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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김대식 지음
문학동네 펴냄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가진 저자의 식견이 영감을 주는 책

같은 드레스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 신기한 게 아니라, 서로 다르게 보는 세상을 같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신기할 뿐이다.

점수가 잘 나올 때의 즐거움, 명품 백을 살 때의 기쁨, 대기업에 입사할 때의 자부심 이것들은 ‘행복한 순간들’이지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순간의 행복은 영원할 수 없기에 다시 사라진다. 그렇다면 사라지지 않는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나 자신과의 끝없는 대화에서만 얻을 수 있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너그러움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나 어떻게 사는 게 착하고 바른 삶인지 가르쳐주고 조언해주고 명령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항상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기에 우리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선택할 기회가 없다.
왜 하는지도 모르는 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 일을 묵묵히 참아내고, 게다가 그 일을 웬만큼 해낼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진정한 비극인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에 남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불안해진다. 남이 가진 것은 나도 가져야 하고,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남도 가져서는 안 된다.

나는 내 기억의 합집합이다. 어제저녁의 나를 기억하기에 오늘 아침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 인물이란 걸 인식한다.
어쩌면 우리 몸속 세포들처럼 나라는 존재 역시 매일 조금씩 만들어지고 변하고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오늘 아침에 깨어난 나는 어제 잠든 나와는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아침 새로운 나와 새롭게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머지않은 미래에 인깐의 기억 역시 지우고 교정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예쁜 생각만 남겨두세요!”하며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아픈 기억은 모조리 지워주겠다는 ‘생각수술 병원으로 가득차지 않을까 걱정해본다.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해진다. 나쁜 기억을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나쁜 마음은 없애고 좋은 마음만 남기는 것도 가능할까? 다시 말해 악이 사라지고 선으로만 가득한 사회도 가능할까?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미래의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나’라고 상상해보자. 미래의 내가 과거를 떠올릴 때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다면 집중과 몰입을 하자. 반대로 지금 이 순간이 평생 나에게 괴로운 기억과 아픔을 줄 것 같다면 최대한 집중을 하지 말아보자. 아무리 세상이 갑이고 인간은 을이라지만, 집중과 선택을 통해 우리는 적어도 기억에 남는 우리의 인생을 편집할 수 있다.

외국어로 들을 땐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희생해도 된다는 조금 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만, 모국어로는 개인을 절대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감정적’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아진다. 결국 인간에게 도덕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 언어, 상태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 판단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도덕성이 높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덕적 판단을 최대화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와 언어가 필수적이다.

‘단 하나의 무언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의 역사적 공통점은, 그 시스템을 가장 잘 이해하는 1퍼센트만을 위한 계급 사회로 변질시킨다는 점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비결은 바로 픽션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었다. 전설과 신화는 사람들을 응집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자 도구여다. 더 빠르고 더 큰 것만을 여전히 최고로 생각하는 국내 기업들과 새로운 전설과 스토리를 만들어낼 줄 아는 미국 기업들, 이제 우리도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싸움을 기억해야 한다. 기능과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 더 정확히 말해 스토리를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이다.
2022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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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인내심 덕분에 내 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중략)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늘 그런 것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함께 웃고 즐거워하고 따뜻함을 나누는 시간을 그대로 누리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던 것 말이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있었으니까. 아무리 불안에 떤다고 해도, 좋은 순간을 그대로 누리지 않으려해도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으니까.

밝은 밤

최은영 (지은이) 지음
문학동네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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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은이)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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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maeehfz

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는 것

관대한 마음으로 그릇을 키우자
부유한 마음을 가져야 부자가 된다
남에게 박수쳐주기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어야 한다
-> 지금 매일 오는 이 장소를 가고 싶은 장소로 만들기
외부를 바꾸는게 아니라 마음을 바꿔라
'벽돌 쌓는 게 아니라 성당을 짓는다'

죽음에 가서 후회가 없기 위해서는, 직관을 갖고 살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나로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우리는 왜 나로 살지 못할까? 직관이 없어서 그렇다. 있어도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를 믿지 못하니 남들에게 의지하고 남들이 말하는 개념대로 살아간다.
당신은 이 세상을 직접 관찰하고 판단하고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믿고 어떤 일을 스스로 시작할 수 있는가? 우린 어린 시절 직관이 생기기 전부터 교육을 받기 때문에 개념 속에서 삶을 시작한다. 문제는 죽기 전까지 이렇게 산다는 점이다. 죽음 앞에 가면 반드시 알게 된다. 내가 나로 살지 못했단 사실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 자신의 판단하에 내가 원하는 곳에서 즐겁게 돈을 벌고 있는가? 개념 속에 산다는 건 남들에게 끌려다니며 사는 것이다. 자유롭지 않다. 진짜 나는 어떤 직관을 가지고 있는가? 계속 질문하라.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다른 사람 눈치 보고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살았을까?"
니체의 '아모르 파티'를 철저히 고수하는 것. "미래에도, 과거에도, 영원히, 필연적인 일을 단지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죽음을 매일 생각하는 삶이 사랑하는 삶이다.
'세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칼 융 "진리에 이르는 길은 의도를 갖지 않은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
의도는 전략이고, 몰입은 전술이다. 돈을 벌겠다는 의도는 얼마든지 가져라. 대신 일에 들어가면 집중하고 몰입해서 즐겨라.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고명환 지음
라곰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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