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 팔로우
위대한 생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의 표지 이미지

위대한 생존

레이첼 서스만 지음
윌북 펴냄

프로젝트의 목적 자체보다 주변 일들에서 심오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2008년에 그린란드에서 고고학자 마틴 아펠트의 연구팀과 함께 낚시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배가 고팠고 고기를 낚아 저녁으로 먹을 참이었다. 바다에는 커다란 송어가 가득해서 인간이 퍼지기 전 지구의 모습을 보는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물을 던졌더니 곧바로 두 마리가 잡혔다. 고고학자들은 한술 더 떠서 맨손으로 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아펠트는 단번에 송어 한 마리를 바위 쪽으로 몰아 건져 올렸다. 그리고 나를 부르더니 물고기를 먹으려면 그것을 죽일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는 먹거리에 대한 내 원칙을 시험하는 말이었다. 나는 10대부터 20대까지 엄격한 채식주의자였지만 몸이 안 좋아진 이후 해산물을 먹게 됐다. 내 손으로 죽일 수 없는 (그리고 죽이지 않을) 것은 먹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했는데 물고기는 죽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런가? 아니면 그렇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는가? 이를 시험할 상황이 온 것이다. 나는 돌로 송어 대가리를 서툴게 두 번 가격했다. 그리고 아펠트가 마무리를 했다.

머리로만 믿던 신념을 실제로 시험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은 선물과도 같은 일이다. 그런 경험을 겪는 곳이 낯선 곳일 수는 있지만, 이후 그 경험은 계속해서 나와 함께하게 된다.

-29p
2023년 11월 20일
0

김성호님의 다른 게시물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소비가 오로지 소비에서 끝나지 않는단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더 많은 소비를 위하여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더 많은 생산에서 끝나지 않고 더 많이 폐기해야 한다. 그리하여 합리적 소비를 막기 위한 온갖 술수가 동원된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 경제규모의 확장이 인류를 구원하리란 믿음이 곳곳에서 깨져나간다. 자본주의의 실패 또한 수습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에너지 수급과 쓰레기 처리,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문제를 인류는 감당치 못하고 있다. 문학이 자리를 틀고 앉아 매일 하던 이야기만 반복한대서야 세상과 유리된 오락과 구분할 수 없는 일이다. 문학이 인간의 사상과 예술, 지성의 정수로써 작가와 독자를 잇는 창이라면, 이런 작품이야말로 기꺼이 제 역할을 모색하는 책이라 할 것이다.

실린 작품의 착상이며 구성, 완성도에 일부 아쉬움이 있지만, 적어도 근래 한국 문학 가운데 흔치 않은 시도란 건 분명하다.

최소한의 나

이준희 외 6명 지음
득수 펴냄

3주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예술을 아끼는 이들이 파리를 가면 반드시 찾는 곳이 있다. 바로 카페. 레 뒤 마고, 카페 드 플로르, 르 프로코프, 르 돔, 본 프랑케트, 르 타부 같은 곳들. 그저 카페인 것 만이 아니다. 가게마다 유명한 작가들, 이를테면 샤르트르와 보부아르, 카뮈, 콕토, 랭보, 헤밍웨이, 카파와 브레송,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같은 이들과 얽힌 사연이 한가득이다. 이곳을 찾는 건 예술과 역사, 낭만과 아름다움을 만나는 일이다.

책은 한반도, 특히 모던 열풍이 일던 1920년대 이후 십수년 간 이 땅에서도 명사들이 카페를 찾아 교유하고 작품을 빚던 시기가 있었단 걸 알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굴곡진 역사는 저기 파리처럼 우리의 공간을 지켜내지 못했고, 그나마 남은 건물들마저 지켜내지 못했음을 일깨운다. 그마저도 이를 기억하는 이가 없다. 이 얼마나 빡치고 쪽팔린 일인가 말이다.

개화기 한국 커피역사 이야기

김시현, 윤여태 (지은이) 지음
피아리스 펴냄

3주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룬 24편의 글이 그가 발표한 소설과 시, 극본에 깔린 저자의 인간관이며 세계관을 알기 쉽게 드러낸다.

온갖 압제와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육체와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실현해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이 비교적 깔끔한 구성 아래 들어찬 게 특징적이다. 날카로운 시각과 흥미로운 사유 사이로, 마광수의 저술에 기대하게 되는 것, 즉 과격하여 무리하게 느껴지는 논리 전개를 마주하는 재미 또한 상당하다.

물론 공감하는 대목보단 반박하고 싶어지는 부분이 훨씬 많은 책이다. 그것이 그대로 마광수를 읽는 즐거움이란 걸 그의 애독자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남이 듣기 좋은 글만 쓰는 것이 미덕이고 더 나은 작가인양 추켜세워지는 세태 가운데서, 웬만한 비판쯤엔 즐기듯 부딪치는 그의 글이 매력을 뿜어낸다.

책 가운데 여러 면모를 가만히 들여다보자니 조금의 불편에도 한없이 민감한 오늘의 독자에게 이곳이 어떻고 저곳이 저렇다며 뜯기고 씹힐 구석이 수두룩한 걸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오늘의 작가는 더 자극적이고 파격적이며 거침없는 생각을 활자로 적지 못하게 된 건 아닌가, 그런 생각에 이르고 만다. 그렇다면 그건 과연 발전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류는 진보하지 않는다는 마광수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인간론

마광수 (지은이) 지음
책마루 펴냄

3주 전
0

김성호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