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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지음
해냄 펴냄

결말은 전개에 비해 몹시 평이하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홀로 먼저 바로서야 건강한 관계에 이를 수 있다는 흔하고 오래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소설의 방점이 결말이 아닌 문제제기, 즉 결혼제도와 여성에 대한 부당한 억압, 그를 보여주는 수많은 사건의 나열에 찍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몇 년 전 흥행한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63년생 버전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이 소설의 가치에 대해 93년 당시 발문을 쓴 여성학자 유현미씨는 '역사는 뺏고 뺏기는 힘의 대결로 움직여 왔고, 그렇기 때문에 처절함과 피눈물을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며 '(이 소설이) 모든 것들의 차이를 구별하고, 지적하고, 폭로하는 외침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이야말로 소설의 가치와 한계를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소설이 시대를 넘어 유의미한 가치를 제대로 던지지 못한 채 1993년 언저리에 고립되고 만 이유는 단지 한 쪽의 억울함만 폭로하고 상대가 겪는 고통은 외면했기 때문이 아닌가.

따라서 오늘날 새 시대를 만들어갈 작가는 망실될 운명이 분명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시간의 엄혹한 심판을 넘어 살아남을 소설을 쓰기 위해선 상대를 취사선택하고 일방의 억울함만 호소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걸, 구별과 지적과 폭로를 넘어 공정한 화합과 비판이 있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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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를 사냥해 가죽을 벗기고 그를 옮겨다 팔아 돈을 버는 일련의 과정은 독자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다. 미지의 땅에서 억센 육체를 가진 생물을 잡아내는 사냥을 기대한 이는 처음엔 실망했다 나중엔 충격을 받고 종국엔 앤드루스가 그러했듯 적응하게 된다.

그저 어느 작은 사냥대가 대박을 치는 이야기쯤에 머물지 않는다. 들판을 가득 메운 소떼가 어떻게 줄어갔는지를, 소떼가 사라진 뒤의 파국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끔 한다. 황무지로 나아가 고생하며 들소를 쏘고 가죽을 벗기는 이보다도 도시에 앉아 그 가죽을 사는 이들이 더욱 부유해지고, 그렇게 창출된 부가 커지면 커질수록 들판은 휑하니 비어가는 모습을 소설은 짐작토록 한다.

가죽이 벗겨진 채 들판에 버려져 썩어가는 수천 마리 들소의 몸뚱아리를 떠올린다. 인간이 스스로의 욕망을 실현할 때 세상은 어찌될 수 있는가를 이 광경이 보여준다. 나는 <부처스 크로싱>을 자본주의에 대한 우화라고 여긴다.

부처스 크로싱

존 윌리엄스 지음
구픽 펴냄

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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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소설이 눈에 띄는 사건을 다루어야 한다고 여긴다. 클레어 키건이 이 소설에서 맞서는 게 바로 이와 같은 고정관념이다. 대단한 사건 하나 없는 며칠의 일상이 어쩌면 삶 전체를 바꾸는 소중한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으로 증명한다.

숙고 끝에 눌러쓴 듯한 문장으로 삶 가운데 흔치 않은 순간을 포착해 그려낸다. 눌려 있던 감정이 둑을 넘쳐 흐르고 가물었던 대지가 마땅한 은총을 받는 순간을 어떠한 신성도 없는 기적처럼 묘사한다.

넘지 못할 것처럼 보이던 선이 깨어지고 피어나지 않을 듯 했던 꽃이 피어나는 순간, 그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말하자면 <맡겨진 소녀>는 들꽃 한 송이 안에 깃든 기적을 내보인다. 그로써 들판에 널린 꽃을, 들판을, 온 세상을 다시 보도록 한다. 문학이 이룰 수 있는 아름다움이란 또한 이런 것이 아닌가.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다산책방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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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tarsky

가축과 인간의 관계를 일깨우는 한편,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인간을 거세게 질타한다. 인간의 손에서 목적에 맞게 진화해온 가축은 더는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인간이 젖을 짜주어야만 하고, 생후 몇 주 정도는 사람의 손을 타야만 건강하게 자란다. 새끼를 낳을 때도 수의사가 산도에 손을 넣고 꺼내줘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도망치니 가축들은 고통 속에 울부짖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가축들을 안락사하라고 말한다. 쓰임이 없으니 살아 있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풀려나 야생화 된 소떼를 잡아 죽이는데 필요 이상의 노력이 드는 데도 그렇다. 그 모든 결정은 직접 가축을 잡아 죽여야 하는 이들이 아닌, 경계구역 근처도 오지 않는 이들에게서 내려진다. 수많은 생명이 그렇게 죽어나간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의사며 활동가들은 악착같은 노력으로 후쿠시마의 가축들에게 쓰임이 남았음을 찾아낸다. 하나는 소들이 풀을 뜯어 후쿠시마의 들판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벌판으로 바뀌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폭 영향에 대한 살아 있는 연구자료로 쓰임이 있다는 것이다. 쓰임이 있는 한 이 동물들에겐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이들은 정부를 설득하려 든다.

한편으로 책은 도쿄전력 본사에 차량을 몰고 가서 시위를 하는 한 축산업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사고 직후 후쿠시마를 가장 먼저 빠져나가려 했던 도쿄전력 관계자들의 모습도 빼놓지 않고 다룬다. 후쿠시마에 위치한 원전 관리주체가 도쿄전력이라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다. 원전이 멈춘 이후에도 전력대란이 일어나지 않은 일본의 모습은 시사점이 크다. 낙후된 지역에 위치한 원전에서 전력을 끌어다가 대도시에다 대고 있는 오늘 한국의 방식이 일본의 그것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생각해보자면, 이들 책이 적고 있는 재난이 비단 일본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소와 흙

신나미 쿄스케 (지은이), 우상규 (옮긴이) 지음
글항아리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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