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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문학동네 펴냄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곳에도 사회가 있다. 빌레트도 그렇다. 의사와 간호사, 미친 사람들이 있는 빌레트에서 베로니카는 생의 마지막 며칠을 보내게 된다. 어찌어찌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낼 밖에 없다. 남에게 관심이 많은 이들, 다짜고짜 무시하고 비웃는 사람들, 남들의 시선엔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이들, 아무리 노력해도 남에게 저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미친 사람들이 병원 가득 흩어져 있다. 그중 누군가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또 누군가는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모두가 그녀가 그들 안에 새로이 들어왔음을 안다.

소설은 모두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결말에 이르며 끝을 맺는다. 죽음을 인식하며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서로가 다르기에 비로소 같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인간이란 결국 하고픈 걸 해야만 하고, 그 용감한 선택들이 다른 삶을 가져온다는 것을 파울로 코엘료 특유의 낭만적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설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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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냉전과 그 대결이 우주탐사 경쟁으로 이어질 것임을 일찌감치 예견했고, 외계종족과 인간의 첫 조우로부터 이어질 수 있는 위기의 가능성을 색다르게 묘사했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로, 또 깊이 있는 주제의식으로 많은 작품에 변주되었다. 무엇보다 인간이란 존재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소설의 첫머리, 한 천재적 인간이 백만의 다른 평범한 이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인식, 또 여기 적을 수 없는 소설의 결말은 꽤나 흥미로운 질문으로 이어질 밖에 없다. 문명의 진보와 종의 존속, 개체의 평안 사이에서 인간이 진정으로 지향할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그저 개인의 삶 너머의 것을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 현대의 인간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 분명하다.

유년기의 끝

아서 C. 클라크 지음
시공사 펴냄

1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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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힘겨운 순간을 지낸 뒤 마음에 남았던 한 가지는, 충실히 대하지 못하고 지나친 감사의 순간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소한 소음처럼 지나보냈던 그 귀한 마음이 위기의 때마다 다가와 저를 일으키는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제 때에 제대로 된 감사를 했어야만 했다는 깊은 인식에 가닿는 그 마음이 장하게까지 읽힌다. 정말이지 사소하게만 느껴지는 무엇들이 실은 더없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살고 싶다는 농담>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인간은 어떤 순간에도 생을 이어가고자 한다는 걸 알게 만든다는 점이다. 고통스러워 포기하고픈 순간에도 생은 살아있음 그 자체를 지켜내려고 발버둥친다. 때로는 그와 같은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고 사소한 사건들에 마땅한 답을 내어놓는 일, 그것이 인간이 인간을 지켜내는 방법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책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막막한 두려움 앞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던 한 인간의 여러 순간을 진솔하게 그린다. 비록 스물다섯 편의 글이 하나의 주제로 꿰어지지 않고, 중반부 이후부턴 여기저기 쓰인 글을 억지로 끌어다 묶어낸 것처럼 느껴지지만, 몇 편의 글에서 묻어나는 진솔함만큼은 적잖은 독자를 움직여 내리라고 나는 그렇게 여긴다.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지은이)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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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몇 개의 차이만으로 <애린 왕자>의 독자는 <어린 왕자>와는 전혀 다른 감흥을 받는다. 심지어는 주인공과 그가 만난 어린 왕자의 성격이며 분위기, 인상까지가 전혀 다르게 그려지는 것이다. 이를 보다보면 아마도 프랑스와 한국, 미국과 일본, 독일과 체코에서 소설 속 인물을 전혀 다른 성격으로 상상할 수 있겠구나, 아마도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언어란 그만큼 힘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애린 왕자>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같은 작품임에도 전혀 다른 감상을 느끼게 하고, 나아가 언어가 가진 힘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읽기 전엔 다다르지 못했던 감상을 겪는다는 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는 뜻이니, 이 짧은 소설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그저 생텍쥐페리가 의도한 것 그 이상이라 해도 좋겠다.

애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은이), 최현애 (옮긴이) 지음
이팝 펴냄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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