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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지음
북로망스 펴냄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고 비판의 날을 세우려는 마음이 읽는 내내 거듭 찾아든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보이는 공들여 탑을 쌓는 듯한 구성이며 잘 닦인 문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로 책을 읽는 이에게 편안한 감상을 일으킨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모든 걸 마법으로 쉽게 해소하는 일이, 별다른 위기 없이 모든 일을 잘 풀어주는 전개가 이 시대 독자에게 평안을 주었단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와 같은 책이 인기를 얻는 풍토를 우려한다. 구성도, 전개도, 심지어는 극적 위기와 해소마저도 쉽고 간편하기만 하다. 각각의 인물들이 가져오는 저마다의 사연은 고르고 골라 준비한 고충들이다. 가장 보편적인 삶의 문제들을 마치 기출문제처럼 정제하여서는 가장 간편한 해법으로 해결해나가는 것, 어찌 그를 진짜배기 삶과 세상 앞에 떳떳이 소개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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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과 인간의 관계를 일깨우는 한편,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인간을 거세게 질타한다. 인간의 손에서 목적에 맞게 진화해온 가축은 더는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인간이 젖을 짜주어야만 하고, 생후 몇 주 정도는 사람의 손을 타야만 건강하게 자란다. 새끼를 낳을 때도 수의사가 산도에 손을 넣고 꺼내줘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도망치니 가축들은 고통 속에 울부짖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가축들을 안락사하라고 말한다. 쓰임이 없으니 살아 있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풀려나 야생화 된 소떼를 잡아 죽이는데 필요 이상의 노력이 드는 데도 그렇다. 그 모든 결정은 직접 가축을 잡아 죽여야 하는 이들이 아닌, 경계구역 근처도 오지 않는 이들에게서 내려진다. 수많은 생명이 그렇게 죽어나간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의사며 활동가들은 악착같은 노력으로 후쿠시마의 가축들에게 쓰임이 남았음을 찾아낸다. 하나는 소들이 풀을 뜯어 후쿠시마의 들판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벌판으로 바뀌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폭 영향에 대한 살아 있는 연구자료로 쓰임이 있다는 것이다. 쓰임이 있는 한 이 동물들에겐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이들은 정부를 설득하려 든다.

한편으로 책은 도쿄전력 본사에 차량을 몰고 가서 시위를 하는 한 축산업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사고 직후 후쿠시마를 가장 먼저 빠져나가려 했던 도쿄전력 관계자들의 모습도 빼놓지 않고 다룬다. 후쿠시마에 위치한 원전 관리주체가 도쿄전력이라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다. 원전이 멈춘 이후에도 전력대란이 일어나지 않은 일본의 모습은 시사점이 크다. 낙후된 지역에 위치한 원전에서 전력을 끌어다가 대도시에다 대고 있는 오늘 한국의 방식이 일본의 그것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생각해보자면, 이들 책이 적고 있는 재난이 비단 일본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소와 흙

신나미 쿄스케 (지은이), 우상규 (옮긴이) 지음
글항아리 펴냄

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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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tarsky

오늘의 한국에서 돌봄을 전담하는 일은 재앙이 된다. 사회로부터 저를 고립시키고 감정과 육체 모두를 좀먹는다. 사회는 돌봄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고, 재기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한창 사회에서 일할 나이에 돌봄을 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영케어러들은 돌봄으로 인한 직접적 고통은 물론, 사회적 쓰임을 잃었다는 자괴감을 받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두려움과 불안은 답이 될 수 없다. 돌봄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돌봄의 상황에 처해 제 집과 병원에 갇혀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게 되기 전에, 제도와 인식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벼락을 맞듯 어느 순간 돌봄을 떠안은 이가 도태되는 일을 당연시해선 안 된다.

돌봄을 존중하고, 그를 지원하며, 개인으로부터 사회로 조금이나마 책임을 넘겨받는 일, <새파란 돌봄>이 전하는 이야기가 이와 같다.

새파란 돌봄

조기현 지음
이매진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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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찔끔 솟았다. 거의 떨어질 지경이 되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양 코를 풀고 슬쩍 휴지로 닦아내었다. 책을 읽고 감정이 동한 것이 꽤나 오랜만이어서, 또 낯선 카페 한 가운데였으므로, 책이 그리 슬픈 내용은 아니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세상의 많은 아름다움 가운데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곳에서 피어나는 것이 있다. 그저 아름답지 않을 뿐 아니라, 일찌기 어떠한 아름다움도 자리한 적 없던 곳에서 태동하는 아름다움이. 그 눈치 없는 싹틈과 마주하여 그것이 마침내 도달할 찬란함이 아니라 외로움과 의심과 수없이 일어날 후회 비슷한 무엇들을 떠올리는 건 내가 아름답지 못한 때문인가 한다.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안온한 일이란 걸 알고 있다.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권할 수도 없겠다. 그러나 세상엔 슬픔이 짙게 깔린 거리를 어떻게든 나아가는 이가 있는 것이라고, 나는 그 운명을 응원하기로 결정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다산책방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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