를 대하는 시각을 접할 수 있다. 미디어와 자유주의체제에 대한 촘스키의 입장을 정리한 부분은 특히 중점을 두고 읽을 만하다. 국내에도 이 분야에 대한 촘스키의 저서가 많이 나와 있지만, <만만한 노엄 촘스키>만큼 쉽고 종합적으로 이를 정리해주는 책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에 대한 촘스키의 입장은 이렇다. 촘스키는 미디어가 민주적이기 위해선 공정하고 온전하며 편견 없이 보도해야 하고 권력의 남용에 맞서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현대의 미디어가 이 모두에서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이유로 미디어가 대중의 알권리에 봉사하기보다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기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꼽는다. 촘스키는 미국의 정치란 단지 국가의 통제권을 두고 경쟁하는 투자자들끼리의 상호작용에 불과하다고 본다. 국가란 하나의 기업과 같으며, 정치는 거대 기업과 이익단체, 엘리트집단이 마치 기업의 주요주주처럼 패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는 장이란 것이다. ‘국가를 소유한 이들이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국가의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대중을 세뇌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를 생산하려 한다. 그 역할을 미디어가 수행한다. 촘스키는 에드워드 S. 허먼과 함께 쓴 <여론조작>에서 대중매체가 대중을 세뇌하는 프로파간다 모형을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가공되지 않은 뉴스 대신 편파적인 정보를 전달해 대중을 저들이 원하는 대로 세뇌시킨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촘스키에 따르면 뉴스는 크게 다섯 개의 필터를 거쳐 가공된 정보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는 다음과 같다. 하나. 미디어는 소수 거대 기업의 손에 들어가 있거나 그에 장악돼 있으며 다른 모든 기업과 마찬가지로 이윤을 얻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 둘. 광고를 수입의 주요원천으로 삼고 있는 상황. 셋. 정부·기업·전문가 집단에 대한 의존성. 넷. 정부와 기업으로부터의 압력. 다섯. 국가의 종교이자 통제수단으로 작용하는 이데올로기. 책은 촘스키가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여러 사례를 들어 이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수도 없는 언론과 기업의 유착사례, 특히 전국적 방송과 신문 나아가 공영방송까지 장악한 기업의 모습은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일례로 책은 공영TV인 WNET이 다국적 기업들이 제3세계에서 저지른 불법행위를 보도한 다큐멘터리를 내보낸 이후 벌어진 과정에 대해 서술한다. WNET 간부가 ‘소독’까지 해서 내보냈다는 이 다큐가 방연된 뒤 대기업 걸프 앤드 웨스턴(Gulf and Western)이 즉각 불쾌감을 드러내고 방송국에 재정지원을 중단한 것이다. 촘스키는 이런 사례를 통해 기업이 미디어의 보스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힌다. 17년 전 촘스키가 미국사회에서의 미디어를 분석한 이 내용은 오늘날 한국 언론의 현실과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삼성그룹의 비리를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임의로 기사를 삭제해 촉발된 일명 ‘시사저널 사태’나 삼성이 한겨레 신문에 광고를 게재하는 조건으로 삼성을 비판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미디어오늘의 지난 1월 보도, 한국언론의 민낯을 까발린 ‘장충기 문자 청탁사건’, 최근 뉴스타파가 보도한 조선일보와 기업 간의 기사거래 사태 등 이를 입증하는 증거가 수도 없다. 촘스키는 미디어가 이 같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시민에게 몇까지 환각을 판다고 주장한다. 첫째, 이 나라가 소수의 부자들에 의해 소유·운영·통제되지 않는다는 것. 둘째, 미디어 역시 소유·운영·통제되지 않는다는 것. 셋째, 여론은 자유롭게 형성되며 강요되거나 속임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서구 민주주의가 여전히 왕족과 소작농,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있으며 주류 미디어는 이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게 촘스키가 미디어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책은 나아가 자유시장체제에 대한 촘스키의 생각도 적고 있다. 그는 자유시장체제는 거대한 사기극이며 미국의 경제는 조작되었다고 주장해 왔는데, 책은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미국에서 ‘자유시장체제’는 신성한 원리로 취급된다. 모든 경제문제들은 ‘자유시장’의 원리에 의해 치유가 될 것이라 떠벌려진다. 경쟁을 통해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최고의 상품을 최적의 가격에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된다. 자유시장은 항상 최고의 선택을 내리기 마련이고 가장 완벽한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체제가 어떻게 기능을 하는지, 누가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보조금의 혜택을 누가 가장 많이 누리고 누가 가장 적게 누리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유시장체제란 한낱 이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것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118p 책은 촘스키가 언급한 수많은 사례, 이를테면 항공기제조사나 컴퓨터제조사가 정부의 전적인 지원을 받아 육성되고 운영된 사실을 언급한다. 촘스키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 정부지원의 혜택을 크게 보았던 보잉사와 크레이사가 자유시장체제의 성공모델로 홍보된 아이러니함을 지적하는데, 정부의 통 큰 지원을 받은 이들 회사의 성공이 공적자금을 부자들을 위한 복지사업에 투입한 결과라는 것이다. 책은 이밖에 석유기업과 자동차 제조사, 타이어 제조사 등이 합작법인을 설립해 전차기업의 주식을 매수하고 45개 이상의 도시에서 전차와 선로를 해체한 사례 등을 통해 자유시장체제의 실패를 전면에 까발린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정부 보조금’ …? 이 단어들이 정확하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하다. 정말 단순하다. 거대 기업의 이름에 붙어 있는 ‘보조금’이란 단어는 부자들에 대한 복지사업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122p 책은 이밖에도 ‘민주주의의 확장’과 ‘세계질서의 확립’이란 이름 아래 미국이 새로운 식민주의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촘스키의 주장을 소개한다. 중동·아시아·중미·남미 등을 무대로 여전히 엿볼 수 있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촘스키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소수 부자와 엘리트 집단에 의해 장악된 현실 세계에서 시민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저항이란 과연 무엇일까. 촘스키의 답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만만한 노엄 촘스키>를 집어들 일이다.
만만한 노엄 촘스키

만만한 노엄 촘스키

데이비드 콕스웰
서해문집
2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