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오랜만에 짧은 책 읽어야지 하고 무심코 집어든 책.

생각없이 읽으면 잘 읽히면서도 괜히 의미를 찾고 있는 나. 뭔가 난해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판타지 동화를 어른 버전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친구가 최근에 읽었다기에 나도 한 번 읽어본 책.
최근에 읽었던 소설 고래 이후로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어린아이 진희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진희는 스물한 살 이모보다도 성숙한 사고를 갖추고 있다.
"나는 삶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 살에 성장을 멈췄다"고 진희는 말한다.
진희의 할머니집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건사고들이 진희의 평가와 곁들어 묘사되는게 그렇게 흥미로울 수 없다.
사람이 성숙해질 수는 있지만 크게 변화하지는 않는다는 말 역시 공감이 갔다.
확실히 스무살때의 나와 비교해 이십대 후반인 나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나의 성향과 결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중간중간 어떻게 이런 문장을 생각할 수 있지 싶은 게 많아 책을 읽다 메모장을 펴기를 반복했다.

나의 유년시절도 생각이 참 많았었고 지금도 잡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진희가 더욱 공감이 갔다.

요즘 삶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여서 만나는 사람마다 삶의 의미 내지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데, 대부분 행복이라고 답해주거나 아니면 자기는 살면서 소소하게 기쁨을 느끼는 게 좋다 혹은 살아있으니까 사는거다 등의 대답을 친절히 해준다.
여기서 인상깊은 문구를 적어봐야겠다.
"삶도 그런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p.403"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아서 미소를 지었다.

진희는 자주 어떤 사건에 대해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켜 생각하는데, 꽤 재미있다.
기쁨을 느낄 때에도 그렇게 기쁨을 느끼지않고 그렇다고 아주 슬퍼하지도 않는 태도를 보인다.
최근에 알게 된 어떤 할아버지의 말씀 중 인생은 제로섬(zero-sum)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원래 기쁜 일은 아주 만끽하고 슬플 땐 엉엉 우는 사람이었는데, 한 해가 갈수록 격정적인 감정이 많이 차분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내가 꽤 마음에 든다.
최근에 차분하다 못해 회의주의적으로 변해 무엇을 하든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를 반복하며 우울감에 자주 빠지곤했다. 이젠 우울감에 자주 빠지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을 알았다. 한 친구는 사는 이유를 찾기 위해 사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것도 멋진 말이다.
하지만 일단 심장이 뛰고 호흡을 하며 살아있기에, 이왕 사는 거 안정적인 기분을 유지하며 삶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두고두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우리 엄마에게도 선물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