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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마틴 베일리 지음
허밍버드 펴냄
일단 이리로 오면, 나처럼 미스트랄의 저주가 불어오는 사이사이에 가을의 정취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게 될 거야. 그러고 나면 어째서 내가 이곳에 오라고 강하게 말했는지 알게 될 테지. (고갱에게, p.119)
영혼의 화가, 반고흐. 척박한 삶을 살았으며, 자신이 가진 재능을 (적어도 그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슬픈 천재. 그의 그림도 우리에게 '감동'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알 수 없는 깊이를 선물하지만, 그의 삶에서도 우리가 느끼는 것이 많다. 그런데 만약, 그의 동생 테오가 그의 편지를 남겨두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에 대한 감정적 배경이 전혀 없더라도 그의 세상이, 그의 작품이 이만큼의 깊이로 다가왔을까. 그가 남긴 “밀은 오래된 금화, 구리 동전, 금색이 섞인 녹색, 아니 금색이 섞인 붉은 색, 금색이 섞인 노란색, 구리색이 섞인 노란색, 초록색이 섞인 붉은색 등 온갖 색조를 지니고 있지. (베르나르에게, p.82)”라는 그의 눈을 엿보지 않았더라도 밀밭이 그토록 신비로울까.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이가 그림만큼이나 진실하게 적어 내린 편지, 죽음에 당도해서도 놓지 않았던 편지로 그의 그림을, 그의 눈을 조금 더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예술에 무지하지만 탐미하기에 꽤 많은 '반고흐'를 읽었으면서도, 이 책에서 또 뭉클함과 아름다움과 안타까움 등 한 단어로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에는 그의 그린 그림들과 그가 남긴 편지들을 너무 멋진 순서로 엮어냈다. 고흐, 전문가로 불리는 작가의 이름값을 톡톡히 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허밍버드 출판사의 '일러스트 레터 1권'인 이 책은 이어질 시리즈의 기대감을 최상으로 높여둘 만큼 구성도, 내용도, 질감도 완벽하다. 심지어 다음 시리즈가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라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 고흐의 작품은 '별이 빛나는 밤'인데, 이 작품은 생레미정신병원에서 '자신이 보았던 하늘을 상상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 시기에 쓰인 편지들을 읽고 다시 이 작품을 바라보면 코가 시큰해진다. 테오에게 보낸 “밖에서보다 여기에서 작업을 하면서 더 행복하단다. 여기에서 오랜 시간을 잘 지내면서, 나는 장기적으로 규칙적인 습관을 들이게 될 거고, 그 결과 내 생활이 더욱 질서 정연해지고, 예민함이 보다 누그러지리라고 여긴다. 그렇게 된다면 무척이나 좋은 일이지. 게다가 다시 밖에서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는단다. (p.183)”라는 말에서 그가 진짜 그곳이 좋다는 느낌보다 테오에 대한 미안함으로 거기 머물러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는 건 나의 지나친 억측일까.
그의 그림 중 '꽃피는 아몬드나무'가 가장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랑하는 테오가 아빠가 되었음에 기뻐하던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리라. 고갱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린 해바라기는 그의 마음을 담은 듯 간절하다. 그의 작품은 편지와 더불어 읽을 때 가장 좋다고 생각해본다. 일기처럼 적어 내린 글 사이에서 그의 감정과 상황을 가만히 유추해본다. 어떤 편지에 이런 답장을 썼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는 사이 그는 어느새 살아 숨 쉬는 사람처럼 친밀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나같이 어리석은 이에게도 고흐를 생생하게 느끼게 만드는 이 책이, 반 고흐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그를 더 사랑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반 고흐를 잘 모르는 이에게도 그의 섬세한 감정을 알게 하는 기회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가을은 책 읽는 계절이라 했던가. 가을을 닮아 쓸쓸하고 아름다운 고흐의 편지와 그림으로, 당신의 가을에 고흐를 초대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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