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 팔로우
왜 도덕인가의 표지 이미지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한국경제신문 펴냄

대중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샌델의 칼럼들을 난해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 쏟아진 악평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더욱이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가 페이스북에 '<왜 도덕인가?>는 샌델의 <공공철학>을 번역한 것이며, 임의로 내용을 짜깁기해 글 제목과 본문이 많이 왜곡돼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책을 출판한 한경BP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책이 샌델의 예전 칼럼을 모아놓은 것으로 일관된 주제를 벗어나는 글을 빼도 되는지에 대해 저작권자와 하버드대학교 출판부에 모두 확인했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왜 도덕인가?>가 가진 가장 큰 의의는 저자 마이클 샌델 본인의 생각이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는 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가장 크게 성공했음에도 저자의 지향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을 떠올리면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전작에서 암시만 됐던 가치 판단이 이 책에선 전면에 부각되기 때문이다.

다루고 있는 주제 역시 의미가 있다.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러했듯 많은 딜레마적 상황을 예로 들며 현대 철학이 다루는 가장 인기 있는 주제, 즉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을 도마 위에 꺼내 놓는다. 저자는 두 이념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공존하고 발전하기 위한 방법까지 제시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책의 제목이 가리키듯 '도덕'이다.

언제나처럼 샌델은 그의 주장 주변에 충실한 사례를 배치한다. 이번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벌인 오랜 정치투쟁과 그 과정에서 도덕이 쓰인 역할이 그것이다. 샌델은 공화당이 도덕적 담론을 선점함으로써 수십 년간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며 민주당이 빌 클린턴 대에 이르러서야 반격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 과거 정치에서 도덕이 발휘한 힘을 역설하고 다가올 세상에서 도덕이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을 강변하는데 이는 곧 이 책의 주제와 맞닿는다.

논의의 끝에서 그가 가닿는 결론은 공동체의 도덕이다. 보다 정확히는 공동체에 대한 도덕의 개입이다. 다원주의적 중립이란 이름으로 도덕이 실종된 사회에서 다시 도덕의 역할을 논하는 게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인 것이다.

샌델이 보기에 국가의 도덕적 중립이란 원칙 아래 돌아가고 있는 현재의 세계는 그리 오랜 전통을 갖고 있지 않다. 기껏해야 지난 반세기 동안 발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샌델은 공공선에 대해 숙고할 줄 아는 사람들의 사회를 그린다. 그리고 이 같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타인에게도 자유가 있다는 사실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소속감과 책임감, 공공의 유대가 그것들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익히 소개된 공리주의와 존 롤스의 이론은 이 책에서도 차례로 소개되며 저자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각 이론이 지닌 가치와 한계가 언급되는데 책을 읽다 보면 그것들이 샌델의 철학에 상당한 자양분이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존 롤스의 차등원칙이 샌델이 생각하는 도덕의 근간을 이룬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폭주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와 그 밑바탕이 되고 있는 도덕적 중립성은 더는 지속돼선 안 된다는 게 이 책에서 보인 샌델의 결론이다. 사회 구성원들은 어차피 도덕적 문제에 대한 기본적 욕구를 갖고 있으며 이왕이면 이 욕구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현시키는 것이 공동체에 있어서도 긍정적이라는 게 책의 결말이다. 바람직한 방향이란 곧 너와 내가 남이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2024년 3월 4일
0

김성호님의 다른 게시물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학술연구에서 독립변인 외의 요건을 통제하여 무엇이 둘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입증하려는 시도처럼 남자로 인해 극명하게 갈리는 여자의 삶을 안진진의 시각에서 되살려 독자 앞에 펼쳐놓는다. 흔히 말해지는 속담 '여자팔자는 뒤웅박'이란 이야기가 어쩌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가 아닌가 싶어질 정도.

20년이 넘도록 젊은 여성들에게 변함없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소설이 가진 명백한 한계, 이를테면 구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안진진이 제게 다가오는 두 남자 외 다른 이와 관계 맺을 생각은 못한다거나, 후반부에 잇달아 벌어지는 결정적 사건들의 개연성 부족, 나아가 그 결말이 이렇다 할 의미를 창출해낼 정도엔 이르지 못한다는 등의 문제가 뚜렷함에도 긍정적 반응이 재생산되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

그럼에도 가치가 있다면 엄존하는 현실과 그에 반하고픈 욕구 사이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고뇌를 자연스레 내보이는 게 아닐런지.

모순

양귀자 지음
쓰다 펴냄

12시간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한강은 이 소설을 쓴 뒤 가진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것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설 가운데 아름다움을 찾아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더 고통과 분노와 절망 따위가 흩뿌려져 있는 듯하다. 마치 더욱 참혹한 고통을 다룬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써낸 뒤 그것이 사랑이야기라고 주장했던 것만큼이나 당혹스럽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위에 발췌한 짤막한 구절에서 엿보이듯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 또 우정과 사랑에 대한 흔적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너무 흔한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이러한 요소들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기도 한다. 마치 발가벗겨져 쫓겨난 뒤에야 옷과 집, 부모가 준 애정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여수의 사랑>은 그래서 아름다움이며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를 일이다.

여수의 사랑

한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일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자본주의에 잠식된, 아니 결탁했단 표현이 보다 어울리는 미술계를 담당하는 기자다. 한때는 호흡이 긴 지면 기자로 일했으나 <TV조선> 이직 후엔 1분40초 내외의 방송리포트로 미술 행사를 꾸려나간다.

박소영이 작품을 대하는 틀은 대체로 생태와 동물권에 깊이 엮여 있다. 다른 생명을 착취하지 않고 자연을 해하지 않는 것이 이 시대 지구와 인류에 가장 주요한 덕목이라 여기기 때문일 테다. 작금의 기후위기를 비롯해 지속가능한 소비를 유지하는 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미술과 이와 같은 기준을 엮는 데 고개가 끄덕여지긴 한다.

다만 그리 길지 않은 책 가운데서도 독자적 통찰이 얼마 보이지 않고 대동소이한 잣대만 거듭 들이대는 게 아쉽다. 생태와 동물권에 대한 잣대가 작품을 평가하는 우선적이자 거의 유일해보이는 기준이 아닌가. 그 시대적 유효성에도 불구하고 저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이라면 그 이상을 내놓아야만 한다고 나는 믿고 있는 것이다.

박소영의 해방

박소영 지음
편않 펴냄

2일 전
0

김성호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