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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열린책들 펴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은 건, 약 20여년 전... <향수>를 통해서였다. 무척 흡인력 강하고 아주 강렬한, 부제가 "어느 살인자의 고백"인 소설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찾아보다가 영화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영화까지 접수, 책보다 영화가 더 좋았던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를 인식하게 된 건, <좀머씨 이야기>를 통해서다. <향수>와는 너무나 다른 결의 소설로, 제 2차 세계 대전의 후유증을 앓는 좀머씨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말 너무, 진짜 너무 좋았다. 그 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을 하나 둘 사모았던 것 같다. 언제나처럼 읽지는 않고...ㅋㅋ



진짜 오랜만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을 읽는다. 보통 문어발식 독서 중이라 집이나 교습소에는 두꺼운 책을, 가방 안에는 얇은 책을 넣어두는데 이번에 담긴 책이 <콘트라베이스>. 도통 시간이 나지 않아 가방 속에 묵힌 채로 약 세 달. 그래도 신기하게 내용이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읽을 수 있었다.



<콘트라베이스>는 그동안의 작가의 책과는 또다른 책이다. 읽을 때마다 정말 놀랍다. 우선 희곡으로 연극을 상연하기 위해 씌여진 글이라는 사실. 게다가 이 작품은 모노드라마다. 따라서 책 속 주인공, 콘트라베이스의 연주자인 '나'는 독자들(관객들)을 상대로 말을 한다. 희곡 형식이지만 모노드라마이기 때문에 대사글이 따로 없이 해설과 지문, 줄글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나"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들을 씨불인다.(찾아보니 표준어.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이 사람 참, 불쌍하구나 싶기도 하다.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의 위치, 항상 아래쪽 둥둥거림이나 채워주는 그런 존재라 좋은 대접도, 좋은 월급도 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계속해서 얘기한다. 그러다 보니 사랑에서도 자신감이 없다. 좋아하는 여자(성악가)가 있지만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따위 눈여겨 보지 않을 테니 엉뚱하게 사고나 쳐 볼까 하는 생각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콘트라베이스가 갖고 있는 속성과 오케스트라에서의 신분적 위치를 바탕으로 한 평범한 소시민의 생존을 다룬 작품이라고 했단다. 100여 페이지의 얇은 책인데 중간까지 이 찌질남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나 싶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조금씩 공감하게 된다. 누구보다도 찌질해 보이지만 만약 그게 내 위치라면, 그 처절하고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자체의 심리를 아주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보다는 실제로 연극으로 보면 훨씬 더 감동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독일에서 가장 많이 상연되는 공연이라고 하니 언젠가 이 작품을 연극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꼭 보고 싶다. 매 작품마다 다른 분위기의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또 한번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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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가 각인된 건, <향수>를 통해서다. 너무나 강렬한 미스터리 소재에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묘사가 무척 마음을 끌었다. 그런데 작가가 더 좋아진 건, <좀머씨 이야기> 덕분이었다. <향수>와는 완전히 다른 소설이고 잔잔한 듯, 묵직한 소설이 왠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렇게나 다른 작품을 쓰는 작가라니 정말 궁금하다~ 생각했는데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어떤 상을 준다고 해도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신비함을 더해주는 작가.



최근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두 작품을 더 읽었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인 <콘트라베이스>와 세 번째 소설인 <비둘기>다. 이렇게 네 작품을 놓고 보니 <향수>만 좀 동떨어진 느낌이다. <향수>는 영화화되었을 만큼 대중적인 소설인 반면, 다른 세 작품은 매니아가 아니라면 읽기가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비둘기>는 느낌 상 <콘트라베이스>와 <좀머씨 이야기>의 중간 정도로 느껴진다.



<비둘기> 속 조나단 노엘은 오랜 기간 아무 걱정이나 큰 사건 없이 조용히 지내왔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너무나 큰 일을 겪었던 조나단에게 이 시간은 더없이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생활하려던 그때, 자신의 한 칸 방 방문 앞에 비둘기가 가로막고 있는 것을 발견하다. 그는 이 비둘기를 본 후 패닉에 빠진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느껴지는 요의와 저 방문 앞 비둘기를 뚫고 과연 무사히 출근을 하고, 다시 이 안전한 방으로 귀가할 수 있을까.



조나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술은 마치 <콘트라베이스> 속 주인공의 혼잣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조나단의 행동과 그 원인을 파헤쳐보면 마치 <좀머씨 이야기> 속 좀머씨와 비슷하다. 조나단은 유년기에 겪은 2차 세계 대전을 다 극복하지 못하고(누구라도 하루 아침에 부모가 사라지는 일을 겪는다면 그럴 것이다) 짜여진 일상 속 쳇바퀴같은 삶을 지향한다. 그 일상 속 "비둘기"는 그에게 침입자와 같을 것이고 오히려 이 비둘기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하나의 사건은 또다른 하나를 불러내고 이어 연속되는)로 패닉 상태가 지속되는 듯하지만 책의 처음, 어린 시절 아무 걱정없이 비 오는 날 물장구치며 걸었던 그 순간을 떠올리듯 철벅거리며 거리를 걷는 동안(좀머씨의 방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 조금씩 자신을 되찾아간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 누구라도 그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묘사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이제 <향수>도 한 집합으로 묶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를 왜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읽는 내내 궁금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나단이라면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내면 세계를 심도 깊게 묘사한 쥐스킨트의 역작"이라는 설명이 아깝지 않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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